나를 만드는 집

조민선 2026. 9. 29.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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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서사는 강력합니다. 함께했던 가족과 기억이 그곳에 밀접하게 얽혀 우리의 가장 깊은 뿌리를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가는 데 20년이나 걸린 한 남자의 이야기는 우리를 단숨에 영화 속으로 끌어당겼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곳, 그 집에 닿고자 하는 인간의 원초적 열망을 건드린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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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떼 매거진 Vol.29] 에디터 레터
<서도호전>부터 영화 <오디세이>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인터뷰까지
우리의 첫 우주, 집의 서사
아르떼 매거진 VOL. 29. / © arte

집의 서사는 강력합니다. 함께했던 가족과 기억이 그곳에 밀접하게 얽혀 우리의 가장 깊은 뿌리를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집은 이 땅에 발 디딘 우리가 처음 만나는 우주입니다.

‘집의 작가’ 서도호는 그 첫 우주를 집요하게 담아냅니다. 집이라는 기억의 총체는 곧 그의 예술이 됐습니다. 올가을 삼청동을 북적이게 만든 <서도호전>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1970년대에 직접 설계해 지은 성북동 한옥. 그 집의 표면 전체를 실물 크기 그대로 종이에 탁본했습니다. 1년간 한지를 붙이고 문질렀습니다. 그는 이 작업을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어루만지는 느낌”이라고 표현했죠. 구상부터 완성까지 10년이 걸린 대작입니다. 성북동을 넘어 런던, 뉴욕, 베를린 등 그가 머물렀던 집들의 손잡이와 스위치까지 본떠 작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작품마다 “집은 나를 만든 시간”이라는 그의 지론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디세이>가 3000년 전 서양 고전을 끌어와 오늘날의 관객에게 공감을 얻은 데에도 귀향歸鄕이라는 서사를 품고 있기 때문이지요. 집으로 가는 데 20년이나 걸린 한 남자의 이야기는 우리를 단숨에 영화 속으로 끌어당겼습니다. 풍랑에 좌초하고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오는 세 시간여의 여정. 관객은 그가 집에 당도하기만을 바랐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곳, 그 집에 닿고자 하는 인간의 원초적 열망을 건드린 서사. 이 영화가 국내에서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한 이유일 겁니다. 돌아가고 싶은 집은 어디인가. 우리가 끝내 도달하고픈 안식처는 어디인가. 영화는 내내 집의 의미를 묻습니다.

10월호 커버스토리의 주인공,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에게 집은 곧 가족이었습니다. 투병으로 병상에 있던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이도 가족이었죠. 여섯 명의 자녀 모두 음악을 즐기는 음악가 집안. 그의 집엔 언제나 음악이 흐릅니다. 그는 사랑하는 가족을 음악의 세계로 초대했습니다. 집과 가족, 그리고 음악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그는 더 큰 자유를 누렸습니다. 개인의 삶과 아티스트의 삶이 하나로 통합된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첼리스트”라고 고백합니다. 피아니스트인 딸 릴리 마이스키는 말합니다. “아버지가 곧 음악 그 자체”라고요. 삶의 이유였던 음악에 가족이 더해지며, 그의 여정은 더없이 행복해졌습니다.

유난히 마음이 말랑해지는 낭보가 많은 10월입니다. 베니스 영화제 은사자상을 받은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이 10월 초까지 극장에서 관객과 만납니다. 세계가 존경하는 거장의 수상 소식에 뭉클해지는 건 그가 쌓아온 일곱 편의 영화가 지닌 무게 때문일 것입니다. 가을이 저물기 전에 가보면 좋을 예술가의 집도 두루 담았습니다. 작가들의 내밀한 공간에서 이뤄진 예술적 성취를 엿볼 기회입니다. 도이체 그라모폰이 꼽은 샛별 음악가 마리아 두에냐스·율리우스 아살과의 단독 인터뷰, 런던·피렌체·베니스·토론토에서 날아온 소식도 함께 실었습니다. 이번 호도 풍성한 문화예술 소식을 모아 전합니다.

조민선 아르떼 매거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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