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단독] "조용하다고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에요"… 타임스스퀘어에 선 14살

조혜원 2026. 9. 26.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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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기사

선택적 함구증 겪어온 이레이나 양, 빙판·무대·책으로 세상과 소통
시어터 온 아이스 미국 대표로 국제대회 출전…책 수익금은 병원 아이들에게 기부

누군가 말을 걸면 어떤 답을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수없이 고민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대답할 순간을 놓쳤고, 꼭 말해야 할 때도 몸이 얼어붙은 듯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미국에 사는 14살 이레이나 양은 어린 시절부터 선택적 함구증을 겪어왔습니다. 집에서는 자유롭게 말했지만, 밖에서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거나 한마디를 건네는 일조차 어려웠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담임교사가 "공부는 잘하지만 1년 가까이 목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랬던 레이나 양은 지금 국제 피겨 무대에 서고, 자신이 가장 두려워했던 사람들의 시선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갑니다. 직접 쓰고 그린 책과 함께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도 등장했습니다.

TJB NEWS 유튜브 [이 사람, 단독]은 이레이나 양을 만나 침묵 속에서 자신감을 키워온 과정과, 자신의 이야기로 다른 사람을 돕고 싶은 이유를 들어봤습니다.

TJB NEWS 유튜브 [이 사람, 단독] 조혜원 기자

◆ "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말할 수 없었어요"

선택적 함구증은 언어 능력에 문제가 없는데도 불안으로 인해 특정한 사회적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레이나 양은 누군가 말을 걸 때마다 '뭐라고 답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반복했다고 말했습니다.

"계속 생각하다가 대답할 타이밍을 놓치곤 했어요. 꼭 말해야 하는 순간에도 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때가 있었습니다."

말은 하지 못했지만 상대의 표정과 작은 행동은 세밀하게 기억했습니다. 예민하고 섬세한 성격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최근에는 먼저 다가가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엄마가 인사만 잘해도 반은 성공이라고 늘 말씀해주셨어요. 그래서 인사라도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며 찾은 자신감

어머니는 레이나 양에게 작은 자신감이라도 심어주고 싶어 동네 스케이트장으로 데려갔습니다.

빙판에서는 다른 사람의 표정이나 반응보다 자신의 몸과 움직임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수없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과정은 조금씩 자신감으로 쌓였습니다.

"자신감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라,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는 걸 피겨를 하면서 알게 됐어요."

레이나 양은 12살 때 '시어터 온 아이스' 미국 대표로 프랑스에서 열린 국제대회에 출전했습니다.

현재는 미국 피겨스케이팅 연맹 체계의 솔로 아이스댄스 종목으로 여러 나라 선수들과 국제무대에서 경쟁하고 있습니다.

학교에 가기 전 새벽 5시쯤 일어나 약 2시간 동안 연습하고, 주말을 포함해 일주일에 5일가량 빙판에 섭니다.

"힘들어도 꾸준히 하다 보면 조금씩 쉬워집니다. 스케이트를 타고 학교에 가면 기분도 더 좋아져요."

◆ "두려움이 제 선택을 대신하게 두고 싶지 않았어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던 레이나 양은 오히려 수많은 시선이 쏠리는 미인대회에도 도전했습니다.

우승이나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언제까지나 피하기만 하면 두려움이 제 선택을 대신하게 될 것 같았어요. 예전에 가장 두려워했던 곳에 지금의 제가 직접 걸어 들어가 보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참가 비용을 이유로 반대했습니다.

레이나 양은 중고 의류 거래 플랫폼 디팝(Depop)에 자신이 입던 옷을 매일 올려 팔았습니다. 그렇게 마련한 돈을 어머니에게 건넸고, 결국 대회 참가를 허락받았습니다.

도전 끝에 '미스 어바인' 타이틀을 얻었고, 이를 계기로 미스 틴 USA에도 도전했습니다.

"누구나 부족한 부분이 있고 완벽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모습 그대로 충분히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익숙한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준비한 이유도 같았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도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 "조용하다고 마음속에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에요"

[이 사람, 단독] 인터뷰에 출연한 레이나 양

레이나 양은 자신의 경험을 담은 동화책도 직접 쓰고 그렸습니다.

이야기 구성부터 그림, 출판까지 아마존 등을 통해 혼자 공부했습니다. 책 속 주인공 '리나'는 자신감이 없던 어린 시절의 레이나 양을 닮았습니다.

"리나를 통해 가장 말하고 싶었던 것은 조용하다고 해서 마음속에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어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아이들이 책을 읽으며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라고 느끼길 바랐습니다.

책과 레이나 양의 얼굴은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도 소개됐습니다.

그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어린 시절의 자신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제 목소리를 한 사람에게 들려주는 것도 어려웠어요. 이제는 제 이야기가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기뻤습니다."

◆ "14살이어도 작은 것을 나눌 수 있어요"

레이나 양은 처음부터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에게 책을 전할 생각으로 제작을 시작했습니다.

책 뒤에는 아이들이 직접 색칠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도록 컬러링 페이지도 넣었습니다. 수익금 역시 병원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기부할 예정입니다.

"병원에 있는 아이들은 다른 친구들이 평범하게 보내는 하루를 마음껏 보내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책이 잠깐이라도 즐겁고 따뜻한 시간이 됐으면 했습니다."

책 제작 방법을 묻는 문의가 이어지자 관련 과정을 나누는 조직도 직접 만들었습니다.

현재는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매주 줌으로 책을 기획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출판하는 과정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고, 이를 통해 또 다른 누군가를 돕거나 기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 "안 되더라도 해봤다면 그것도 성공이에요"

피겨를 그만두고 싶은 순간도 적지 않았습니다.

레이나 양은 흔들릴 때마다 처음 시작한 이유를 떠올렸습니다. 과거에는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힘들었지만, 지금은 어제보다 조금 나아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빠르게 가는 것보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도전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도 같은 말을 전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냥 해봤으면 좋겠어요. 안 되더라도 해봤다는 것 자체가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인사에도 몸이 굳었던 아이는 이제 국제 빙판과 무대 위에 서고, 책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레이나 양의 도전은 선택적 함구증을 단번에 지워낸 성공담이 아닙니다.

두려움이 자신의 선택을 대신하지 않도록 오늘도 한 걸음씩 나아가는 현재진행형의 이야기입니다.

레이나 양의 전체 인터뷰는 TJB NEWS 유튜브 [이 사람, 단독]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혜원 취재 기자 | chw@tj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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