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HN 안지훈 기자) 원로가수 겸 작곡가 고(故) 김용만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고 김용만은 지난 2024년 9월 27일 오전 향년 89세를 일기로 자택에서 별세했다. 당시 김용만은 아내를 한 달 전에 먼저 떠나보낸 뒤 슬픔에 잠겨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대중의 마음을 더 먹먹하게 했다.
출처:KBS '가요무대'
국악인 김대근의 아들로 태어난 김용만은 1953년 '개나리 처녀'의 작곡가 김화영을 만난 것을 계기로 같은 해 '남원의 애수'를 발매하며 가요계에 데뷔했다. 이후 신신레코드사의 전속가수로 발탁되어 '청산유수', '효녀 심청', '청춘의 꿈', '삼등인생', '생일 없는 소년' 등을 연달아 히트시켰다.
출처:KBS '가요무대'
처음에는 일반 대중가요를 부르는 가수로 활동했지만, 이후 전통 가락을 접목한 민요와 만요(풍자곡)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이로써 당시 '민요 가수', '만요 가수' 등 새로운 호칭으로 불리며 인기를 누렸다.
뿐만 아니라 직접 작사와 작곡을 도맡아 활동하며 싱어송라이터가 드물었던 1950년대를 개척했다. 당시 '명동 부르스', '후라이 맘보' 등을 직접 쓰고 부르며 두각을 드러냈다.
출처:KBS '가요무대'
이후에는 작곡가로도 활동했다. 생전 그는 가수 백야성과 콤비를 이뤄 '잘 있거라 부산항', '항구의 영번지', '못난 내 청춘', '마도로스 도돔바' 등을 작곡했으며, 훗날 두 사람은 '김군 백군'이라는 듀엣곡을 선보이기도 했다. 고인의 비보를 접한 평론가 박성서는 "구수한 입담과 흥이 넘치는 노래로 만년에도 활발하게 무대에 올랐던 원로가수"라면서 "신랄한 세태 풍자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정이 느껴질 정도로 매우 친근하고 서민적이었던 가수 김용만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라고 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