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울아, 할머니 마중 나갔니? [임보 일기]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오래 전 시골로 이사 와 처음 알게 된 이웃이 전원 할머니였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할머니 댁을 찾아 사료 후원을 하고 전원 고양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 전언에 따르면 방울이가 다리에 피를 흘리면서까지 맞서 싸워 대장 고양이를 쫓아버렸다고 한다.
오랜 세월 고양이를 돌보며 살던 전원 할머니가 2024년 여름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사흘 전 방울이가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것이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래 전 시골로 이사 와 처음 알게 된 이웃이 전원 할머니였다. 당시 할머니가 여남은 마리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보살핀다는 것에 동병상련을 느꼈다고 할까. 일주일에 한두 번은 할머니 댁을 찾아 사료 후원을 하고 전원 고양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전원 고양이 중엔 유난히 순둥순둥해서 이름도 순둥이인 고양이가 있었다. 어느 날 할머니 댁 대문 앞에서 그 녀석이 나와 눈을 마주치자 냐앙냐앙 울었다. 평소와는 달리 울다가 저만치 가서는 발라당을 했다. 내가 가까이 가면 또 저만치 걸어가 발라당을 했다.
그제야 나는 자기를 따라오라는 녀석의 행동을 이해했다. 그렇게 녀석을 따라 과수원 고랑을 지나 폐사한 축사 앞에 이르렀을 때다. 축사에서 밭으로 이어진 배수구 구멍 속에서 다섯 마리 아깽이가 걸어 나왔다. 순둥이가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여기 우리 애들한테 밥 좀 배달해달라고. 이후 보름 넘게 나는 이곳으로 밥 배달을 했다. 순둥이가 이 아이들을 데리고 전원 할머니 댁으로 들어온 건 장마가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할머니는 순둥이 가족을 위해 특별히 뒤란에 비닐하우스까지 만들어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순둥이의 출산과 육묘는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할머니가 이웃 마을로 이사를 가면서 고양이들 이주 방사를 결정하고 나에게 TNR(중성화 후 방사)을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순둥이와 순둥이의 가족은 새로 이사한 곳에서 제2의 묘생을 시작했다. 순둥이는 특히 자식 중에서도 방울이라는 아들과 사이가 각별했다. 방울이는 어려서부터 엄마 껌딱지로 자랐고, 엄마보다 몸집이 커진 뒤에는 엄마의 보디가드를 자처했다. 한번은 아랫마을에서 올라온 대장 고양이가 전원 할머니 댁에 침입해 순둥이를 공격한 적이 있었다. 할머니 전언에 따르면 방울이가 다리에 피를 흘리면서까지 맞서 싸워 대장 고양이를 쫓아버렸다고 한다.

순둥이 모자는 할머니를 가장 잘 따르는 고양이이기도 했다. 할머니 역시 전원 고양이 중에서도 순둥이와 방울이 모자를 가장 살뜰히 챙겼다. 아침에 일어나 마당에 나오면 순둥이와 방울이 이름부터 불렀다.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은 순둥이와 방울이는 TNR과 이주 방사를 거치면서도 11년이란 세월을 함께했다. 내가 20년 가까이 사료 배달부로 살면서 바깥 생활을 하는 어미냥과 아들냥이 같은 공간에서 11년을 함께한 경우는 처음 봤다. 할머니가 두 녀석을 특별하게 챙긴다고 해서 다른 고양이들에게 소홀한 적은 없었다. 이사한 뒤에도 할머니는 아랫마을까지 내려가 길고양이 밥을 주거나 집 앞 산고양이 밥을 따로 챙겨주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해마다 가을이면 밤과 도토리를 주워와 말렸다가 겨울에 눈이 내리면 산을 다니며 여기저기 산짐승 먹이를 주러 다녔다.
2009년 태어난 순둥이는 자기를 가장 사랑해주는 할머니와 함께 12년을 살다 2021년 고양이별로 떠났다. 3년 뒤인 2024년, 14년을 할머니와 함께한 방울이도 엄마 곁으로 떠났다. 모자가 함께 이 지구별에서 살았던 기간은 11년. 그런데 방울이가 세상을 떠난 시점이 미스터리하다. 오랜 세월 고양이를 돌보며 살던 전원 할머니가 2024년 여름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사흘 전 방울이가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것이다. 집사가 죽으면 먼저 간 고양이가 마중을 나온다는 고양이계 전설이 사실일까.
이용한 (작가) editor@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