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혈액형은 O형? 혈액형은 누군가 설계했다는 주장은 맞는걸까

2026. 9. 28.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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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A·B·AB·O형 혈액형과 인류의 진화, 지역별 혈액형 분포를 표현한 삽화. 유전자 비교 연구에 따르면 A형과 B형에 관련된 유전적 변이는 최소 2000만 년 전 영장류의 공통조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인류 최초의 혈액형은 O형이며 A형과 B형은 인류가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갑자기 출현했다”

한 SNS에 올라온 주장이다.

주장에 따르면 O형은 약 4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가장 오래된 혈액형이고, A형은 약 2만5000년 전 유럽과 아시아 일부 지역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B형은 히말라야와 중앙아시아에서 별도로 나타났으며 AB형은 서로 다른 혈액형을 가진 인구집단이 만나면서 탄생했다는 설명이다.

이 주장은 혈액형에 따라 면역력과 성격이 달라진다는 설명으로 이어진다. O형은 모든 병원체에 강한 ‘전사의 혈액’이고, A형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높아 권위와 사회적 위계질서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혈액형이 자연적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특정한 기능을 갖도록 설계됐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 주장은 사실에 근거한 주장일까. 팩트체크 해보니 실제 유전학 연구 결과는 달랐다.

2012년 미국 시카고대학 등의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인간과 다른 영장류의 ABO 유전자를 비교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A형과 B형을 결정하는 유전적 다형성이 최소 2000만 년 전 공통조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서로 다른 종이 갈라진 이후에도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적 변이가 유지되는 현상을 ‘종간 다형성’이라고 한다. 연구진은 여러 유전자 변이가 오랜 시간 유지되는 ‘균형선택’이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혈액형의 역사가 현생인류의 등장보다 훨씬 오래됐다는 뜻이다.

O형이 모든 혈액형의 출발점이라는 주장도 유전자 분석 결과와 맞지 않는다. ABO 혈액형은 적혈구 표면에 존재하는 당 항원의 차이로 구분된다. A형과 B형 유전자는 각각 다른 당을 부착하는 효소를 만드는 반면, 일반적인 O형 유전자는 돌연변이로 효소의 기능을 상실한 형태다. 연구진은 O형을 만드는 기능상실 돌연변이가 서로 다른 영장류에서 독립적으로 발생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혈액형이 지역에 따라 다르게 분포한다는 설명에는 과학적 근거가 있다. 실제로 특정 원주민 집단에서는 O형의 비율이 매우 높다. 이러한 차이는 인구 이동과 창시자 효과(Founder Effect, 소수의 개체가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해 집단을 형성할 때, 이들의 유전적 특성이 후손에게 집중적으로 이어지는 현상), 유전적 부동((Genetic Drift, 자연선택과 관계없이 우연에 의해 집단 내 특정 유전자의 비율이 세대를 거치며 달라지는 현상), 자연선택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특정 지역에서 어떤 혈액형이 많이 발견된다는 사실만으로 그 지역에서 해당 혈액형이 처음 등장했다고 볼 수는 없다.

혈액형과 면역력의 관계는 어떨까. 혈액형에 따라 특정 감염병에 걸리거나 중증으로 진행될 위험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에서 확인됐다.

2018년 발표된 메타분석에서는 O형이 아닌 사람들이 O형에 비해 중증 열대열 말라리아에 걸릴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노로바이러스 감염에서는 O형이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혈액형과 감염병의 관계는 병원체마다 다르다. O형이 모든 병원체에 강하다는 주장은 연구 결과와 맞지 않는다.

혈액형이 성격을 결정한다는 주장 역시 대규모 연구에서 지지를 얻지 못했다.

2014년 일본의 심리학자 나와타 겐고는 일본과 미국에서 수집한 1만 명 이상의 설문조사 자료를 분석했다. 혈액형에 따른 성격 차이를 검토한 68개 문항 가운데 65개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혈액형이 설명하는 성격 차이의 비율은 0.3% 미만이었다.

A형은 코르티솔 수치가 높아 권위에 민감하다거나 B형은 신경조직에 작용하는 특별한 단백질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신뢰할 만한 연구 결과가 제시돼 있지 않다. 혈액형에 따라 성격이 달라진다는 이른바 ‘혈액형 성격론’ 역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혈액형에 따른 수혈 적합성과 감염병 위험의 차이는 실제로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물학적 특성이 혈액형의 인위적 설계를 입증하지는 않는다. 인간과 다른 영장류가 공유하는 ABO 유전자의 오랜 진화 역사는 혈액형이 인류 역사 중 특정 시기에 갑자기 등장했다는 주장을 반박한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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