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 폭발시킨 ‘숨은 손’… K디자인 업고 베트남으로 간다

살면서 한번도 해본 적 없는 말이 ‘심심해’라는 이 여인은 ‘디자인계 대왕대비’로 불리는 이영혜다. 80년 언론통폐합때 ‘월간 디자인’이 폐간되자 전두환에게 ‘디자인은 굴뚝없는 산업. 이 나라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 편지를 써 기어이 복간시킨 여걸이다. ‘행복이 가득한 집’ ‘럭셔리’ 등 고품격 라이프스타일지로 출판계를 뒤흔든 그는, ‘잡지의 종말’이란 말에 코웃음을 쳤다. “콘텐츠가 독보적이면 디지털과 AI는 또다른 기회지.” 내년 봄엔 베트남으로 간다. 누적 관객 500만 명을 돌파한 ‘리빙디자인페어’를 하노이에서 연다. 창립 50주년의 쾌거다.
◇ 국가가 할 일 내가 했다
-디자인을 화두로 반세기를 살았다.
“좁쌀만 굴려온 느낌이다. 바위를 굴리면 흙도 묻고 이끼도 묻어 점점 커질텐데, 좁쌀은 아무리 굴려도 묻는 게 없으니(웃음).”
-한국 디자인계 권력이 좁쌀이라니.
“철강, IT, 아니 쿠팡 같은 비즈니스를 이런 열정으로 했으면 진작에 부자됐지. 하긴 좁쌀도 많이 하다 보면 한 가마도 되고 두 가마도 되니까 후회는 없다(웃음).”
-‘월간 디자인’ 기자로 입사했다 아예 회사를 인수한 게 스물일곱 살때였다.
“‘도무스’ 같은 세계적인 디자인지를 만들고 싶었다. 무역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 ‘월간 디자인’ 창간 소식을 듣고 달려간 이유다. 발행인이 건축과 대학원생이었는데 어느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다길래 내가 인수해버렸다. 부모님 주신 결혼자금을 털어서.”
-결혼 대신 일을 선택한 건가?
“못난 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일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나 보다. 어떤 책임감에 이끌린 것도 있다. 디자인 생태계의 기록자가 되어, 차곡차곡 쌓여가는 아카이브를 기업과 학계에 자료로 제공하고, 젊은 디자이너들을 발굴했다. 나라가 할 일을 우리가 한 셈이다.”
-디자인은 왜 중요한가?
“군부 정권에 읍소한 대로다. 한 장에 150달러에 팔리는 이탈리아 셔츠와 단돈 9달러에 팔리는 국산 와이셔츠의 차이는 디자인이다. 스티브 잡스와 조너선 아이브 얘기도 해야 하나? 자동차도 배터리가 아니라 디자인이 승부수가 됐다. 전세계 럭셔리 브랜드를 움직이는 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AI시대 모든 경쟁에서 디자인은 승패를 가를 더욱 강력한 요소가 될 것이다.”
-K컬처에 K디자인의 공이 지대하다고 했다.
“K팝이 음악만으로, K드라마가 스토리만으로 성공했을까? 공연과 영상을 뒷받침하는 의상, 무대, 조명, 앨범 재킷, 포스터, 굿즈, 브랜딩까지 모든 과정이 디자인 작업이다. K컬처의 폭발적 성장은 디자인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 연예인, 정치인 스캔들 없는 잡지
-인수한 ‘월간 디자인’은 43년 만에야 첫 수익을 냈더라.
“빨간 노끈에 묶여 쌓여 있는 잡지를 보고 엄마가 ‘너는 돈을 줬더니 왜 종이를 만드느냐’고 묻더라. 폐간됐을 때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부모가 말려도 안 듣더니 나라가 말려준다고, 하하!”
-왜 버텼나?
“포기하려니 약이 올라서.”
-어떻게 버텼나?
“직원들 월급 주려고 일주일의 절반은 다른 회사 달력, 카탈로그, 단행본을 만들었다. 과로로 순천향병원 응급실에 실려간 것만 일곱 번. 안 되겠다 싶어 타개책으로 만든 게 ‘행복이 가득한 집’(행가집)이다.”
-행가집은 연예인, 정치인 스캔들 없는 최초의 라이프 스타일지라고 한다.
“나는 누가 누구랑 연애하고 남 몰래 애 낳다는 얘기들이 하나도 안 궁금했다. 미국에 ‘베터 홈스 앤 가든’이란 잡지가 있는데 부부가 자기 집 앞에 세울 대문의 패턴을 만들고 조각하고 색칠해가는 과정을 소개하더라.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잘 사는 동네 가보면 그저 높기만 한 벽, 넓기만 한 잔디밭 등 ‘취향’이라곤 없었다. 스스로 생활을 디자인하며 자기만의 스타일, 행복의 가치를 찾아가려는 사람들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정기구독’이란 걸 처음 시작한 잡지다.”
-창간 8개월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잘 될 거란 확신이 있었나?
“화가 박서보가 홍대 교수였다. 줄을 죽죽 그은 그림을 보고 학생들이 저게 무슨 그림이냐고 흉봤다. 그 그림이 50년 뒤 단색화란 이름으로 세계 화단을 휘저었다. 박서보는 그렇게 될 줄 알았을까? 자신은 몰랐지만 몸 속 세포는 알았을 것이다. 나도 그런 것 같다(웃음).”
-행가집의 성공은 ‘서울리빙디자인페어’로 이어졌다.
“잡지에 나온 가구와 소품들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문의가 빗발쳤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만나게 해주려고 1994년 첫 박람회를 열었는데, 매년 20만명 넘는 관객이 몰려온다.”
-베트남으로 진출한다던데.
“베트남의 빈(VIN) 그룹과 협업해 코엑스보다 6배 큰 전시장에서 닷새간 박람회를 연다. K디자인의 해외시장 개척이라 가슴이 뛴다. 도시화, 아파트화, 중산층 확대가 가속화되고 있는 베트남에 우리 작가들의 가구, 공예품, 그림을 포함한 ‘공간 연출력’을 판매할 것이다. 벌써부터 모델하우스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 잡지의 종말? 천만에
-디지털은 위기 아닌 기회라고 했더라.
“잡지의 본질은 종이가 아닌 콘텐츠다. 우리가 쌓아온 지적 재산(IP)을 영상, 단행본, 전시, 컨설팅, 굿즈 등 다양한 형태로 변형하고 가공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다각화해 나갈 것이다.”
-유튜브 ‘행가집’, 1인 가구를 겨냥한 디지털미디어 ‘1집’도 그 일환인가?
“물론이다. 특히 ‘1집’은 ‘내가 돈이 없지 감각이 없냐’고 반문하는 청년들의 감각적·미학적 자립을 위한 미디어다. 작은 공간이라도 대충 살지 않고 나만의 취향으로 채우는 ‘1인 라이프 스타일’을 향한 응원가다.”
-유학파도 아닌데, 그런 안목과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나?
“신문만 열심히 읽어도 아이디어가 막 떠오르던데?(웃음) 조선일보 비롯해 매년 신춘문예 당선작들도 빼놓지 않고 읽는다. 젊은이들의 의식, 생각의 흐름을 따라잡기 위해서.”
-책벌레였더라.
“교사였던 부모님 유산이다. 시골학교 도서관이 내 놀이터였다. 특히 영웅전에 심취해서 아직도 내겐 ‘나폴레옹 콤플렉스’가 있다(웃음).”
-문화예술계 마당발로도 유명하다.
“내 사주에 우물이 있단다. 동네 여자들이 와서 쌀 씻고 빨래하고 콩나물 다듬으며 온갖 정보 주고받는 곳이 우물인데, 내 삶과 딱 맞아떨어져 신통할 뿐이다.”
-백남준, 이어령, 이우환 같은 거장들과도 각별했다고.
“백남준 선생이 훈민정음에서 사라진 네 글자를 복원해야 한다던 말씀을 잊을 수 없다. 전세계 언어의 발음을 표기할 수 있는 28자를 되살리는 캠페인을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Fashion’도 ‘패션’, ‘Passion’도 ‘패션’이라고 쓰는 게 말이 되나?”
-이어령 별세 후 ‘장예전(長藝展)’을 열었더라..
“말씀 한번 시작하면 두세 시간은 기본이라 ‘말 좀 짧게 하시라, 머리 좋은 분이 그걸 왜 못하냐’ 핀잔도 많이 했지(웃음). 투병 소식 듣고 살아계실 때 장례식을 치르자고 제안했다. 한시라도 건강할 때 마지막 인사를 나누자고. 충청도 본가에서 반대해 생전엔 못하고 49재에 해드렸다. ‘대도서관’이 사라진 느낌이다.”
-세종대왕의 한글과 이순신은 대한민국이 ‘팔아야 할’ 최고 브랜드라고도 했다.
“서울 여수 통영 등지에 거북선 재현해놓은 걸 보고 기가 찬 적이 많다. 학익진, 열두 척의 배 같은 위대한 스토리를 가지고 거북선은 물론 이순신 캠프, 이순신 로드 등 창의적으로 디자인할 수 있는 국가적 이벤트가 차고 넘치는데, 우리의 상상력은 너무도 빈약하다.”
-문체부 장관을 했어야….
“역대 누구보다 잘했겠지, 하하! 농담이고, 정책 입안자들에게 더 세게 쓴소리하지 않은 게 후회된다.”
-공무원들에 디자인 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했다.
“국영수나 잘하지 한 치도 삐뚤어본 적 없는 이들이 정부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어서 속이 터진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디자인을 뭔가 예쁘게 포장하는 후공정, 스타일링 정도로만 아는데, 디자인은 문화, 교육, 산업 등 모든 분야의 가치를 증폭시키는 기반이다. 뭣보다 기업, 수출과 직결된다. 대통령 직속의 ‘디자인청’을 만들어야 한다.”

◇ 갓 쓰고 등원하는 국회의원
-국회의원이 첫 등원할 때 갓 쓰고 한복을 입어야 한다고 제안한 적이 있다.
“한복 입고 등원하면 적어도 막말, 고함, 드잡이는 삼가지 않을까. 갓은 또 얼마나 멋스러운가. ‘케데헌’보다 여의도 국회가 먼저 떴을 것이다.”
-위정자들에 한말씀.
“럭셔리의 반대말은 가난이 아니라 천박함. 큰 그림없이 잔가지만 매달리면 용렬해진다. 백성만 바라본 세종의 덕을 배워라.”
-10월 26일부터 한 달간 장충동 사옥에서 ‘막 페스티벌’을 연다.
“막춤, 막사발, 막걸리의 ‘막’이다. 재지 않고 터져나오는 것, 겁없이 섞고 스며들게 하는 것. 정주영 회장이 거북선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영국 은행에 보여주며 울산조선소 건설 자금을 확보했다는 뚝심이 ‘막 정신’이다. 그 야성, 역동성을 되찾아야 한다.”
-곳곳에 안테나를 세우고 살면 피곤하지 않나?
“심심해지고 싶은데 그게 내겐 가장 어렵다. ‘행복 작당’을 할라치면 아직도 가슴이 뛰고 머리가 휙휙 돌아간다(웃음).”
-창립 50주년이다.
“‘행복이 가득한 집’ 창간할 때 돈을 빌리러 대형 출판사를 찾아다녔다. 금성출판사 회장님이 조건 없이 천만원을 내주시더라.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젊은 작가 발굴과 지원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
-끝내 결혼은 안 하시나?
“우물 사주 가진 여자는 밤엔 물 뜨러 오는 사람이 없어 달만 쳐다보며 지새야 하는 팔자란다. 근데 난 그 외로움이 좋다. 진짜다, 하하!”
☞이영혜
1953년 강원 원주에서 태어나 홍익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했다. ‘월간 디자인’ 기자로 입사해 1980년 인수한 뒤 ‘행복이 가득한 집’, ‘럭셔리’, ‘스타일 H’ 같은 라이프스타일 잡지와 1000종이 넘는 단행본을 출간했다. 매년 서울리빙디자인페어,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을 열고 있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 백남준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2020년 ‘디자이너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사진설명]권칠승(좌), 장동혁(우)
- 고성 식품 제조공장서 압착 사고… 40대 노동자 숨져
- 특검, ‘김건희 로저비비에 선물’ 김기현 의원에 징역 1년 구형
- 가수 반대했던 엄마 정유경의 백화점 전광판에... 딸 ‘애니’ 뮤비 뜬다
- “트럼프, 시진핑에게 ‘미국 무기 사겠소?’ 물었다”
- 경찰, ‘김승원 신약 청탁’ 부정거래 사건 고발인 조사
- 레버리지 광풍에 휩싸였던 당신...매수·매도 버튼 누르기 전의 질문
- 나경원 “최초 軍 보고서에 ‘北 목함 지뢰 추정’ 들어갔다 삭제”
- 삼성전자, ‘삼성 AI 구독’ 새단장…신혼·시니어·기업 맞춤 서비스 확대
- 카카오, CA협의체 공동의장에 김도영… 인적분할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