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샀느냐 안 샀느냐…‘90년대생’ 계급을 갈랐다

송유근 기자 2026. 9. 26.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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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생 이모 씨(36)는 이른바 '노오력'론자다.

이 씨는 신혼집으로 서울 내 '3급지'로 꼽히는 지역의 반전세로 들어간 자기 처지를 돌아본다.

김 씨는 직장 생활 5년간 악착같이 모은 돈과 부모님의 도움 등을 '영끌'해 경기 성남 판교 인근에 8억 원대 집을 매수했다. 이후 지금까지 손에 남는 월급이랄 게 없었지만 현재 김 씨 집 호가는 20억 원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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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대기업도 집 없으면 자산 뒤처져
먼저 산 친구-동료들 ‘폭등’ 보며 박탈감”
2030 상위 20% 5.6억 vs 하위 20% 0.5억
서울의 한 부동산 밀집 상가에 매물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뉴시스
1990년생 이모 씨(36)는 이른바 ‘노오력’론자다. 학창시절 사당오락(4시간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 정신으로 공부해 이른바 SKY(서울대·연세대·고려대) 대학 중 하나에 들어간 그는, 대학시절 내내 학업과 아르바이트·과외를 병행했다. 만 26세가 되던 해인 2016년 곧장 대학을 졸업했고 그해 말 삼성계열 대기업에 입사했다. 이 씨는 올 여름 공무원 아내와 결혼하며 가장이 됐다. 이 씨에게 휴학이나 휴직같은 쉼표 따윈 없었다. 이 씨는 그래도 일련의 과정을 ‘계층 이동’의 과정이라고 여겨왔다.

나름 자기 삶에 자부심을 갖고 살았던 이 씨. 그런데 요즘 인생이 뒤쳐진 것만 같은 기분에 울컥하곤 한다. 결혼을 2주 앞두고 가졌던 대학 동아리 모임 청첩장 자리 때문이다. 신혼집 얘기를 하다가 오랜만에 만난 선배 형 한 명이 ‘용산 자가’를 마련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형은 이 씨보다 나이가 5살 많았지만 내내 졸업을 유예하며 동아리방에 같이 머물던 ‘한량’이었다.

“아이, 나도 5년 전에 꼭대기에 샀었어. 지나고보니 꼭대기 위에 우주가 있었을 뿐” 말 끝에 안도감이 느껴지는 형의 너스레는 덤. “그새? 뭐 조금 올랐지.. 10억 까진 아니고.”

한 때 비슷한 처지라고 여겨졌던 형과 이 씨 사이에 생긴 격차의 원인은 뭘까. 이 씨는 신혼집으로 서울 내 ‘3급지’로 꼽히는 지역의 반전세로 들어간 자기 처지를 돌아본다. ‘나랑 아내도 9년 간 2억, 1억 씩 나름 3억 가까이 모았는데..’ 이 씨 생각의 끝은 결국 이렇게 귀결된다.

‘저 형이 집으로 떼돈 버는 동안 난 뭘 한거지’

매년 12월 기준 (2026년 경우 6월). 자료=KB부동산

집이 없는 가장, 내 집 마련이 난망한 세대. 90년생들이 왔다.

책 ‘90년대생이 온다’ 출간(2018년) 당시 사회초년생들이었던 90년대생들이 어느덧 결혼해 가정을 꾸리는 30대 중후반이 됐다. 이제는 집을 마련해야할 시기. 하지만 내 집 마련은 난망하다.

90년대생들이 20대 후반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때 ‘1차 폭등시기(2017년~2021년)’가 불어닥쳤고, 30대 중반 결혼 적령기가 되자 ‘2차 폭등 시기(2024년~현재)’가 도래했다. 90년생들의 불만은 이렇게 요약된다.

“10년 전 우리가 20대 중반일 땐 서울 평균 집값이 5억 원대였잖아요. 불과 10년 만에 어떻게 집값이 3배가 될 수 있는지, 왜 하필 내가 집을 마련해야하는 시기가 되니까 대출을 제한하고 사다리가 끊기는지. 믿기지가 않아요.” (1991년생, 공무원, 무주택자 김모 씨)

“전문직? 코인투자? 이런 건 별 소용 없었습니다. 집을 샀느냐 마느냐가 계급을 가른 거죠. 집값이 물가 오르는 정도로만 올랐다면 이렇게 열패감은 안 들었을 겁니다. ” (1990년생, 세무사, 무주택자 이모 씨)
지난해 기준 30대 가구주 중 유주택자의 비율은 24.7%. 뒤집어 말하면 전체 30대 가구주의 75%는 ‘내 집’ 없이 전세 혹은 월세집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자료: 국가데이터처

90년생 대기업 무주택자 vs 중소기업 유주택자… ‘승패’는 뒤집혔다

물론 집을 타이밍 좋게 잘 산 90년생들도 있다. 많은 경우가 ‘영끌족’이다. 이들에게 기회는 1차 하락기(2022년~2023년)였다.

90년생 김모 씨가 대표적인 경우다. 김 씨는 또래보다 사회생활 출발이 2년 가량 늦었다. 대학을 삼수했고, 중간에 편입까지하면서 친구들보다 약 2~3년 늦은 2019년 중소 규모 기업에 취업했다. 그에겐 늘 ‘한방 뒤집기’가 필요하다는 절실함이 있었다.

이 절실함 덕분이었을까. 그는 2023년을 놓치지 않았다. 김 씨는 직장 생활 5년간 악착같이 모은 돈과 부모님의 도움 등을 ‘영끌’해 경기 성남 판교 인근에 8억 원대 집을 매수했다. 당시 김 씨가 대출받은 금액은 5억6000만 원. 이후 지금까지 손에 남는 월급이랄 게 없었지만 현재 김 씨 집 호가는 20억 원이 넘는다. 결정적 한방 뒤집기에 성공한 셈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인공지능(AI)으로 만든 이미지.
군인 정모 씨도 하락기에 집을 산 케이스다. 그는 안정적인 직업 특성상 또래보다 상대적으로 빨리 결혼해 아이도 빨리 낳았다. 그는 첫째가 생긴 2022년 초 결단을 내렸다. 이른바 ‘관사 테크’가 유일한 희망이라고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그는 경기 광명에 갭투자를 해 집을 샀다. 집값은 한때 2억 원 넘게 빠졌지만, 현재는 원상회복을 넘어 고점을 뚫었다.

물론 김 씨와 정 씨, 두 사람에도 고민이 없진 않다. “다른 집은 훨씬 더 올랐는데요 뭐.” 이들은 상급지로 갈 길이 막혔다고 토로한다. 막대한 세금, 당장 유동성 자금 부족 등 고역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 씨와 비교해본다면 어떨까. 이 씨는 말한다. “대기업 입사, 중소기업 입사 이런 작은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걸 굳이 승패로 나눈다면, 20대 후반 겨뤘던 승패는 이미 뒤집힌 셈이죠.”

이 씨처럼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면 그나마 다행. 양극화에 노출된 이들은 더 많다. 2024년 기준 20·30대 소득 상위 20%의 순자산(자산에서 부채를 뺀 것)은 5억6241만 원으로 하위 20%의 순자산 5423만 원의 10배가 넘었다.

‘집값 문제’, 세대갈등-진영갈등으로도 비화했다

30대 밖으로 눈을 돌려 4050 과의 격차를 보면 더욱 심각하다. 경제 성장기 취직·결혼하며 부를 쌓았던 4050세대가 집값 상승 호재로 자산을 늘려온 반면, 저성장과 자산 가격 급등 시기에 사회에 첫발을 디딘 2030세대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겼기 때문이다.

가장 첫 사례인 이 씨와 이 씨 대학 선배가 대표적인 경우다. 2030과 40대 간의 자산 불평등은 2015년 1.5배 수준에서 지난해 2.2배까지 확대됐다.

1인당 순가구 자산 기준. 자료: 국가데이터처

집값 문제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이어지고, 상대적 박탈감은 세대·진영 갈등으로 이어진다.
“제가 4050이면 저라도 진보 진영을 찍겠어요. 진보 정부만 들어서면 자기 자산을 2~3배 폭등시켜주는데 왜 안 찍어요? 찍어야죠. 대신 그들도 우리가 보수화되는 걸 한심하다는 듯이 말해선 안되죠”(이 씨)

“사실 진짜 열받게 만드는 건 5060 진보세력들이에요.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꼭 강남에 살아야하느냐’ ‘모두가 용이 될 필요는 없다’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고 말하잖아요. 애초에 집으로 목돈을 번 유주택자들이 제도 설계를 하니 잘 될리가 없죠.” (1990년생, 은행원, 무주택자 고모 씨)
그렇다면 90년대생 가장들이 바라는 ‘합리적인’ 집값 추이와 미래는 어떨까. 90년생 무주택자 은행원 고 씨의 말로 맺는다.

“마음 같아서야 집값이 폭락해서 원점 시작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무리 돈을 모아봤자 집값 오르는 속도가 저축의 서너배 빨리 오르니까 절망스럽잖아요. 하지만 이미 국민 자산이 70%가 부동산인 마당에 집값 폭락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을겁니다. 이제부터라도 물가 상승 폭 정도로 완만하게 오르도록 안정화했으면 해요. 대출 제한 같은 수요 억제책 좀 제발 좀 하지 말고요.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하나 정도만 해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노력하면 나도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믿음, 내 여건에 맞춰 주거 안정을 확보할 수 있게단 믿음. 그게 필요합니다. ”

송유근 기자 bi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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