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끝자락 ‘녹실’ 연 이형일…첫 안건은 전기차ㆍ퇴직연금
취임 닷새 만에 경제현안간담회 가동
관계장관·경제성장수석 소규모 ‘핀셋 조율’
안방 뺏긴 국산 전기차·20년 만의 퇴직연금 개편
예산 떼어낸 재경부, ‘컨트롤타워’ 첫 시험대

[대한경제=최지희 기자]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27일,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관계부처 장관들과 청와대 경제성장수석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지난 22일 취임한 지 닷새 만이다.
첫 테이블에 오른 안건은 ‘전기차 산업 정책방향’과 ‘퇴직연금 제도개선 방안’. 수입 전기차 공세에 안방을 내주고 있는 국산 전기차, 20년 만의 구조 개편을 앞둔 퇴직연금 모두 여러 부처의 권한과 이해가 얽혀 있어 한 부처 힘만으로는 풀기 어려운 난제라는 공통점이 있다.
27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이 부총리는 이날 오후 5시 첫 경제현안간담회를 주재했다. 회의에는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김영훈 고용노동부·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과 이억원 금융위원장, 문신학 산업통상부 차관, 하준경 청와대 경제성장수석이 참석했다. 정부는 이날 논의를 토대로 부처 간 추가 협의와 각계 의견 수렴을 거쳐 정부 방침을 확정할 계획이다. 재경부는 “앞으로도 관계부처 장관과 청와대 관계자가 참여하는 간담회를 수시로 열어 주요 경제현안을 신속하게 협의·조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녹실회의’ 닮은꼴…예산 분리 후 조율 공백 메우기
경제현안간담회는 이 부총리가 후보자 시절부터 신설을 예고해온 협의체다. 부처 간 이견이 첨예하고 파급력이 큰 핵심 사안을 놓고 관계부처 장관과 청와대가 소규모로 수시로 모여 의견을 조율하겠다는 구상이다. 과거 경제부총리가 관계 장관들과 비공식적으로 현안을 조율하던 ‘녹실(綠室)회의’와 닮은꼴이란 평가가 나온다.
이 부총리는 취임식도 생략한 채 첫날부터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에 출석해 3500억달러 규모 대미투자 첫 사업을 보고했고, 같은 날 밤 해외 투자자 대상 한국경제설명회(IR) 참석차 뉴욕으로 향했다. 귀국 후 연휴가 채 끝나기도 전에 첫 간담회를 소집한 셈이다.
협의체를 새로 꾸린 배경에는 달라진 정부조직도 자리한다.
기획재정부가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나뉘면서 경제부총리가 예산 편성권 없이 경제정책 전반을 조율해야 하는 구조가 됐다. 이날 간담회에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이름을 올린 것도 정책 방향과 재원 배분을 한 테이블에서 맞추려는 포석이란 분석이다. 공식 안건을 의결하는 경제관계장관회의 이전 단계에서 쟁점을 미리 정리하는 ‘사전 조율 창구’ 역할을 맡게 될 것이란 관측이다.
◆수입차 절반이 전기차…국산 전기차 ‘안방 수성’ 비상
첫 번째 안건인 전기차는 국내 시장 판도 변화가 그만큼 빠르다는 방증이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1~8월 수입 승용차 누적 등록대수는 24만4825대로 전년 같은 기간(19만2514대)보다 27.2% 늘었다. 지난 6월에는 수입 승용차 신규 등록의 51.1%(1만9453대)가 전기차였고, 테슬라와 BYD 두 브랜드가 수입차 시장의 41.4%를 가져갔다.
국산 브랜드와의 격차도 좁혀졌다. 테슬라 모델Y는 지난 5월부터 국산·수입을 통틀어 국내 신차 판매 1위에 올랐다. 상반기 전기차 판매 1위를 지킨 기아도 상용차인 PV5를 빼면 5만7078대로, 테슬라(5만6139대)와의 차이가 900여대에 불과하다. 2024년 1000여대 수준이던 BYD 판매는 올해 상반기 1만1000여대로 불어났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국산 전기차의 국내 점유율 하락 원인과 가격·브랜드 경쟁력을 짚고, 국내생산세액공제 등 지원 방안이 거론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전기차 정책의 칼자루가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다는 점이다. 구매보조금은 기후에너지환경부, 산업 육성은 산업통상부, 세제는 재경부, 재원은 기획예산처 몫이다. 더욱이 국산차에 유리한 지원책은 수입차 차별 논란과 통상 마찰로 번질 수 있어 설계가 까다롭다는 지적도 나온다.
◆20년 만의 퇴직연금 수술…기금형 도입 ‘막판 조율’
퇴직연금 제도개선도 부처 간 조율이 관건이다. 2005년 퇴직연금 제도 도입 이후 20여년 만의 구조 개편이어서다. 노사정 태스크포스(TF)는 지난 2월 공동선언을 통해 기존 계약형과 기금형을 병행하고, 금융기관 개방형·연합형·공공기관 개방형 등 다양한 기금형 모델을 활성화하는 한편 퇴직급여 사외적립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기금형은 기업과 근로자가 금융회사와 개별 계약을 맺는 현행 계약형과 달리, 여러 사업장의 적립금을 하나의 기금으로 모아 전문 운용기관이 굴리는 방식이다. 고용노동부는 실무작업반 논의를 토대로 제도 설계안을 마련해 관계부처 협의와 법안 작업을 진행해왔고, 지난 2일에는 금융감독원과 함께 퇴직연금사업자 간담회를 열어 금융권 의견을 들었다.
제도 소관은 고용부지만 금융기관 인허가·감독은 금융위, 세제 혜택은 재경부 영역이어서 독립 수탁법인 도입 여부나 운용기관 책임 범위를 두고 부처별 셈법이 갈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직 과정에서 퇴직급여가 새는 문제도 과제로 꼽힌다. 2022~2024년 개인형퇴직연금(IRP)으로 이전된 금액은 63조8000억원이었지만, 같은 기간 해지 금액이 43조4000억원으로 해지율이 68.1%에 달했다.
◆ 국감·예산국회 앞두고 ‘신속 조율’ 시험대
정부 안팎에서는 이번 간담회가 신임 부총리의 조정력을 가늠할 첫 시험대란 평가가 나온다. 다음 달 국정감사와 내년도 예산안 국회 심의를 앞둔 만큼, 부처 간 이견을 얼마나 빨리 정리해 정부안으로 내놓느냐가 관건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경제현안간담회는 결론을 내리는 자리라기보다 부처 간 쟁점을 초기에 드러내고 방향을 맞추는 자리”라며 “전기차와 퇴직연금 모두 여러 부처가 얽힌 사안인 만큼 추가 협의를 거쳐 가급적 빠른 시일 내 정부안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지희 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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