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대의 이로운 기술, 다정한 도시] 인공지능의 새로운 원료, 취향 혹은 아비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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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적의 시간』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이정동 교수는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 살아남는 방법은 자기만의 취향을 갖는 것"이라고 말한다.
남는 것은 인간이 살아오며 남긴 취향의 흔적이다.
그것을 완전히 없애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인간도 인공지능도 잘 모르는 사람이다.
이러한 취향이야말로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 기계와 함께 역사를 한 걸음 더 공진시킬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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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적의 시간』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이정동 교수는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 살아남는 방법은 자기만의 취향을 갖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취향은 좋아하는 음식이나 음악, 옷차림에 대한 단순한 선호가 아니다. 내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에 대한 자신만의 답이다. 다시 말해 취향은 희망과 꿈, 비전과 세계관의 다른 이름이다.
취향은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는 한 사람이 살아온 사회적 환경, 문화적 경험, 계급적 위치, 몸에 밴 습관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이것을 '아비투스(Habitus)'라고 불렀다. 아비투스는 머리로 외운 생각이 아니라, 몸에 밴 세계관이다. 무엇을 자연스럽다고 느끼는지, 무엇을 불편하다고 느끼는지, 어떤 공간과 말투와 냄새와 침묵에 반응하는지가 그 안에 들어 있다.
올해 베니스 국제영화제 은사자상을 받은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은 이 아비투스의 균열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해고노동자 호석과 그의 아내 미옥,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와 그의 남편 상우가 만나 서로 다른 삶과 숨은 욕망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해고된 자와 남은 자, 찍는 자와 찍히는 자, 고통을 겪는 자와 그것을 기록하려는 자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놓여 있다. 호루라기 하나, 아이가 남긴 벽면의 흔적, 물을 뿌리는 장면 같은 사소한 물건과 행위는 단순한 소품이 아니다. 그것은 해고노동자와 남은 노동자, 죽은 자와 산 자의 감각을 가르는 아비투스의 흔적이다. 사람은 거대한 선언보다 가족이 툭 던지는 몇 마디 말, 몸에 밴 침묵, 버티는 방식 속에서 무엇으로 시들고 무엇으로 다시 살아나는지를 드러낸다.
인공지능의 쓰나미가 밀려오면서 옛 가치들이 흔들리고 있다. AI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기존 노동을 더 빠르고 싸게 대체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가치사슬의 중간은 잘려 나가고, 기획과 실행 사이에 있던 수많은 직무는 기계의 자동화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 시대에 무엇이 인간에게 남는가. 남는 것은 인간이 살아오며 남긴 취향의 흔적이다. 공개된 텍스트와 이미지, 코드와 문서는 이미 거대 모델의 학습 재료가 되었다. 일론 머스크는 '인간이 만든 기존 데이터는 이미 바닥났다(Exhausted)'는 점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인류가 오랜 역사를 거쳐 쌓은 데이터를 사실상 아무런 대가없이 무제한 가져가 학습하고, 제3세계 지식 노동자들이 '인형 눈붙이기' 같은 데이터 라벨링을 저임금으로 착취한 AI 대기업은 무수한 자본과 물량, 하드웨어를 투입하여 숨은 데이터를 찾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것은 기계에 의해 침탈당한, 계급이 만든 자신만의 아비투스를 반영한 취향 데이터일 가능성이 높다. 인간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디에서 멈추는지, 무엇을 불편해 하는지,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 어떤 장면을 아름답다고 느끼는지, 어떤 부조리를 견딜 수 없다고 느끼는지에 관한 데이터다. 클릭과 구매 기록만이 아니다. 말투, 망설임, 분노의 지점, 농담의 방식, 사랑의 표현,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까지 데이터가 된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 내가 머무는 영상, 내가 클릭한 문장, 내가 화를 낸 뉴스, 내가 오래 바라본 이미지가 모두 나를 설명하는 원료가 된다. 취향은 인간의 자유로운 표현이면서 동시에 자본과 알고리즘이 포획하려는 대상이 되었다. 아비투스는 더 이상 사회학 교과서 속 개념이 아니다. AI 시대의 가장 깊은 데이터 광맥이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이야기는 너무 어둡다. 인간의 취향이 데이터로 빨려 들어간다고 해서 인간이 사라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인간과 기계의 관계는 어느 한쪽의 완전한 승리로 끝나지 않는다. 기계는 인간의 흔적을 배워 더 정확해지고, 인간은 기계를 통해 자신의 질문을 더 멀리 밀고 갈 수 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불완전하다. 인간의 불완전함은 운명이며, 영원히 해소될 수 없다. 착각하고, 편견을 갖고, 쉽게 지친다. 기계도 불완전하다. 환각을 만들고, 맥락을 놓치며, 책임을 지지 못한다. 인간의 불완전성과 기계의 할루시네이션은 서로 다른 한계다. 그것을 완전히 없애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인간도 인공지능도 잘 모르는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완전성이라는 목표가 아니라, 성장과 성숙이라는 방향이다.
따라서 인간이 집중해야 할 것은 서로 사랑하고 공감하는 능력, 공동체를 향한 감각, 건강한 상승 욕망, 스스로 검열하는 내적 도덕 장치, 진정성의 충돌과 마찰을 더 높은 에너지로 바꾸려는 의지다. 이것은 낡은 윤리 교과서의 문장이 아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 기계와 협력하여 공동의 지능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본원적 가치다.
인간의 이러한 노력은 흥미롭게도 기계에도 이롭다. 인간이 더 깊은 질문을 하고, 더 좋은 공동체를 만들고, 더 섬세한 취향을 가꾸는 과정에서 더 좋은 데이터가 생긴다. 그 데이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담은 데이터다. 기계가 배워야 할 것은 인간의 욕망만이 아니라, 인간이 욕망을 다루는 방식이다. 인간이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부끄러워하며,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를 배울 때 기계도 조금 더 이로운 방향으로 조정될 수 있다.
인간은 기계로 확장되려 하고, 기계는 인간을 통해 더 정확해지려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 희망과 꿈, 비전과 세계관에 관한 취향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취향이야말로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 기계와 함께 역사를 한 걸음 더 공진시킬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다.
김희대 대구테크노파크 지능도시본부장·유럽리빙랩네트워크 대구창의리빙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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