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워야 폭등한다’… 코인 시장 휩쓴 ‘소각 열풍’

최근 코인 업체들이 벌어들인 수익으로 자체 코인을 사들인 뒤 없애는 ‘코인 소각’ 유행에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열광하고 있다. 주식으로 치면 회사가 영업으로 번 돈을 자사주 매입·소각에 쏟아붓는 것과 비슷하다.
지난 25일 암호화폐 플랫폼 스톤크펀(StonkFun)은 자체 코인인 ‘스톤크(STONK)’의 전체 발행량 가운데 지금까지 총 18%를 없앴다고 밝혔다. 전날 하루 동안 플랫폼이 벌어들인 109만5334달러(약 15억원) 가운데 67만2362달러를 들여 시장에서 스톤크 205만개를 사들인 뒤 소각했다. 다시는 거래될 수 없도록 없앤 것이다.
최근 이 같은 소각 행위를 반복하면서 스톤크 가격은 지난 6일 하루에만 250% 넘게 뛰었고, 최근 30일 동안 4000%가량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런 ‘소각(코인 없애기) 메타’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플랫폼이 장사를 해서 번 돈으로 자신들이 발행한 코인을 시장에서 다시 사고, 심지어 영원히 거래할 수 없는 주소로 보내 없앤다. 이를 통해 시장에 유통되는 코인 수를 줄이면서 희소성을 부각해 투자자들의 이목을 끄는 전략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블록체인 데이터 업체 알리움랩스 자료를 분석한 결과, 암호화폐 업체들이 올해 들어 지난 8월까지 자체 코인을 사들이는 데 쓴 돈은 6억3800만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PONS가 불붙인 소각 열풍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이를 ‘바이백 앤드 번(buyback and burn·매입 후 소각)’이라고 한다. 이 열풍에 불을 붙인 대표적 사례가 폰스(Pons)다. 폰스는 미국 주식 거래 플랫폼 로빈후드가 만든 블록체인에서 운영되는 독립 서비스로, 누구나 간단한 절차만 거치면 새로운 코인을 만들어 거래할 수 있게 해주는 이른바 ‘런치패드(launchpad)’다. 쉽게 말하면 수많은 신생 코인을 찍어내고 거래시키는 ‘코인 공장’이다.
폰스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코인을 만들고 사고팔 때 수수료를 받는다. 폰스는 자신에게 돌아온 수수료 가운데 80%를 자체 코인인 ‘PONS’를 시장에서 다시 사들이는 데 사용한 뒤 PONS를 소각한다.

이 구조가 알려지면서 투자자들이 몰렸다. 지난 2일 하루에만 폰스에서 약 2만5000개의 코인이 만들어졌고, 거래액은 5억4400만달러에 달했다. 이용자들이 낸 하루 수수료는 595만달러였다.
PONS 코인 가격도 폭발했다. 지난 5일에는 0.9683달러로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는데, 2주 사이 27배 넘게 오른 가격이다.
지난 6일까지 이런 방식으로 소각된 PONS는 최초 공급량의 30%에 달하는 2억9790만개다. 코인 10개 중 3개가량이 두 달도 되지 않아 시장에서 사라진 셈이다. 가격이 오르면 투자자가 더 몰리고, 거래가 늘면 플랫폼 수입과 바이백이 다시 증가하는 선순환에 대한 기대가 만들어졌다.
암호화폐 전문 매체 코인데스크는 “폰스가 지속적으로 자체 코인 PONS를 사들이면서 새로운 매수 수요가 생기는 동시에 공급량은 줄어드는 구조를 통해 가격 급등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코인 찍어내는 ‘공장’에 투자
특히 이런 현상은 누구나 손쉽게 새로운 코인을 만들게 해주는 런치패드가 발행하는 코인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암호화폐 데이터 업체 코인게코는 최근 밈코인 시장을 ‘런치패드 전쟁’으로 규정했다.
폰스가 폭등하자 투자자들은 곧바로 ‘제2의 폰스’ 찾기에 나섰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STONK다. 런치패드 시장의 원조 격인 펌프펀(Pump.fun) 역시 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2024년 등장한 펌프펀은 솔라나에서 누구나 손쉽게 밈코인을 만들도록 해 런치패드 시장을 키운 대표적인 플랫폼이다.

펌프펀은 플랫폼 수익의 약 절반으로 자체 코인 펌프(PUMP)를 시장에서 사들여 소각한다. Pump.fun 자체 집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바이백·소각에 쓴 돈은 약 4억6250만달러, 없앤 PUMP는 약 1677억개로 최초 발행량의 16.8%에 해당한다.
◇가격 상승 패러다임 바꾼 ‘소각’
이 모델은 기존 암호화폐의 가격 상승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세계 최대 암호화폐 자산운용사 중 하나인 비트와이즈의 매트 호건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비트코인을 제외한 암호화폐의 가치는 앞으로 주식이나 채권과 마찬가지로 점점 수익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알트코인 가격이 유명 투자자가 투자했다는 소문이나 기술에 대한 기대나 희소성, 시장의 유행 같은 ‘서사’에 크게 움직였다면, 최근에는 플랫폼이 실제로 얼마를 벌고 이 수익이 자체 코인에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따지는 움직임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자사주 소각과 달라... 투자자 66.8%, 보유 자산 줄어
다만 ‘소각이 곧 가격 상승’이라는 공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주식시장에서 자사주 소각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주식은 기업의 소유권이다. 회사가 자사주를 소각해 전체 주식 수가 줄면 남은 주식 한 주가 나타내는 회사 지분율은 실제로 커진다. 반면 폰스 코인을 보유한다고 폰스라는 사업체의 지분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암호화폐 투자회사 키록의 아미르 하지안 연구원은 “대부분의 코인에는 보유자의 권리가 거의 없다”며 “배당을 보장하거나 사업의 현금 흐름에 대한 법적 청구권을 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소각 효과 역시 결국 수요가 유지돼야 한다. 아무리 코인 숫자를 줄여도 사려는 사람이 사라지면 가격은 떨어진다. 특히 폰스나 스톤크펀의 바이백 자금은 사람들이 플랫폼에서 계속 코인을 만들고 거래할 때 발생하는 수수료에서 나온다. 투기 열기가 식으면 ‘거래 감소→수수료 감소→바이백 감소’로 이어지는 죽음의 소용돌이(death spiral)에 빠질 수 있다.
벤처캐피털 드래곤플라이의 롭 해딕 파트너는 “결국 문제는 수요와 공급”이라며 “바이백에도 매수보다 매도 압력이 크면 가격은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화려한 PONS의 상승률과 폰스에서 만들어진 개별 코인의 투자 성적은 딴판이었다. 블록체인 데이터 업체 비트쿼리(Bitquery)가 지난 8월 3일부터 9월 3일까지 폰스의 거래 기록을 분석한 결과, 이 기간 만들어진 코인은 20만7893개였다. 거래에 참여한 투자자의 지갑 31만4736개 가운데 66.8%는 처음보다 보유 자산이 줄었다. 반면 이 코인들을 만든 제작자들은 같은 기간 970만달러의 수수료를 가져갔다.
단순히 ‘많이 태우는 코인이 좋은 코인’이라는 새로운 공식이 자리 잡는다면 이 역시 또 다른 투기 열풍에 그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코인을 없애느냐보다 앞으로도 그 코인을 계속 사서 없앨 만큼 플랫폼이 돈을 벌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아미르 하지안 연구원은 “바이백이 코인 가치에 의미 있는 영향을 주려면 프로젝트 가치에 비해 규모가 충분히 크고, 일회성 자금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사업 수익으로 충당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드래곤플라이의 롭 해딕 파트너도 “바이백은 제품에 대한 수요와 지속적인 성장 투자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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