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절 제4주] 거룩한 죄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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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성자 주일예배청어람ARMC가 구성한 필진이 교회력에 따라 본문을 선정하고, 묵상을 나누며, 기도 제목을 공유합니다. 연재는 해당 주일 이틀 전인 매주 금요일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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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1장 23-32절 23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고 계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다가와서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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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 넷째 주일 / 강단색: 녹색

오늘의 기도 |
찬양 |
시편 25편 1-9절
1 주님,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립니다. 2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께 의지하였으니,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 내 원수가 나를 이기어 승전가를 부르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3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수치를 당할 리 없지만, 함부로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고야 말 것입니다. 4 주님, 주님의 길을 나에게 보여 주시고, 내가 마땅히 가야 할 그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5 주님은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주님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가르쳐 주십시오. 나는 종일 주님만을 기다립니다. 6 주님, 먼 옛날부터 변함 없이 베푸셨던, 주님의 긍휼하심과 한결 같은 사랑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7 내가 젊은 시절에 지은 죄와 반역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님의 자비로우심과 선하심으로 나를 기억하여 주십시오. 8 주님은 선하시고 올바르셔서, 죄인들이 돌이키고 걸어가야 할 올바른 길을 가르쳐 주신다. 9 겸손한 사람을 공의로 인도하시며, 겸비한 사람에게는 당신의 뜻을 가르쳐 주신다.
본문 |
에스겔 18장 1-4, 25-32절
1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2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땅에서 아직도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으면, 아들의 이가 시다' 하는 속담을 입에 담고 있느냐?
3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너희 가운데서 어느 누구도 다시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속담을 입에 담지 못할 것이다. 4 모든 영혼은 나의 것이다. 아버지의 영혼이나 아들의 영혼이 똑같이 나의 것이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을 것이다.
25 그런데 너희는, 내가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 공평하지 못하다는 말을 하는구나.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는 잘 들어라. 내가 일하는 방법이 어찌 공평하지 않으냐? 너희가 하는 행실이 오히려 공평하지 않은 것이 아니냐? 26 의인이 자신의 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죄를 짓다가, 그것 때문에 죽는다면, 그는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죽는 것이다. 27 그러나 악인이라도, 자신이 저지른 죄에서 떠나 돌이켜서, 법대로 살며, 의를 행하면, 자기의 목숨을 보전할 것이다. 28 그가 스스로 깨닫고, 자신이 지은 모든 죄에서 떠나 돌이켰으니, 그는 반드시 살 것이요, 죽지 않을 것이다.
29 그런데도 이스라엘 족속은, 내가 일하는 방법이 공평하지 않다는 말을 하는구나.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일하는 방법이 어찌 공평하지 않으냐? 너희가 하는 행실이 오히려 공평하지 않은 것이 아니냐?
30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족속아, 나는 너희 각 사람이 한 일에 따라서 너희를 심판하겠다. 너희는 회개하고, 너희의 모든 범죄에서 떠나 돌이켜라. 그렇게 하면, 죄가 장애물이 되어 너희를 넘어뜨리는 일이 없을 것이다. 31 너희는, 너희가 지은 죄를 모두 너희 자신에게서 떨쳐내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여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왜 죽고자 하느냐? 32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그가 죽는 것을 나는 절대로 기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회개하고 살아라.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빌립보서 2장 1-13절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무슨 격려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무슨 동정심과 자비가 있거든, 2 여러분은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이 되어서, 내 기쁨이 넘치게 해 주십시오. 3 무슨 일을 하든지, 경쟁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자기보다 서로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4 또한 여러분은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십시오. 5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6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8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11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12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언제나 순종한 것처럼, 내가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이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 더 순종하여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 13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것을 염원하게 하시고 실천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마태복음 21장 23-32절
23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고 계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다가와서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시오?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2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를 물어 보겠다.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말하겠다. 25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왔느냐? 하늘에서냐? 사람에게서냐?" 그러자 그들은 자기들끼리 의논하며 말하였다. "'하늘에서 왔다'고 말하면, '어째서 그를 믿지 않았느냐'고 할 것이요, 26 또 '사람에게서 왔다'고 하자니, 무리가 무섭소. 그들은 모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니 말이오." 27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 모르겠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28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는데, 아버지가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해라' 하고 말하였다. 29 그런데 맏아들은 대답하기를 '싫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 뒤에 그는 뉘우치고 일하러 갔다. 30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대답하기를, '예,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서는, 가지 않았다. 31 그런데 이 둘 가운데서 누가 아버지의 뜻을 행하였느냐?" 예수께서 이렇게 물으시니, 그들이 대답하였다. "맏아들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을 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오히려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32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옳은 길을 보여 주었으나,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세리와 창녀들은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치지 않았으며, 그를 믿지 않았다."
거룩한 죄인들 |
성육신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애초에 '성'과 '육신'이 공존할 수 있다는 생각을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영원과 하루가 얽혀 있을 수 있다고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구유는 그저 말 밥통이고 빵은 그저 허기를 채우는 음식이었지만, 자기를 비워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이 땅의 모든 사물과 사람들 속으로 들어오셨고 우리는 그 근원의 빛 아래서 성과 육신이 공존하는 새로운 풍경을 목도하게 됩니다. 구유는 영광으로 흘러넘쳐 동방박사들을 엎드리게 하고, 빵은 그리스도 몸이 되어 생명을 북돋는 근원이 됩니다.
성육신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세리'와 '창녀', 그러니까 당시 사회에서 부정한 죄인으로 낙인찍힌 여성들을 보고 쯧쯧거리는 것은 모든 유대인들이 가진 신체적 반응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향해 온갖 부정함과 비겁함과 더러움을 쏟아 내며 자신들의 모든 부정을 전가하여 씻고자 하였지만, 성육신은 "세금업자들과 몸 파는 여성들이 당신들보다 앞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비밀을 폭로하며 저들의 심상을 폭로합니다. 성육신의 목소리 앞에 어안이 벙벙하여 단단히 지켜 온 세계관이 흔들리는 것은 복된 일, 그 균열과 흔들림으로부터 한 줄기 빛이 어둠을 비추기 때문입니다.
성육신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성육신의 빛은 자기를 낮추어(under-stand) 그를 보게 하는데, 정확히 그 위치와 조명 아래서 이해는 시작됩니다. 내가 삭개오와 같은 처지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삶의 여러 국면과 긴장 속에 이리저리 내동댕이쳐졌다면, 과연 나는 그와 조금이라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질문을 되뇌는 동안 판단하는 사고는 이해하는 사고가 되고, 이해하는 사고는 다 알지 못하는 그의 삶을 수용하는 너그러움이 됩니다. '창녀'라는 말은 지금 우리 입에도 너무 거칠게 들립니다. 몸을 팔아야 하는 처지에 있던 사람들, 그렇게 해야 살 수 있고 그 자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복잡한 상황은 성육신의 빛 아래서 느리게 조명됩니다. 성육신의 빛은 저 가장 낮은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 다시금 토로하게 하는 거지요. '아, 진실로 나는 그와 다르지 않았겠구나.'
성육신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두 아들"을 언급합니다. 맏아들은 아버지 말을 듣고 포도원에 가겠다 했지만 가지 않았고, 둘째 아들은 싫다고 했지만 뉘우치고 갔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듣는 이들은 자신이 첫째 아들인지 둘째 아들인지를 정확하게 인지하게 됩니다. 성육신의 언어는 그들의 상태를 밝히는 데서 끝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성육신은 세월을 쌓아 수립한 대제사장과 장로 같은 기득권의 권위와 세금업자나 몸 파는 여성들처럼 내쫓긴 사람들의 무권위를 통합하여 "아들"의 권위로 통합시킵니다. 이 거대한 통합을 가능케 하는 근원의 세계 앞에서 그들은 애써 온 삶이 사라지는 것 같다가도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것 같은 오묘한 안도감에 휘청입니다.
명절은 가족을 떠오르게 합니다. 가족은 사회의 기본 단위, 창조는 가족을 통해 시작되었고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켜켜한 환상을 투영한 가족이라는 말은 이제 닳고 부서져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느껴집니다. 대제사장이나 장로, 세금업자나 몸 파는 여성들도 모두 가족의 산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을 텐데, 징글징글한 긴장과 열망, 일그러진 사랑과 순전했던 사랑이 뒤엉켜 예수를 죽이는 대제사장을 탄생시켰고 괴로운 세금업자의 탄생을 촉진했다면, 이제 가족은 폐기되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결국 모든 인간의 상흔과 거짓 영광과 방향을 잃은 꿈이 가족을 통해 전수되고 있다면 이제 가족은 폐기되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당신의 창조는 가족을 통해서 계속되는지 묻고 싶지만.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빌 2:5)
적용 질문 |
○ 빌립보서 2장 5-8절에 나오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 어떻게 이 땅에서 실현되었는지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떠올리며 생각해 봅시다.
세속성자의 기도 |
창조절 넷째 주 - 기후 재난으로 삶을 잃는 이들을 위하여
작은 존재의 신음에 귀 기울이시는 하나님, 기후 재난으로 삶의 터전과 일상을 잃어 가는 모든 존재를 기억합니다. 재난을 일으키는 데 가장 적은 책임을 지고도 가장 먼저 집과 일자리와 고향을 잃는 가난한 이들, 농민과 노동자, 어린이와 노인,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는 이들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우리가 누리는 편리와 풍요가 다른 이들의 희생 위에 세워져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하시고, 고통을 개인의 불운으로 여기지 않게 하소서. 피해를 입은 이들이 홀로 버려지지 않고 필요한 도움과 존중을 받으며 다시 삶을 일으킬 수 있도록, 더 공평하게 책임을 나누는 기후 정의 사회를 만들어 가게 하소서.
AI를 책임 있게 사용하도록 기도합시다
지혜의 하나님, 빠르게 발전하는 인공지능 앞에서 우리는 혼란스럽습니다. 막연하던 기대가 현실이 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기술을 지나치게 두려워하지도, 무턱대고 신뢰하지도 않게 하소서. 더 빠르고 편리한 세상을 만드는 일보다 사람의 존엄과 안전, 진실과 평화를 먼저 생각하게 하시고, 어린이와 약한 이들이 기술의 위험을 더 크게 떠안지 않게 하소서. 특히 인공지능이 전쟁과 감시, 허위 정보와 차별을 강화하는 도구로 사용되지 않도록 지켜 주시고, 기술의 이익을 위해 노동과 창조세계가 희생되지 않게 하소서. 나라와 기업이 경쟁과 이윤만을 좇지 않고 위험을 정직하게 드러내며 책임 있는 규칙을 세우게 이끌어 주소서. 무엇보다 판단과 책임을 기계에 넘기지 않고, 우리가 만든 기술을 끝까지 인간의 양심과 공공선 아래 두는 지혜와 절제를 우리에게 주소서.
연휴를 마치는 기도
모든 날들의 주인이신 주님,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주소서. 한가위의 풍성함과 오랜만에 만난 얼굴들을 뒤로하고 다시 새로운 한 주를 맞았습니다. 들뜬 기분과 알게 모르게 쌓인 피로가 아직 몸에 남아 있음을 느낍니다. 명절의 여운을 충분히 누리게 하시고, 혹여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쌓여 있다면 차분히 돌아보게 하소서. 다가오는 날들을 생각하면 조금 긴장이 됩니다. 평범한 하루에 주신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의 삶을 든든히 지켜 왔음을 기억하며, 새날을 기대하게 하소서. 밀린 일들을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하시고, 서두르거나 초조해하지 않고 일상의 리듬에 몸을 맡기게 하소서.
청어람ARMC shchoi@newsnjo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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