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만, 한 달 전 아내 먼저 보내고 떠났다…벌써 2년

윤동언 2026. 9. 27.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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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김용만이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2년이 흘렀다.

김용만은 지난 2024년 9월 27일 자택에서 별세했다. 특히 고인은 별세 한 달 전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세월이 흘렀지만 김용만이 남긴 노래와 무대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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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용만. 사진. | KBS ‘가요무대’


[스포츠서울 | 윤동언 기자] 故김용만이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2년이 흘렀다.

김용만은 지난 2024년 9월 27일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89세. 특히 고인은 별세 한 달 전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1935년 태어난 김용만은 국악인 김대근의 아들로 성장했다. 이후 작곡가 김화영과의 인연을 계기로 1953년 ‘남원의 애수’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데뷔 이후 ‘효녀 심청’, ‘청춘의 꿈’, ‘생일 없는 소년’, ‘청산유수’ 등 수많은 히트곡을 선보이며 큰 사랑을 받았다. 대중가요는 물론 민요와 만요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구축했다.

작곡가로서의 활약도 돋보였다. 백야성의 대표곡으로 꼽히는 ‘잘 있거라 부산항’, ‘항구의 영번지’, ‘못난 내 청춘’ 등을 작곡했으며 ‘명동 부르스’, ‘후라이 맘보’ 등을 통해 싱어송라이터 면모도 보여줬다.

김용만은 2000년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국무총리 표창을 받으며 음악계 공로를 인정받았다.

생전 무대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지난해 7월 KBS 1TV ‘가요무대’에 출연해 ‘청춘의 꿈’을 열창하며 변함없는 무대 장악력을 보여줬다. 이는 대중에게 남긴 사실상 마지막 무대 중 하나가 됐다.

고인의 별세 당시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는 “구수한 입담과 흥이 넘치는 노래로 만년에도 활발하게 무대에 올랐던 분”이라며 “신랄한 세태 풍자에도 정이 느껴질 정도로 친근하고 서민적이었던 가수”라고 추모했다.

세월이 흘렀지만 김용만이 남긴 노래와 무대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hellboy321@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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