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광양 1고로의 외로운 순찰자 ‘스팟’⋯ “오전 7시, 혼자 나갔다 털썩”

천원기 기자 2026. 9. 28.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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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 피지컬 AI 현장을 가다①
포스코 이름 달고 死地 누비는 4족 로봇
1일 2회 ‘자율’ 순찰⋯충전까지 홀로 완료
1200도 열풍·유독가스 위험 현장은 스팟
자료 포스코, 생성형 인공지능 제작 이미지.

귀를 찢는 굉음과 숨 막히는 열기 속에서 노란 몸체의 인공지능(AI) 4족 보행 로봇이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1200℃의 열풍이 휘몰아치는 거대한 배관 아래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사람은 접근조차 어려운 사지(死地)로 스스로 걸어간 것이다. 지난 23일 오후 1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포스코 광양제철소 1고로(용광로) 풍구상(코크스 연소 바람 구멍)엔 ‘스팟’이 홀로 서 있었다.

노란 외피에 ‘포스코’와 현대자동차그룹 ‘보스턴다이내믹스’ 로고를 새긴 스팟은 스스로 판단하며 고로 둘레를 순찰했다.

제철소의 극한 환경을 뚫고 걷는 비결은 탄탄한 기계적 구조에 있다. 길이 1.1m, 폭 50㎝, 배터리를 포함한 무게 30㎏대의 스팟은 다리마다 세 개씩, 총 12개의 정밀 구동축으로 움직인다. 계단과 장애물이 가득한 제철소 바닥에서 최대 30㎝ 높이의 단차를 훌쩍 넘고, 30도의 가파른 경사로도 거침없이 오르내린다.

최고 시속 5.8㎞로 걷고, 14㎏에 달하는 특수 계측 장비도 짊어진다. 스팟 등 위에는 둥근 보호틀로 둘러싸인 열화상 카메라와 지향성 마이크가 우뚝 솟아 현장의 열과 소리를 실시간 감시했다.

스팟이 누비는 광양 1고로는 내용적 6000㎥에 달하는 초대형 설비다. 고로 하부 둘레에는 쇳물을 녹이기 위해 1200℃ 열풍을 불어넣는 송풍지관(送風支管) 44개가 원형으로 촘촘히 늘어서 있다. 관로 내부의 열풍이 고로 안으로 뿜어져 들어가는 풍구다.

1200℃의 초고온 복사열과 유독가스 위험이 도사려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포스코 광양제철소 1고로 풍구상에서 4족 보행 로봇 ‘스팟’이 자율 순찰 시연을 펼치고 있다. 포스코 제공.

이곳은 제철소 내에서도 가장 위험한 구역이다. 수백 도의 살인적 복사열이 뿜어져 나오는 데다, 고로가 노후화되면 미세한 틈새로 치명적인 고로가스(BFG)가 새어 나온다. BFG에는 무색·무취의 일산화탄소가 다량 포함돼 있어 미세 누출 조차 작업자가 흡입하는 순간 중독과 질식으로 이어진다.

이런 사지에서 스팟은 송풍지관과 풍구의 이상 과열을 잡아낸다. 로봇은 벽면에 부착된 바코드 형태의 표식으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며 이동했다. 상단 열화상 카메라가 송풍지관을 차례로 비추며 표면 적외선 데이터를 훑었다. 관로 외피 온도가 정상 범위를 유지하는지, 내화물이 떨어져 나가 붉게 달아오른 핫스팟이 있는지 등을 실시간 스캔했다.

이상 징후가 포착되면 대응 체계가 즉각 가동된다. 표면 온도가 기준치를 초과하는 이상 고온이 감지될 경우 수집된 온도 데이터는 현장 조업 담당자에게 전송되는 체계도 고도화하고 있다. 경고받은 작업자가 현장으로 이동해 실제 데이터 오류 여부를 교차 검증하고 관로 보수나 냉각 조치를 신속히 결정하는 방식이다. 로봇이 ‘위험의 눈’이 되고, 사람은 ‘판단과 조치’를 맡는 협업 구조다. 광양 1고로 조업 총괄 담당자는 “스팟은 온도가 과상승됐는지, 지금 안정적인지 체크한다”면서 “매일 아침 7시와 저녁 7시 등 1일 2회 스스로 작동한다”고 귀띔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사람보다 먼저 출근하는 셈이다. 정해진 점검 코스를 한 바퀴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25분 안팎, 고로 둘레를 정밀 진단하는 동안 배터리는 약 20%가 닳았다.

1200℃의 초고온 복사열과 유독가스 위험이 도사려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포스코 광양제철소 1고로 풍구상에서 4족 보행 로봇 ‘스팟’이 자율 순찰 시연을 펼치고 있다. 포스코 제공.

점검을 마친 로봇의 행동은 더 놀라웠다. 한 바퀴를 완주한 로봇은 현장 한편에 마련된 도킹 스테이션으로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충전 패드 위에 네 다리를 오므리고 ‘털썩’ 주저앉자 충전 단자가 결합되고, 배터리를 자동 충전했다. “충전은 직접 해줘야 합니까?”라고 묻자 현장 담당자는 “도킹 스테이션 룸에 복귀해 스스로 한다”고 설명했다. 관리자가 없어도 하루일과를 스스로 시작해 마치는 것이다.

중앙관제센터의 한계도 로봇이 메웠다. 관제센터에서는 풍구로 유입되는 냉각수의 입·출수 온도차 데이터를 실시간 확인하지만, 설비 외벽의 미세한 크랙이나 국부적 열화까지는 확인하지 못한다. 거대한 고로 외벽 전체에 수천개의 고정식 센서를 두르는 것은 막대한 비용 탓에 불가능에 가깝다. 로봇개는 좁고 험한 설비 틈새를 자유자재로 누비며 고정식 카메라의 사각지대를 완전히 지웠다. 강대건 광양제철소 부공장장은 “피지컬 AI 도입으로 작업자가 위험한 현장 대신 창의적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광양=천원기 기자 1000@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