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쓰던 ‘생각근육’ 훈련할 시간”…오민, 감각의 위계를 해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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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값비싼 그림이 걸려 있다고 생각해보자.
무엇이 좋은 그림이고 음악인지, 어떻게 보고 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은 생각보다 단단하다.
평소 쓰지 않던 '감각의 근육'을 움직이는 것. 최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포럼앤스페이스에서 만난 오민은 "작품은 실험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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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과 음악의 경계 해체 등
감각 위계 재설정

눈앞에 값비싼 그림이 걸려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 그림은 좋은 그림이다. 가격이 말해주고, 권위 있는 미술사가나 감정사가 그렇다고 부연해서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실력 있는 피아니스트가 음악사에 남은 작곡가의 악보를 연주하니 훌륭한 음악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덫에 빠진다.
무엇이 좋은 그림이고 음악인지, 어떻게 보고 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은 생각보다 단단하다. 아름다운 그림은 한눈에 감탄을 자아내야 하고, 좋은 클래식 음악은 조화로운 선율을 품어야 한다는 식이다. 클래식뿐 아니다. 3~4분 내로 가사가 이야기를 끌어가고, 브리지를 거쳐 귀에 꽂히는 후렴구가 반복되는 것. 관습처럼 굳어진 대중음악의 틀이다.
이런 익숙한 문법에서 벗어난 작품은 순식간에 ‘이상한 것’ 혹은 ‘어려운 것’이 된다. 하지만 정말 탈선한 작품은 안 좋은 예술일까.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생각은 일종의 언어”라고 말했다. 또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라고도 했다. 보고, 듣고, 즐기는 방법을 정해놓는다면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세계도 딱 거기까지다.
이런 관점에서 오민은 경계 밖으로 나가려 애쓰는 작가다.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평소 쓰지 않던 ‘감각의 근육’을 움직이는 것. 최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포럼앤스페이스에서 만난 오민은 “작품은 실험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작가는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관객은 그걸 받아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메시지가 무엇인지 실험했으면 하는 소망이 있는 것이죠.”
그는 예술의 영역을 경계 짓지 않고 자유롭게 넘나든다. 지난달 발매한 LP 음반 <동시, 콘퍼런스>는 감각의 근육을 혹독하게 훈련하는 작품이다. 개념부터 재밌다. 시각예술 중심인 미술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음반을 발매했다는 것, 그것도 스트리밍 시대를 역행하는 LP라는 것, 그리고 이를 갤러리에서 선보이지만 전시가 아닌 청음 이벤트로 열었다는 점에서다.

음악을 듣겠다는 생각으로 턴테이블에 바늘을 올리면 시작부터 어긋난다. 사람이 말을 머뭇거리고, 소음(으로 생각해왔던 것)이 흘러나온다. 들을 수 없(다고 믿었던)는 인물의 표정과 제스처, 몸짓처럼 물리적인 것까지 소리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오민은 “시간이 있고, 소리가 있고, 그것의 구조적 관계가 정교할수록 음악이라 말하고, 흐트러질수록 소리에 가깝다고 하는데 저는 경계가 없다”고 설명했다. 의도해 배치한 소리에 우연히 끼어든 소음이 뒤섞여 있더라도 최소한의 구조와 행위의 의도가 담겼다면 “음악으로 향해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민은 오랜 시간 ‘감각의 위계’를 해체하는 데 관심을 쏟아왔다.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동시에 시각디자인을 공부한 그는 미국을 거쳐 네덜란드에서 설치·퍼포먼스 작업을 이어오며 의문을 갖게 됐다. 여러 감각을 함께 사용하면서도 어떤 것은 중심에 놓고, 그 외엔 배경으로 밀어내는 관습에 대해서다.
“영화 등 영상 작업을 하다 보면 텍스트가 가장 중요하고, 이미지는 그것의 일러스트레이션이 돼요. 소리는 또 이미지의 배경이 되는 위계가 자연스럽게 생기죠. 이게 공식처럼 굳어지고, 그러다 보면 아무런 비판 의식 없이 받아들이게 되잖아요. 이 감각들이 누구도 서로를 배경으로 삼지 않는 게 가능한가 생각해온 거죠.
이런 고민 끝에 도달한 개념이 ‘동시성(Simultaneity)’이다. 오민은 “동시성에는 말 그대로 여러 사건이 한꺼번에 일어난다는 의미도 있지만, 정보가 많아 그중 무엇을 선택할지 결정해야 하는 상태도 포함된다”며 “이는 취사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에 주체성이 관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동시적 감각을 관객이 직접 경험하도록 설계한 것이 ‘동시, 콘퍼런스’다. 서로 다른 감각을 한꺼번에 작동시키거나, 반대로 익숙하게 의존하던 감각을 아예 차단하는 식이다. 3막이 대표적이다. 세 명의 행위자가 춤과 음악을 주제로 다른 창작자들이 나눈 대화를 미리 익힌 후, 무대에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각자 상대의 표정과 몸짓 등을 활용해 머릿속으로 대화를 떠올리는(혹은 듣는) 것이다. 관객에겐 난감한 상황이 된다. 들리는 말은 없는데, 누군가는 말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오민은 이를 “완전히 또 다른 종류의 듣기”라고 표현했다. 무엇을 보고 들어야 하는지 작품이나 작가가 정해주지 않는 순간, 관객은 평소의 수동적 태도에서 벗어나 이해되지 않는 걸 추측하고 받아들일 감각을 선택하게 된다.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어쩌면 최고의 각성 상태일 수 있어요. 그게 가장 아름다운 퍼포먼스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열려 있는 상태가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형태라고 저는 배웠어요.”
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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