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 이어 감귤까지···“나뭇가지를 지켜라” 아시아 ‘과일 종자 전쟁’

아시아에서 오랜 시간과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개발한 과일 신품종이 해외로 유출되거나, 현지에서 품종보호권을 확보하지 못해 개발자의 권리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19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최근 에히메현이 개발한 고급 감귤 ‘베니 프린세스’의 묘목 유출 논란이 일었다. 에히메현이 20년 넘게 개발한 베니 프린세스는 두 가지 우수 품종을 교배해 개발한 감귤로, 젤리 같은 식감과 높은 당도가 특징이다.
베니 프린세스는 지난해 처음 공개된 이후 본격적인 재배 준비에 한창이었다. 그러나 일본 농가가 신품종을 출하하기도 전에 중국의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 해당 묘목이 판매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에히메현은 중앙 정부에 조사를 요청했고, 스즈키 노리카즈 일본 농림수산상은 이번 사안에 대해 “특히 심각하다”고 밝혔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포도’로 불리는 ‘루비로망’도 유사한 사례다. 일본 이시카와현은 1995년부터 14년에 걸친 연구 끝에 고급 포도 품종인 루비로망을 개발했지만, 묘목 해외 유출 의혹에 더해 해외에서 품종 보호 등록도 하지 않아 큰 손실을 봤다.
과일은 영화나 음악 등 다른 지식재산에 비해 국경 너머 이뤄지는 무단 복제를 막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나뭇가지나 묘목 일부만 확보해도 다른 지역에서 쉽게 재배할 수 있어서다. 품종 보호 제도 역시 국가마다 달라 일본에서 개발한 품종을 중국이나 한국에서 보호받으려면 해당 국가에 별도로 등록해야 한다.
식물 품종 육종가의 권리를 보호하는 국제기구인 국제식물신품종보호연맹(UPOV)은 출시된 지 6년 이내의 신품종에 한해 다른 나라에 품종 등록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경우 배타적 권리를 인정받아 품종 로열티를 받을 수 있다.
최근 아시아 각국은 관련 규제를 자체적으로 손보고 있다. 중국은 종자 보호 관련 법률을 잇달아 강화했고, 일본도 지난 7월 자국에서 개발한 품종의 불법 해외 반출을 막기 위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오늘날 한·중·일을 포함한 80개국이 UPOV에 가입해 있지만, UPOV는 자체 단속 권한이 없어 품종 유출 문제 등에 대해 개발자가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자신의 품종임을 입증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
전문가들은 품종 유출이나 무단 재배가 반복되면 농가의 수익 감소를 넘어 새 품종 개발까지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오랜 시간과 큰 비용을 들여 새 품종을 개발했지만 투자비 회수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농림수산성 관계자는 고급 과일 품종 개발이 활발한 일본이 특히 품종 도용의 표적이 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신품종 개발 투자도 감소하는 추세라고 CNN에 전했다.
기후변화로 기존 작물의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작물 혁신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기후변화에 강한 새 품종의 쌀 개발에 투자해 온 베트남은 최근 쌀 수확량이 늘고 있지만, 관련 제도가 미비한 태국에서는 수확량이 감소하고 있다. CNN은 종자 유출 문제가 계속되면 기후변화로 식량 안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농업 혁신이 저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경윤 기자 ck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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