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미세 반도체 시대… ‘공정 불량 지문’ 읽는 플라즈마 센서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인공지능(AI)'의 발전이 무서운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그 중심에는 AI의 두뇌 '반도체'의 역할이 지대하다. 글로벌 경영컨설팅 기관 '맥킨지&컴퍼니'에 따르면 AI반도체 시장 규모는 2030년 2조3,000억달러(약 3,121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우리나라 1년 예산의 4배를 훌쩍 넘는 규모다.
AI산업 전체를 지배하는 이 강력한 시장에서 기술 확보를 위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초고집적 반도체 제작에 사용되는 '플라즈마(Plasma) 공정'이 핵심이다. 할로겐 등 반도체 제조용 가스를 플라즈마 상태로 만든 다음, 이를 원자 하나 크기까지 정밀하게 제어해 초미세 반도체 회로를 그리는 기술이다. 현재 제작된 고성능 AI반도체의 60~70%는 플라즈마 공정 과정을 거친 것이다.

◇ 초미세공정이 키운 '플라즈마 진단' 시장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에서 사용되는 플라즈마는 기체에 높은 에너지를 가해 전자와 양전하 이온으로 분리된 상태다. 우주의 99.9%가 이 플라즈마로 이뤄져 있다. 고체, 액체, 기체와 함께 '물질 제 4의 상태'라 불린다. 반도체 공정에선 이 플라즈마를 이용, 물질을 반응시켜 반도체 웨이퍼 표면을 깎거나 쌓는다.
이때 플라즈마 내 전자밀도와 전자온도, 이온의 에너지·유량 등이 조금만 달라져도 공정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플라즈마 센서는 이러한 변화를 전기·자기·광학 신호 등으로 감지한다. 그 다음, 신호의 크기와 주파수·고조파 등의 변화를 분석해 플라즈마 상태를 추정한다.
기존 플라즈마 센서는 대부분 반도체 공정 챔버 내부에 직접 설치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경우, 민감한 플라즈마에 센서 자체가 방해물이 될 수 있다. 때문에 최근에는 장비 외부에서 신호를 읽는 비침습 방식 등 새로운 센서 기술 개발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성능과 직결되는 만큼, 플라즈마 모니터링 관련 시장은 최근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산업 시장조사업체 '세미컨덕터인사이트(Semiconductor Insight)'에 따르면 플라즈마 공정 모니터링 기술 시장은 2034년 1억3,900만달러(약 1,89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플라즈마 센서 시장으로 좁혀도 산업 성장 기대감은 크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모빌리티 포어사이트(Mobility Foresights)'에 따르면 플라즈마 센서 시장은 2025년 21억달러(약 2조8,500억원)에서 2032년 49억달러(약 6조6,600억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은 12.7%다.
이 같은 시장 성장에 이미 해외 주요국에선 플라즈마 센서 기술 경쟁이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대표적으로 아일랜드 계측기업 '임피던스(Impedans)'가 있다. 이곳에서는 RF 전압·전류와 고조파를 측정, 플라즈마 상태와 식각 공정 이상을 파악하는 센서를 상용화했다. 또한 스위스의 '인피콘(INFICON)'은 장비 외부서 플라즈마 RF신호를 측정하는 비침습 센서와 광학식 공정 모니터링 기술을 반도체 제조장비에 공급하고 있다.

◇ 장비 아닌 '플라즈마'를 읽는다… 韓 연구자들의 도전
국내 역시 플라즈마 센서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 중심에는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핵융합연)'의 역할이 컸다. 연구원은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융합연구단 사업의 주관기관으로 선정돼 '플라즈마장비지능화연구단'을 2020년 11월 구성했다. 연구단에서는 올해까지 총 440억원의 연구비를 투입, 반도체 플라즈마 공정장비 지능화 기술 개발 및 실증을 진행했다.
더 나아가 연구단에서는 올해 1월 플라즈마 센싱 전문 스타트업 '파이렉스(PeiREX)'를 설립했다. 연구원 창업기업인 파이렉스는 그간 연구단에서 얻은 성과를 기반,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 현장에 적용 가능한 차세대 플라즈마 센서를 개발하고 있다. 파이렉스의 대표이사는 윤정식 연구단장이 맡고 있다.
윤정식 단장의 설명에 따르면 파이렉스의 핵심 기술은 '고주파(RF, Radio Frequency) 신호 변화' 현상의 탐지다. 반도체·디스플레이 플라즈마 공정에서는 RF 전력을 걸어 플라즈마를 만들고 유지한다. 이때 고주파 신호가 변하거나 순간적으로 떨어지면 장비가 멈춰버려 큰 피해가 발생한다. 실제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규모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한 번의 RF 저하 현상이 발생하면 월 최대 3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현재 관련 기술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현장에서도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렉스에 따르면 국내 디스플레이 제조사들의 8.6세대 셋업라인에서 기술 검증이 진행 중이다. 이를 토대로 양산라인까지 확대 적용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 확대 규모는 플라즈마 식각장비 약 수백대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정식 단장은 "기존 AI는 많은 데이터를 학습시켜 패턴을 찾고 결과를 예측하는 방식이나 플라즈마 센서에는 물리 모델을 이용,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AI가 필요하다"며 "단순 이상 여부를 넘어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원인까지 말해줄 수 있는 기술이 지금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 산업에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 단순한 노이즈로 여겨졌던 RF 신호에도 플라즈마와 공정 상태를 보여주는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며 "이를 분석해 장비와 공정의 '지문(Fingerprint)'을 찾아내는 것이 파이렉스 기술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유우종 파이렉스 CFO는 "파이렉스는 지능화연구단이 시작한 2020년부터 2026년까지 5년간 국가 R&D와 산업 현장 실증을 거쳐 완성된 기술로 창업했다"며 "국가 R&D에서 파생된 연구성과, 주요 산업체들과의 기술 검증까지 마친 상태로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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