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윤의 별달린다] "가장 철들지 않는 얼굴, 가족" (철들 무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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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의 부양으로 세상에 나온다. 그렇게 자라 어느 순간엔 부모를 돌보는 사람이 되고, 자신의 아이를 낳으면 다시 누군가를 부양한다.
그런데 '철들 무렵'은 이 익숙한 가족극을 특별하게 만든다.
누구나 늙은 부모를 부양하는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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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atch=정태윤기자]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의 부양으로 세상에 나온다. 부모 품에서 먹고 입고 잠든다. 그렇게 자라 어느 순간엔 부모를 돌보는 사람이 되고, 자신의 아이를 낳으면 다시 누군가를 부양한다.
자식에서 부모로, 부모에서 자식으로, 때로는 조부모에서 손주로. 부양은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영화 '철들 무렵'(감독 정승오)은 그 기묘한 순환을 바라본다.
아픈 아버지 철택(기주봉 분)을 간병하는 딸 정미(하윤경 분). 별거 중인 남편 대신 싱글라이프를 즐기던 현숙(양말복 분)과 구순을 앞둔 엄마 옥남(원미원 분).
그리고 손주를 돌보는 철택의 형 관택(김종구 분)까지. 각자의 사정은 다르지만, 어느 누구도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소재만 보면 특별할 것은 없다. 아버지가 암에 걸리고, 딸이 간병한다. 늙은 부모를 누가 모실지를 두고 형제들이 실랑이를 벌인다.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진부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철들 무렵'은 이 익숙한 가족극을 특별하게 만든다. 신파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울렸다가도 웃기고, 다시 현실 앞에 내세운다. 감정을 한쪽으로 몰고가지 않고 희극과 비극을 쉼 없이 오간다.
그래서 영화 속 가족이 유난히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가족에게 큰일이 생겨도 삶은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암에 걸렸어도 정미는 오디션을 봐야 한다.
병원비를 걱정하면서도 단역을 따내야 한다. 현숙도 엄마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혼자만의 삶을 놓고 싶지 않다. 삶은 비극과 희극을 깔끔하게 나눠주지 않는다.

특히 정미가 30일간의 간병하는 과정이 그렇다. 겉으로만 보면 정미는 효녀다. 하지만 효녀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지쳐 죽겠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 짜증을 내고, 화를 내고, 때로는 아버지를 원망한다.
그게 오히려 가장 솔직한 우리의 얼굴인지도 모른다. 부모를 사랑한다고 해서 돌봄이 늘 기쁜 것은 아니다. '철들 무렵'은 그 마음을 불효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철 없음 덕분에 인물들은 살아 있다.
병원비는 3,000만 원이 넘는데, 철택이 모아둔 돈은 300만 원 남짓뿐. 정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친다. 돈도 안 모으고 뭐 했느냐고. 철택은 묘한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버티다, 한참 뒤 쌓아둔 말을 쏟아낸다.
딸의 대학 등록금, 차, 집에 들어간 돈을 이야기하며 "너는 카메라 앞에 가만히 있으려고 그 생돈을 바쳤냐"고 되묻는다. 그렇게 상처를 주고받다가도, 밤이 되면 정미는 다시 간병인 침대에 눕는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빠에게 말을 건넨다. 철택 역시 넌지시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더 가족답다.

'철들 무렵'의 힘은 이런 관계를 연기하는 배우들에게서도 나온다. 하윤경은 정미의 감정을 한 가지 표정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아버지를 걱정하면서도 짜증이 나고, 간병에 지치면서도 꿈을 포기할 수 없는 마음을 말투와 얼굴의 미세한 온도 차로 보여준다.
기주봉 역시 철택을 단순히 무책임한 아버지로 만들지 않는다. 뻔뻔하다가도 무안해지고, 화를 내다가도 미안해지고, 죽음을 앞두고도 로또를 사는 인물의 복잡한 얼굴을 자연스럽게 오간다.

두 사람의 연기가 좋은 것은 눈물 나는 장면에서만이 아니다. 싸우다가도 아무렇지 않게 로또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상대를 걱정하면서도 괜히 날을 세우는 순간.
그 사소한 움직임들이 쌓여 부녀를 실제 어딘가에 존재하는 사람처럼 만든다. 현숙의 억울함과 체념, 옥남의 완고함과 엉뚱함, 관택의 생활감까지.
병원 의사와 간호사, 동사무소 직원처럼 잠깐 등장하는 인물들까지도 자신의 하루를 살다가 카메라 앞에 들어온 사람처럼 보인다.

현숙의 이야기도 다르지 않다. 혼자 사는 삶이 좋은데, 형제들은 말한다. 혼자 사니까 네가 엄마를 모시면 되지 않겠느냐고.
누구나 늙은 부모를 부양하는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싫다고 말하는 순간, 불효자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는 그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현숙이 결국 엄마를 맡겠다고 하자, 정작 옥남은 싫다고 한다. 현숙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누른다.
그 모습이 철없지만 밉지 않다. 오히려 너무 솔직해서 웃음이 나온다. 그 짧은 표정 하나로 이 영화가 가진 유머를 설명한다.

마지막, 옥남의 낭독이 이 순환에 다른 가능성을 연다. 박완서의 소설 '나의 가장 나종지닌 것'의 문장을 읽는 목소리 위로 일제강점기와 민주화운동의 풍경이 겹친다.
한 시대를 살아내느라 자신의 삶을 뒤로 미뤄야 했던 여성이, 구순을 앞두고 처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말한다.
옥남은 "나도 혼자 살고 싶다. 나한테 너희는 과거야. 나도 미래를 그려봐도 되지 않겠냐"고 묻는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당연하게 요구됐던 부양의 의무에서 한 발짝 물러나, 비로소 자기 삶을 선택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은 외려 가볍다. 정미는 자신을 따라다니던 귀신 환영과 작별하고, 철택과 현숙은 이혼으로 서류상 끈을 정리한다.
관택이 돌보는 손주는 다육이를 키우기 시작한다. 이제 그도 무언가를 돌보는 사람이 되어간다.
옥남의 "새 날이 밝았다"는 담담한 목소리 위로 한영애의 '달'이 흐른다. 무거운 이야기를 지나온 뒤의 마지막 음악은, 이상할 만큼 가볍다.
가족은 여전히 서로를 부양해야 한다. 누군가는 아프고, 누군가는 늙고, 누군가는 또 누군가를 책임져야 한다. 그 사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웃고, 투덜거리고, 꿈을 꾸고, 때로는 철들지 않은 채 살아간다. 어쩌면 그것 역시 살아가는 방식일 것이다.
내 삶을 살아도 된다고. '철들 무렵'은 그 작은 허락을 건넨다.
"가장 철들지 않는 얼굴, 가족" (철들무렵 ★★★☆)

<사진제공=인디스토리, 주마등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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