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살았는데 월세 275% 올려 내쫓다니”···87세 세입자 강제퇴거에 ‘부글’ 스페인 시민 수만명 거리로

백민정 기자 2026. 9. 27.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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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서 주거비 급등·강제퇴거 항의 대규모 시위
26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87세 여성 마리카르멘 아바스칼이 아파트에서 강제 퇴거당한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주택은 권리다”, “저렴한 주택”이라고 적힌 플래카드와 집 열쇠를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70년간 살아온 집에서 쫓겨난 87세 여성의 강제 퇴거가 스페인 주거난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경찰이 문을 강제로 열고 여성을 들것에 실어 나르는 영상이 퍼지면서 공분이 커졌고, 마드리드에서는 수만명이 거리로 나와 치솟는 임대료에 항의하며 세입자 보호를 요구했다.

26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주거비 급등과 강제 퇴거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당국 추산 2만5000명, 주최 측 추산 30만명이 모였다. 시민들은 집 열쇠를 흔들고 “부끄럽다”, “투기 펀드는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주택 가격 억제와 세입자 보호를 촉구했다.

시위의 중심에는 87세 여성 마리카르멘 아바스칼이 있다. 아바스칼은 지난 23일 자신이 70년간 살아온 마드리드의 아파트에서 강제 퇴거당했다. 그가 살던 집을 매입한 부동산회사가 임대료를 기존보다 275% 올려 월 2650유로(약 410만원)로 인상하면서다. 아바스칼은 오른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집을 떠나야 했다.

경찰이 문을 강제로 열고 퇴거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아바스칼이 들것에 실려 나가는 모습이 영상으로 공개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장애가 있는 아바스칼은 퇴거 이후 탈진 증세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아바스칼은 시위에 앞서 공개한 영상에서 “나에게 일어난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며 법을 바꿔야 한다고 호소했다. 스페인 세입자단체는 아바스칼의 강제 퇴거를 주거권을 둘러싼 싸움의 “전환점”으로 규정했다.

스페인 일간 엘 파이스는 사설을 통해 “시장은 작동했고 법은 지켜졌다. 하지만 무너진 시장에서 정글의 법칙이 작용한 것이며, 결국 실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적 절차와 시장 원리에 따라 퇴거가 이뤄졌더라도 주거권을 보장하지 못한 결과라면 제도의 실패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유엔 주거권 특별보고관 콜도 카슬라는 스페인 정부에 관련 법률을 개정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부동산회사의 수익성이 아바스칼의 주거권보다 우선시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논란이 커지자 페드로 산체스 총리 정부도 입법에 나서고 있다. 사회당 정부는 다음 국무회의에서 이른바 ‘마리카르멘 법령’을 승인할 예정이다. 임대차 계약의 자동 갱신을 허용하고 강제 퇴거에 대한 제한을 강화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다만 법안이 실제로 의회를 통과할지는 불투명하다. 산체스 정부는 의회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비슷한 내용의 법안도 올해 초 의회에서 부결됐다.

지난 10년간 스페인의 임대료는 80%, 주택 가격은 63% 상승했다. 스페인 중앙은행은 2021∼2025년 신규 가구 증가 속도가 신규 주택 공급을 웃돌면서 현재 주택 약 70만채가 부족한 상태라고 분석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87세 여성 마리카르멘 아바스칼이 아파트에서 강제퇴거 당하자 26일(현지시간) 시위대가 주택난에 항의하며 열쇠를 들고 시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백민정 기자 mj10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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