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위에서 사흘 작동했다…삼키고 나면 녹는 ‘종이 배터리’ 개발

곽수근 기자 2026. 9. 2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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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흡수성 배터리와 RFID 태그를 결합한 장치(왼쪽). 이를 젤라틴 캡슐에 넣은 모습(오른쪽). 둥근 황갈색 원판이 배터리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약처럼 삼키면 몸속에서 의료기기를 작동시킨 뒤 서서히 분해되는 배터리가 개발됐다. 연구진은 이 배터리를 넣은 캡슐을 돼지에게 투여해 제대로 삼켰는지 무선으로 확인하고, 위에 전기 자극을 가해 식욕 관련 호르몬 분비를 변화시키는 데도 성공했다. 몸속 전자기기의 골칫거리였던 배터리 누액 위험을 줄이는 기술로 주목받을 전망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하버드의대 등의 공동 연구진은 마그네슘과 삼산화몰리브덴으로 만든 생체 흡수성 배터리를 개발했다고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 케미컬 엔지니어링’에 발표했다.

◇돼지 위에서 사흘간 성능 유지

삼키거나 몸속에 넣는 전자기기가 실시간 건강 측정이나 약물 전달 등 치료용으로 개발되고 있지만, 배터리의 생체 적합성과 안전성이 한계로 꼽혀 왔다. 일반적인 리튬이온·알칼리 배터리는 손상될 경우 전해질이나 금속 성분이 새어 나와 조직을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런 문제를 피하려고 배터리를 구성하는 재료부터 바꿨다. 음극에는 몸속에서 분해되는 마그네슘 합금을 사용했고, 양극은 삼산화몰리브덴과 셀룰로오스 나노섬유를 섞어 종이처럼 얇게 만들었다. 배터리 표면은 밀랍 등 천연 왁스로 감쌌다. 강한 위산에 닿자마자 배터리가 망가지는 것을 막고, 일정 기간 작동한 뒤 서서히 분해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배터리의 지름은 7.5㎜로, 시판되는 대형 젤라틴 캡슐 안에 들어가는 크기다. 전압은 약 1.77V를 냈다. 연구진은 전력이 더 필요한 의료기기를 위해 최대 1.84V의 전압을 내는 배터리도 제작했다. 연구진이 이 배터리를 넣은 캡슐을 돼지 위에 최대 3일간 머물게 했더니 약 1.8V였던 전압이 사흘 뒤에도 약 1.45V를 유지했다.

◇약 먹었는지 확인하고 위까지 자극

연구진은 환자가 약을 제대로 먹었는지 확인하는 무선인식장치(RFID)를 이 배터리로 작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캡슐 속에 배터리와 RFID 태그를 함께 넣어 돼지 식도로 내려보냈는데, 1.5m 떨어진 외부 수신기에서도 신호를 받을 수 있었다. 연구진은 캡슐이 몸속으로 들어가면 신호 세기가 약 10㏈ 떨어지는 변화를 이용해 실제로 캡슐을 삼켰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몸속에서 전기 자극을 주는 ‘전자약’에도 이 배터리를 사용했다. 배터리가 든 캡슐을 돼지 위에 넣고 20분 동안 위벽을 전기 자극한 결과, 식욕과 관련된 호르몬인 ‘그렐린’의 혈중 농도가 돼지 세 마리에서 평균 36.3% 증가했다. 최대 증가 폭은 약 50%였다. 삼키는 캡슐로 위를 일시적으로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이번 배터리가 몸속에서 즉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위액에 배터리를 담근 실험에서는 2주 안에 보호층이 벗겨지고 전극이 녹기 시작했다. 전체 구조가 완전히 분해되는 데는 수개월이 걸렸다. 연구진은 ‘생체흡수성’ 배터리라는 표현이 먹을 수 있는 식품이라는 뜻은 아니고, 분해된 물질을 몸이 생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번 배터리를 사람에게 적용하기까지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암컷 요크셔 돼지 10여마리에 적용한 전(前)임상 연구 결과이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사람의 위에서는 음식물과 위산 농도, 점액, 장 운동 등이 배터리의 작동 시간과 분해 속도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안전성을 추가로 확인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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