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이웃 이름 불러주는 ‘서울마음편의점’

김시연·윤채현·장은빈 기자 2026. 9. 28.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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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물건 매매 아닌 사람과 관계 맺는 공간
2곳은 복지관 외부로 나와 ‘관계 회복’에 힘써
은둔 고립 가구 기다리는 대신 찾아가는 복지
여전히 부족한 인력과 전문 상담, 접근성 등
세상 밖 다리를 잇기 위한 개선 과제 남아

MBC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여름방학 과제로 제출한 르포기사를 이봉수 교수(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원장)의 첨삭을 거쳐 <민들레>에 연재한다. 학생들은 방학 기간에 두셋씩 짝을 지어 친구의 고향 도시를 방문해 익숙하거나 낯선 시선으로 사람들 삶을 들여다보는가 하면 다리가 놓인 뒤 섬마을 생활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관찰한다. 모교 주변 젠트리피케이션의 명암을 살펴보는가 하면 분당·일산 신도시 상가의 영고성쇠를 비교한다. 서울마음편의점에서 고립된 이웃에 시선을 돌리는가 하면 스스로 도심의 사찰에 머물며 청춘의 불안을 다스리기도 한다. (편집자)

한때 고립가구 당사자였던 이도 활동가로 나선다

"고립가구 당사자니까 아무래도 혼자 사는 사람의 실정을 잘 알죠. 그 사람 심정을 잘 아니까 말하기도 편하고."
지난 8월 18일 활동가 박동균 씨(오른쪽)가 김동수(가명) 씨와 함께 마천중앙시장을 돌아다니며 장을 보고 있다. ⓒ 김시연

지난 8월 18일 오후 3시 서울 송파구 마천동. 고립∙은둔가구 자립을 돕는 박동균(60대) 활동가는, 혼자 사는 탓에 끼니를 거르기 일쑤인 50대 김동수(가명) 씨와 함께 마천중앙시장으로 향했다. 김 씨가 먹을 반찬을 직접 고르고 장바구니를 채우는 동안 박동균 활동가는 곁에서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알려줬다.

이날 두 사람이 장바구니에 담은 것은 햇반과 김, 김치, 반찬거리 등이다. 직접 요리하지 않아도 전자레인지에 간단히 데워 먹을 수 있는 식품들이다. 평소 김 씨는 라면이나 간편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잦다. 식사보다는 술을 마시기 위한 수단으로 끼니를 챙기곤 한다. 박 활동가가 함께 장보기에 나선 이유도 김 씨가 큰 부담 없이 균형 잡힌 한 끼를 챙겨 먹도록 돕기 위해서다.

박 활동가 역시 사회적 고립을 겪은 당사자기도 하다. 그는 서울시복지재단 '치유활동가' 양성과정 1기로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그는 치유활동가로서 서울마음편의점 복지관 소속 봉사자와 함께 고립가구를 찾아 1대1 멘토링을 이어가고 있다.

같은 공간에서 만난 김기숙 활동가(50대)는 마천동 주민들과 7년째 관계를 이어왔다. 집 밖으로 나오기 어려워하는 주민에게는 반찬을 가져다주고,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주민을 만나면 이야기를 듣는 것부터 시작한다. 혼자 길고양이를 키우던 한 주민이 고양이를 잃어버렸을 때는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조금씩 관계를 쌓아갔다.

두 사람이 주로 활동하는 곳은 마천1·2동 사이 길목에 자리한 1층 공간이다. 통유리 안쪽으로 주민들이 쉬어갈 수 있는 자리와 라면을 직접 끓여 먹을 수 있는 조리 공간이 보인다. '서울마음편의점', 이름은 편의점이지만 물건을 사고파는 곳은 아니다. 고립과 외로움을 겪는 주민이 부담 없이 머물며 다시 사람과 관계를 맺도록 돕는 공간이다.

누구나 머물 수 있게…주민 손길로 채워지는 서울마음편의점

마천역 1번 출구에서 골목길을 따라 5분쯤 걸었다. 길목에 들어서자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초록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복고풍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마천중앙시장과 마천주민센터, 마천파출소에 둘러싸인 서울마음편의점 송파점이었다.
서울마음편의점 송파점 전경. ⓒ 김시연

취재진이 지난 8월 13일과 18일 두 차례 찾은 송파점은 여느 복지시설과는 조금 달랐다. 동네 주민들이 잠시 들러 이야기를 나누고 쉬어가는 공간에 가까웠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방문객에게 활동가는 익숙한 듯 먼저 인사를 건넸다.

송파점은 이용자의 필요에 따라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오른쪽 통유리 창가에는 신발을 벗고 편히 쉴 수 있는 '캠핑존'이 자리한다. 혼자 조용히 머물고 싶은 이용자를 위한 공간이다. 그 옆으로는 여덟 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긴 식탁이 놓여 있다. 주민들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소규모 프로그램이 열리는 곳이다.

식사 공간에서는 이용자가 라면 조리기로 봉지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컵밥과 칼국수 등도 이용할 수 있다. 라면 쿠폰을 받은 이용자에게만 식품을 제공한다. 누구나 무료로 음식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이 생기면 이용자에게 또 다른 낙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마음편의점 송파점 내부. ⓒ 윤채현

여기에 봉사자들의 마음도 모였다. 마천1동에서 47년째 거주하는 이월배 씨(70대)는 서울마음편의점에 김치와 반찬을 가져다준다. 1980년부터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해온 이 씨는 현재 마천1동 주민자치위원으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주민을 찾는 활동에도 참여한다.

"젊을 때는 시부모님과 육아로 바뻐 왜 봉사를 시작했나 싶었는데, 지금은 이 나이에 봉사할 곳이 있다는 것이 가장 좋아요."

송파점이 문을 연 초기엔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라면뿐이었다. 이를 본 이 씨는 오이소박이 등 김치를 직접 담가 가져오기 시작했다. 김치와 반찬을 가져다 놓은 이 씨는 냉장고에 짧은 메시지도 남겼다. 이곳을 찾는 주민들이 음식을 꺼낼 때 볼 수 있도록 붙여놓은 포스트잇이다. '외롭지 마세요.'

고립가구에 전하는 메시지 "지역 사회가 함께 합니다"

서울마음편의점은 '외로움 없는 서울' 정책의 핵심 사업이다. 외로움을 느끼는 시민 누구나 별도 자격이나 절차 없이 찾아와 도움받을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공간이다. 지난해 3월 강북점 도봉점 관악점 동대문점에서 시범사업을 운영한 뒤 지역을 점차 확대하고 있다. 현재는 서울 시내 19곳에서 서울마음편의점을 이용할 수 있다.

방문자는 이곳에서 외로움 정도를 스스로 진단하거나 상담받을 수 있고 고립을 경험한 당사자와 극복 경험을 나눌 수도 있다. 필요하면 개인 상황에 맞는 복지·상담 서비스로 연계한다. 라면과 컵밥 등 간편식과 건강 기구를 비치하고, 지점별로 취미·운동 등 프로그램과 주민 커뮤니티도 운영한다.
서울마음편의점 구로점 내부. ⓒ 서울마음편의점 구로점 제공

서울마음편의점 송파점은 복지관을 나와 운영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현재 운영중인 서울마음편의점 19군데 중 복지관 외부에 설립된 지점은 '송파점'과 '중랑점' 단 두 군데다. 다른 지점은 대개 2층 이상에 있거나, 1층이더라도 복지관과 같은 건물을 공유한다.

고립·은둔가구의 문턱을 낮추는 데는 공간도 중요하다. 복지관 방문 자체를 꺼리는 이가 많기 때문이다. 송파점은 재개발에 따라 '마천동네사랑방'의 확장 이전지를 찾는 과정에서 지금 자리를 택했다.

"복지관 건물 안으로 들어오라고 할 게 아니라 우리가 건물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정수진 사회복지사는 이곳에서 '점장'으로 불린다. 점장이 되기 전 사회복지관에서 13년 일했고, 그중 7년 동안 고립가구 지원 업무를 했다. 그는 '복지사'가 '점장'이 되어야 했던 이유로 청년과 중장년층 고립가구를 든다. 경로당, 복지관 등 갈 곳과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이 있는 노년층과 달리 이들은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인식도 한몫한다. 아직 도움받을 때가 아니라거나,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고 아직 젊은데 무슨 도움을 주냐는 등 "고립 당사자 본인이나 주변인 스스로 도움을 받을 대상이 아니라는 인식이 있다"고 정 점장은 설명했다.

"실질적으로는 고립도가 많이 높고 주변 도움이 필요하지만, 고립 기간이 길고 은둔 생활이 길어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하는 건 청년과 중장년이죠. 마천동의 특성을 따지면요."

도움이 필요하지만 갈 곳이 없는 이들이 자존심을 지키면서 마음 편히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게 정 점장의 생각이었다.

서울마음편의점 송파점에서는 이용자의 이름 석 자를 불러준다. 하루 동안 자신의 이름을 한 번도 듣지 못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당신을 알고 있다는 마음을 전하는 이곳만의 방식이다.

송파점은 외로움 체크리스트와 일상 대화를 통해 주민들의 어려움을 살피고, 필요할 경우 상담이나 맞춤형 프로그램으로 연결한다. '낭만잇는밥상'을 통해 식사를 같이 준비하고 사소하더라도 각자 역할을 부여해 자립심을 느끼도록 한다. 목공업에 종사했던 중장년층 남성 주민들의 특성을 반영해 목공 취미 모임 '마천 브라더스'를 운영한다. 고립을 경험해 본 멘토와 고립 당사자인 멘티가 만나는 프로그램도 있다. 구자인 사회복지사는 "외로움 사업에서는 연결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마음편의점을 운영하면서 느낀 건 '혼자 해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거예요. 동료 사회복지사뿐 아니라 지역 상점, 민간 협력, 시·구 할 거 없이 다 도와주셔야 이런 사업을 잘 운영할 수 있어요. 마천동 주민들께 늘 감사해요. 주민분들이 오고 가다 들르시면 '동네에 이런 공간이 있었냐', '주변 이웃에게도 알려야겠다'면서 손잡고 오시는 분도 많으시거든요."
지역 주민들이 서울마음편의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 서울마음편의점 송파점 제공

19곳으로 늘었지만… 관계를 잇는 데는 사람과 시간이 필요

서울마음편의점이 19곳으로 늘었다고 해서 고립된 주민과의 관계까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앞서 송파점에서 이름을 불러주고 함께 장을 보고 작은 역할을 맡기며 만들어낸 관계는 결국 지속적인 관심과 시간을 들여야만 가능한 일이다.

현장에서는 인력 부족 문제를 이야기한다. 서울마음편의점 구로점을 운영하는 황유진 사회복지사(20대)는 운영 인력이 부족해 이용자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구로점에서 활동하는 인원은 6명으로, 이 가운데 자원봉사자는 2명뿐이다.

전문적인 상담을 담당할 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마음편의점은 외로움을 느끼는 시민에게 상담을 해주는 역할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취재진이 지난 8월 12일부터 18일까지 청년 5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24%가 외로움을 느낄 때 필요한 지원으로 '상담'을 꼽았다.

공간과 시설 여건도 지점마다 달랐다. 정수진 사회복지사는 여러 사람이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에는 공간이 협소하고, 냉방 등 시설 측면에서도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송파점 상담실에는 별도 에어컨이 설치돼 있지 않아 실내가 상당히 더웠다.

서울마음편의점 위치 역시 이용자에게는 문턱이 될 수 있다. 고립·은둔가구가 복지관을 직접 찾아가는 것부터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취재진이 방문한 동대문점은 주택가 안쪽 복지관 내부에 자리해 있었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 위치를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 성동점 역시 1인가구지원센터와 공간을 함께 사용하고 있어, 건물 밖에서는 마음편의점이 있다는 사실을 한눈에 파악하기 어렵다. 누구나 편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겠다는 사업 취지를 살리려면 접근성뿐 아니라 외부에서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환경까지 갖출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서울마음편의점 동대문점(왼쪽)과 성동점(오른쪽). 시설이 복지관 내부에 있어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 위치를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 Ⓒ 장은빈

서울마음편의점의 역할은 고립된 주민을 공간 안으로 불러들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어렵게 만들어낸 관계를 유지하고 다시 지역사회와 연결하는 과정까지 이어져야 한다. 황유진 사회복지사는 "고립된 사람을 발굴해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지역에 나갈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서울마음편의점은 그분들이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다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hibongsoo@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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