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위기’ 선언에도… 여성 10명 시신에 발칵 뒤집힌 남아공

김혜민 기자 2026. 9. 28.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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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여성 살해
지난 17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에쿠룰레니 복스버그의 한 도로변에서 경찰이 유기된 여성 시신을 조사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아프리카 대륙의 유일한 G20 회원국이자 최대 경제 대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최근 두 달 사이 참혹하게 살해당한 여성 시신 10구가 잇따라 발견됐다. 현지 당국이 연쇄 살인 사건일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인 가운데, 남아공 전역에서는 여성에 대한 폭력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번지고 있다.

◇20~30대 여성 10명 살해

27일 AFP 등에 따르면, 전날 남아공 최대 도시 요하네스버그 북동쪽 에쿠룰레니 템비사의 공동묘지 인근에서 반나체 상태의 여성 시신이 발견됐다. 이 일대는 앞서 20~30대 여성 9명이 살인 사건으로 희생된 곳이다. 첫 번째 피해자(37)는 지난 7월 15일 나체 상태로 케이블 타이에 목이 졸려 사망한 채 발견됐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7~8월 총 3명이 숨졌고, 이달 중순까지 각기 다른 장소에서 시신 6구가 추가로 발견됐다.

여성을 노린 동일범의 소행으로 볼 만한 정황도 있다. 피해자는 대부분 나체이거나 옷을 일부만 걸친 상태였다. 몸에서는 멍이나 성폭행 흔적이 발견됐다. 몇몇은 주요 도로 인근의 개방된 장소에 버려져 있기도 했다. 남아공 경찰은 연쇄 살인 전문 인력을 투입했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 수법 등에서 유사성이 나타나고 있다”면서도 “연쇄 살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일상생활을 하다 희생됐다. 지난 9일 엘리자베스 모셀락고모(38)는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가 실종됐다. 귀가 시간이 지나도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자 여덟 살 딸이 친척들에게 알렸고, 모셀락고모는 사흘 뒤 숨진 채 발견됐다. 피로즈 카찰리아 경찰부 장관 직무대행은 “누군가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견디기 어렵다”며 “우리 사회의 여성들, 우리 어머니와 자매, 딸과 아이들이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내 몸은 범죄 현장이 아니다” 지난 17일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에서 여성 연쇄 살인 피해자를 추모하는 달리기 행사 참가자들이 “내 몸은 범죄 현장이 아니다”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국가 재난’ 선포에도 여전한 치안 재앙

남아공에선 그동안 여성에 대한 폭력과 강력 사건 등이 끊이지 않았다. 2019년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국가적 위기’로 규정하고, 지난해 11월 재난관리법에 따라 젠더 기반 폭력과 여성 살해를 ‘국가적 재난’으로 공식 지정하며 강력 대응을 천명했다. 그러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남아공 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올 4~6월 사이 여성 569명이 살해됐고, 1052명은 살인 위협을 겪었다(살인 미수).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에 따르면, 2022년 남아공 여성 살해율은 10만명당 12.2명으로 세계 평균(2.1명)의 6배에 달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남아공에서 여성 대상 폭력은 고질적 문제이며, 살해되는 여성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는 뿌리 깊은 가부장적 문화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남아공 싱크탱크 안보연구소(ISS)는 “여성 살해의 71%가 연인·배우자 또는 가족 구성원에 의해 발생했다”며 “여성을 지배·통제하려는 사회 규범이 여성에 대한 폭력을 더욱 쉽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2024년 남아공 인간과학연구위원회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아공 남성의 약 70%가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답했다.

경찰의 낮은 수사 능력도 고질적인 치안 문제의 요인으로 꼽힌다. 남아공 경찰청에 따르면, 2024년 4월~2025년 3월 살인 사건 해결률은 10.13%에 불과했다. 리젯 랭커스터 ISS 분석가는 “경찰에 대한 낮은 신뢰가 신고와 수사 협조 감소, 수사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27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의 한 술집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 현장을 주민들이 바라보고 있다. 전날 오후 요하네스버그 남서쪽 웨델라 타운십의 한 주점에서 무장 괴한 8명이 총격을 벌여 17명이 숨졌다. /AFP 연합뉴스

◇“여성 살해 멈춰라” 전국적 시위

남아공 전역에서는 여성 폭력에 반대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9일 요하네스버그에서는 모셀락고모를 추모하는 달리기 행사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여성 살해를 멈춰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었다. 행사에 참가한 레라토 렌첼라는 로이터에 “우리는 달릴 때도, 우체국에서도, 데이트를 할 때도, 집에서도, 우버를 탈 때도 안전하지 않다”고 말했다.

수천 명의 여성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2019년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당시 소포를 찾으러 우체국에 갔던 케이프타운대 1학년 여학생이 대낮에 직원에게 성폭행당한 뒤 살해됐다. 비슷한 시기 임신 중이던 여성이 갱단의 총격에 목숨을 잃으며 전국적 시위를 불러일으켰다.

총격과 살인·강도 등도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26일 밤 요하네스버그 남서쪽 웨델라 타운십의 주점에서는 무장 괴한 8명이 총격을 벌여 17명이 사망했다. 약 네 시간 만인 이튿날 새벽에는 케이프타운 외곽의 상점에서 총격이 발생해 10명이 숨졌다. 하룻밤 사이에 27명이 총격으로 숨진 것이다.

22일에는 동부 해안 도시 더반 근교의 파티장에서 총격이 발생해 임신부로 추정되는 여성을 포함해 11명이 숨졌다. 경찰 통계에 따르면 올해 4~6월 남아공에서는 5427건의 살인이 벌어져 하루 평균 약 60명이 살해됐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범인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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