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디세이’, 우리에게도 돌아갈 ‘이타카’가 있는가?

영화 '오디세이'가 묻는 인생의 귀향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국내 관객 1000만명을 넘어섰다. 개봉한 지 33일 만이며, 올해 두 번째 천만 영화이자 국내에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열 번째 외국영화가 됐다.3000년 가까이 된 호메로스의 고전 이야기가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어쩌면 시대가 첨단으로 갈수록 인간은 더욱 오래된 질문으로 돌아가는지도 모른다.
'전쟁에서 이겼지만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고독한 사람'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는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끝낸다. 그러나 승리했다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가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데 다시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린다. 바다의 폭풍과 괴물, 유혹과 죽음, 신들의 분노와 자신의 교만을 통과해야 했다. 수많은 동료를 잃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뒤에야 그는 이타카에 도착한다. 그러므로 '오디세이'는 모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한 인간이 잃어버린 자기 자신과 집을 찾아가는 귀향의 이야기다.
우리는 흔히 인생의 성공을 '얼마나 멀리 갔는가'로 판단한다. 그러나 '오디세이'는 정반대의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어디까지 갔는가?"가 아니라 "당신은 결국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오디세우스에게 이타카는 단순한 섬이 아니다. 그곳에는 아내가 있고 아들이 있으며,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기억하게 해주는 삶의 뿌리가 있다.
인간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도 이타카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고향이라는 말이 깊어진다. 어린 시절 뛰놀던 골목, 어머니가 밥을 짓던 초가집, 아버지가 논에서 돌아오던 저녁, 오래된 친구와 교회와 학교가 있던 동네가 그리워진다. 고향은 지리적인 장소이면서 동시에 우리 존재의 기억이다.
그래서 고향을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주소 하나를 잃는 것이 아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설명해 주는 기억의 장소를 잃는 것이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기술은 인간에게 목적지까지 가장 빠른 길을 알려준다. 인공지능은 수많은 정보를 몇 초 만에 찾아준다. 그러나 어떤 기술도 대신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있다. 바로 존재의 질문이다.
"나는 왜 살아가는가?"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마지막에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오디세이'가 AI 시대에 다시 살아난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역시 거대한 이동의 이야기다. 대공황과 가뭄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조드 가족은 오클라호마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그들에게 캘리포니아는 약속의 땅처럼 보였다. 그러나 도착한 곳에서 기다린 것은 풍요가 아니라 가난과 착취와 차별이었다. 그럼에도 스타인벡은 절망으로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다.
모든 것을 빼앗긴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결국 인간을 살리는 것은 자본이나 재산만이 아니라 서로를 버리지 않는 연대와 인간성이다.
오디세우스가 이타카를 찾아갔다면 조드 가족은 삶의 터전을 잃은 채 새로운 이타카를 찾아간 사람들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한다. 고향은 내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지만, 누군가 나를 받아주는 곳이기도 하다. 호메로스의 세계에서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가 '환대'다. 낯선 나그네를 받아들이고 먹을 것을 나누며 쉴 곳을 내어주는 것이다. 오디세우스가 수많은 고난을 통과하며 발견하는 인간성도 바로 이것이다. 결국 문명은 높은 건물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낯선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작은 식탁에서 시작된다.
전쟁은 사람들에게 승자와 패자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에는 양쪽 모두에게 무덤과 상처와 기다리는 가족이 남는다. 오디세우스 역시 트로이 전쟁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이 반드시 행복한 사람은 아니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의 내면에서는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오디세이'가 우리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는 더욱 묵직하다. 승리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돈을 많이 벌 수도 있고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고 양심을 잃고 자기 자신까지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에서 승리한 것인가?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곳이 고향이다. 추석 명절에 기다리는 고향이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러나 기다리는 고향이 없는 사람들에게 하늘 위로가 넘치시기를 기도한다. 김기포 포항명성교회 담임목사
Copyright © 경북도민일보 | www.hidomin.com | 바른신문, 용기있는 지방언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