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 VIP의 문장을 그리던 화가, '꽃과 뱀'으로 나를 말하다

아르떼 2026. 9. 29.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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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한지수의 파사주-예술이 건너는 길
나의 그림을 그리는 것
보자르와 LVMH를 거쳐
자신의 회화를 찾아가는 작가 송태인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에게도, 자신이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 묻는 순간은 찾아온다. 어쩌면 그 질문은 그림을 잘 그리는 법보다 훨씬 어려울지 모른다.

파리 생마르탱 운하 근처에 작업실을 둔 송태인은 스무 살 무렵 그림을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로 건너왔다.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파리 보자르, Beaux-Arts de Paris)를 졸업한 뒤 모이나와 루이비통에서 아티스트로 일하며 고객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만들어왔다. 그리고 지금은 그 세계를 떠나 자신이 선택한 인물과 색, 풍경을 그린다.

그녀의 이력에는 한 사람이 ‘그림을 그린다’는 의미를 다시 찾아가는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다. 그 과정에서 송태인은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내려놓았으며, 아직 무엇을 그리지 않은 채 남겨두고 있을까?

송태인 <People>(부분), series, 캔버스에 유화, 50 x 100 cm, 2026 / 사진. ©송태인

▶ 어떤 계기로 프랑스에 오셨고, 보자르에서는 무엇을 배우셨나요?

“음악과 미술이 가까운 환경에서 자라 일찍부터 입시 미술을 했어요. 당시에는 예술 유학이라고 하면 주로 영어권을 떠올렸는데, 우연히 프랑스 고등학생들의 철학 시험 문제를 봤어요. ‘예술 작품은 반드시 아름다워야 하는가’, ‘예술은 인간과 현실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같은 질문이었죠. 제가 배워온 미술은 얼마나 잘 그리느냐의 문제였는데, 프랑스에서는 예술을 인간과 삶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으로 다루는 것 같았어요. 그런 사회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자르 입학시험은 한 사람에게 두 번의 기회만 주어지는데, 저는 첫 시험에 떨어졌어요. 제가 알던 방식대로 '완벽하게' 준비해 모두가 보기에 잘하는 것을 보여주는 포트폴리오였거든요. 이듬해에는 제 안에서 어떤 목소리가 나오는지 찾으려고 도전적인 실험들을 했고, 오히려 심사위원들이 그 부분을 흥미롭게 봐주셨어요. '남이 보기에 잘하는 것'과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은 반드시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배웠어요.

송태인 작가 아뜰리에 / 사진. ©한지수

학교에 들어간 뒤에도 쉽지는 않았어요. 누군가 방향을 알려주기를 기다리는 습관에서 벗어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죠. 보자르에서는 찢어진 종이에 선 하나만 그어 와도 자기 생각과 이유가 있으면 몇 시간씩 이야기할 수 있었어요. 반대로 아무리 기술적으로 완성된 작업이라도 ‘왜 이것을 하는가’라는 질문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었고요. 결국 보자르에서 배운 건 기술보다 스스로 질문하고 선택하는 법이었던 것 같아요.”

▶ 졸업 후, 어떻게 럭셔리 브랜드에서 그림을 그리게 되셨나요?

“정말 우연이었어요. 졸업을 반년쯤 앞두고 길에서 구걸하시는 분께 동전을 드리고 있었는데, 멀리서 그 모습을 본 보자르 행정 담당자 한 분이 다가와 졸업 후 갈 곳이 정해졌느냐고 묻더니 가방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하셨어요. 그렇게 찾아간 곳이 몽테뉴 거리의 LVMH 사무실이었고, 일주일 정도 테스트를 거쳐 2011년 10월부터 모이나(Moynat) 프로젝트에 합류했습니다. 당시에는 외국인이 취업을 위해 체류자격을 바꾸는 게 까다로워 비자 신청이 세 차례나 거절됐어요. 결국 모이나 대표님이 그룹 차원에서 도움을 요청했고, 제가 알기로는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직접 편지를 써주는 과정까지 거쳤습니다.

루이 비통 메종 방돔, Expert Painter로서 고객 맞춤형 디자인 및 핸드 페인팅 작업을 한다. / 사진. ©송태인

프랑스의 오래된 럭셔리 메종에는 여행용 트렁크에 가문의 문장이나 이니셜, 개인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그려 넣던 전통이 있어요. 그것이 오늘날 가죽 제품에 그림이나 문양을 더하는 퍼스널라이제이션 서비스로 이어진 것이죠. 제가 일할 당시 모이나에서는 이 역할을 단순한 장인의 작업이 아니라 아티스트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저는 새로운 이미지와 타이포그래피를 디자인하고, 트롱프뢰유(Trompe l’oeil, 실제처럼 보이게 만든 착시 그림)처럼 가죽 위에서 회화적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실험을 했어요. 2017년에는 메종 루이 비통 방돔으로 옮겨 엑스퍼트 페인터(Expert Painter)로 일했습니다. 아티스트가 상주하며 VIP 고객을 직접 만나는 첫 매장이었고, 제가 그 첫 번째 아티스트였어요. 고객의 취향과 경험을 듣고 그것을 루이비통의 언어로 해석해 트렁크 위에 완성하는 일이었죠.”

루이 비통 메종 방돔(Louis Vuitton Maison Vendôme)의 퍼스널라이제이션(Personalisation) 서비스 / 사진. ©송태인

▶루이비통을 떠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LVMH에서 그림을 그리며 배운 것은, 오히려 그림 이외의 많은 것들이었던 것 같아요. 여러 나라로 출장을 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고, 루이비통이라는 하나의 세계가 공간과 오브제, 음악, 패션, 건축, 서비스로 하나의 이미지가 되어가는 과정을 경험했어요. 저에게 굉장히 큰 시각적 훈련이었어요.

루이 비통 메종 방돔(Louis Vuitton Maison Vendôme)의 퍼스널라이제이션(Personalisation) 서비스 / 사진. ©송태인

하지만 제가 그린 그림은 결국 고객을 위한 주문 작업이었기 때문에, 제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죠. 또 조직 안에서는 모든 선택과 결과를 혼자 책임지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제 선택을 온전히 제가 하고, 그 결과 역시 제가 책임지는 삶을 살아보고 싶어졌어요. 그게 결국 그 긴 시간을 마치고 나오게 된 가장 큰 이유였어요. 그림을 온전한 제 것으로 되돌려놓는 것뿐 아니라, 제 삶 자체도 조금 더 주체적으로 살아보고 싶었던 거죠.

지금은 그림을 그리는 시간보다 제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정해진 리듬에서 벗어나 처음엔 적막했는데, 그 고요 속에서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재미있는 건 ‘9 to 5’에서 벗어나고 싶어 나왔는데, 저에게 맞는 리듬을 찾다 보니 결국 스스로 ‘9 to 5’로 살게 됐다는 거예요.”

▶ 꽃과 뱀, 갸또(Gâteau, 프랑스식 케이크)를 그린 작업은 어디서 출발했나요?

“비교적 엄격한 기독교적 환경에서 자랐는데, 팬데믹을 지나 회사를 그만두고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면서 제가 믿음과 그 안의 규칙을 얼마나 단단하게 하나로 묶어놓고 살아왔는지를 처음 들여다보게 됐어요. 일종의 '개인적인 종교개혁' 같은 시간이었죠. 특히 세상의 많은 것을 선과 악으로 나누고 그 기준으로 타인과 제 자신까지 판단하며 살아왔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꽃과 뱀을 한 몸처럼 이어 그렸어요. 꽃이 뱀 같고 뱀이 꽃 같아서 어느 한쪽을 선이라고 규정하기 어렵게요.

송태인 <Who are you>, 캔버스에 유화, 65 x 54 cm, 2025 / 사진. ©송태인

갸또는 스무 살에 프랑스에 처음 왔을 때부터 이상할 정도로 매료된 대상이에요. 그저 디저트인데 작은 조각품처럼 정교하고, 생토노레(Saint-Honoré, 성(聖) 오노레)와 르리지외즈(Religieuse, 수녀)처럼 종교적인 이름을 가진 채 대대로 이어지잖아요. 그런데 아무리 아름다워도 결국 먹히거나 상하고, 다음 날이면 쇼케이스에는 또 다른 아름다운 것들이 놓여요. 그때 저 또한 쇼케이스 안에서 아름답게 꾸며진 채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살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래서 카라바조를 연상시키는 종교화의 구도를 빌려 갸또의 죽음을 그리기도 했죠.”

송태인 <Haunted>, 캔버스에 유화, 33 x 46cm, 2026 / 사진. ©송태인


[좌] 송태인 <Martyrdom of Saint Honoré (생토노레의 순교)>, 캔버스에 유화, 73 x 100cm, 2026 [우] 송태인 <The death of Religieuse>, 캔버스에 유화, 33 x 41 cm, 2025 / 사진. ©송태인

▶ 최근의 인물 작업과 물 그림은 어떻게 이어진 건가요?

“호접란을 그리면서 시작됐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꽃다운 꽃'과는 달리 낯설고 신비로운 면이 있었거든요. 한동안 아침마다 호접란 두 송이를 묵상하듯 그렸는데, 어느 날 길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다 얼굴들이 호접란처럼 보이기 시작했어요. 피부색과 눈동자, 옷과 메이크업까지 모두 달라서 한 사람 한 사람이 형형색색의 꽃 같았죠. '아, 우리도 그냥 자연이구나' 싶었어요. 인물들을 가로로 이어 그리다 보니 각각의 초상이라기보다 하나의 긴 생명체처럼 보이게 됐고요. 우리는 다른 사람의 표정을 보고 그 마음을 쉽게 상상하지만, 그건 그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저의 해석이잖아요. 다른 사람의 얼굴을 그리고 있지만 그 얼굴들 역시 제 자화상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송태인 <People>(부분), series, 종이에 드로잉 및 채색, 2026 / 사진. ©송태인

물은 호접란을 수채화와 먹으로 그리다 빠져들었어요. 지난해 베니스를 여행하면서는 같은 장소가 시간과 빛에 따라 전혀 다른 색을 보여주는 데 매료됐고요. 지금 사는 곳도 생마르탱 운하 근처예요. 물은 스스로 색이 없으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잖아요. 요즘 제 그림도 고체보다 액체에 가까워지고 있어요. 구상과 추상, 사람과 배경, 색과 색의 경계를 나누기보다 서로 스며드는 상태에 더 마음이 가요.”

송태인 <Venitien dream>, series, 65 x 92 cm, 2026 / 사진. ©송태인

▶ 지금 작가님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에게 그림은 하나의 언어인 것 같아요. 말로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표현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방식이요. 저는 아직 그 언어로 말하는 저만의 목소리를 계속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작가라면 빨리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오히려 제가 변하는 과정을 하나의 스타일로 너무 빨리 고정하고 싶지 않아요. 평소에 무엇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지가 제 안에 쌓여 있다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그림으로 나오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저를 규정하기보다 제게 오는 것들을 너무 빨리 판단하지 않고 따라가려고 해요.

물이 주변의 빛과 세계를 받아 자기만의 움직임으로 흘려보내듯, 제가 살아가며 보고 느끼는 것들도 저를 통과해 그림으로 흘러나왔으면 좋겠어요. 제가 받아들이는 것과 저에게서 나오는 것 사이에서 가능한 한 투명한 매개가 되어가는 것, 그것이 제가 계속 그림을 그리며 해나가고 싶은 일인 것 같아요.”

송태인 작가 / 사진. ©한지수

송태인의 작업은 아직 하나의 문장이나 스타일로 쉽게 규정되지 않는다. 지금의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완성된 답을 내놓는 일이 아니라, 계속 달라지는 자신 앞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그릴지 선택해가는 일이다. 그림이라는 언어를 조금씩 투명하게 만들어가면서, 오늘의 시선을 다음 그림으로 이어가는 것. 송태인의 회화는 그렇게 다음 질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파리=한지수 미술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