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부부는 귀여워서 떴나, 떠서 귀여워졌나”…中의 ‘IP 경마장’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2026. 9. 25.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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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간 한중 콘텐츠 사업을 해온 김태원 엠젯패밀리 대표. 그는 “중국 콘텐츠 기업들이 돈 버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국은 잘 만들고 중국은 잘 판다.”

지난 10년간 한중을 오가며 콘텐츠 사업을 해온 김태원 엠젯패밀리 대표는 “중국 콘텐츠 기업들이 돈 버는 법을 우리도 배울 필요가 있다”고 했다. 라부부를 낳은 팝마트는 수많은 캐릭터를 시장에 내놓은 뒤 잘 팔리는 IP에 마케팅을 집중하고, 중국 숏폼 드라마 업체들은 시청 시간과 결제율을 따져 광고비를 조정한다.

엠젯패밀리는 중국 최대 웹소설 업체 웨원그룹과 중국 2위 캐릭터 유통업체 탑토이(TOP TOY)의 한국 공식 파트너로 웹툰·웹소설 유통에서 굿즈 사업까지 영역을 넓혀왔다. 짱구·산리오·디즈니 등 미·일의 대중적인 캐릭터 상품을 취급하면서 중국 IP 시장도 꾸준히 지켜봤다. 서울 강남과 홍대에서 운영하는 캐릭터숍 ‘타이니빌’은 내년까지 전국 10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최근 베이징을 방문한 김 대표에게 라부부부터 AI 숏폼 드라마까지 지난 10년간 달라진 중국 콘텐츠 산업을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 게임 ‘승리의 여신: 니케’로 중국에서 굿즈 매출 10억원을 올렸다.

“한국 시프트업이 만든 게임을 지난해 텐센트가 중국에서 서비스해 흥행시켰다. 엠젯패밀리는 글로벌 굿즈 개발권을 확보해 중국 내 굿즈 판매로 예상치 못한 수익을 냈다. 한국 IP가 중국에서 캐릭터 상품과 팝업스토어 등으로 수익원을 넓힐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한한령 이후 한국 업계는 중국 콘텐츠 시장을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지금 주목해야 한다. 중국인들은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여전히 많이 본다. 정식 콘텐츠 수출이 어렵다면 굿즈와 IP 사업으로 수익을 내는 길도 있다. 한국에서는 생소하지만 중국 드라마 업계에서는 배우 얼굴을 활용한 굿즈 사업이 활발하다. 아이치이는 드라마 공개에 맞춰 카파이(卡牌)라고 부르는 수집형 트레이딩 카드를 낸다. 더 중요한 것은 중국 콘텐츠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늘면서 한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콘텐츠 산업의 체급이 달라졌다고 느낀 때는 언제였나.

“2024년 팝마트의 라부부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는 과정을 보면서 중국이 IP를 다루는 방식이 한국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느꼈다.”

-라부부의 흥행에서 가장 눈여겨볼 점은.

“라부부가 귀여워서 많이 팔린 걸까, 아니면 많이 팔렸기 때문에 사람들이 귀엽다고 느끼게 된 걸까. 한국은 콘텐츠 자체의 우수성에서 흥행 비결을 찾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팝마트는 전혀 다른 공식을 갖고 있다. 여러 IP를 동시에 시장에 내놓고 판매 데이터를 본다. 반응이 좋은 IP가 나오면 생산을 늘리고 마케팅을 집중한다. ‘IP 경마장’을 운영하는 셈이다.”

-중국 콘텐츠 산업의 ‘제조업 마인드’는 어디서 기인하나.

“중국에서는 웹소설이 일찍 대중화됐다. 창작 문턱이 낮아지면서 공급이 폭발했고 수작을 내도 묻히는 현상이 생겼다. 결국 광고비 투입과 독자의 결제 전환이 흥행을 좌우한다는 인식이 커졌다. 창작 업계가 일찍부터 ROI를 보는 훈련을 한 것이다.”

-바이트댄스의 영향도 컸다고 들었다.

“바이트댄스의 더우인(중국판 틱톡)이 중국 콘텐츠의 판매 방식을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콘텐츠 기업들이 전광판 광고를 하는 동안 중국 창작자들은 숏폼 플랫폼에 작품 광고를 띄웠다. 더우인은 1000위안(약 20만원)을 쓰면 작품이 몇 번 노출됐고 결제 전환이 얼마나 이뤄졌는지 상세하게 알려준다.”

-중국 콘텐츠 산업에선 ‘잘 만드는 능력’보다 ‘잘 파는 능력’이 중요하나.

“그렇다. 숏폼 드라마는 마케팅 비용이 전체 제작 예산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도 많다. 중국 남부의 마케팅 회사들은 10초, 20초짜리 드라마 광고 영상을 수백 개씩 뽑아 틱톡과 릴스, 유튜브 쇼츠에 퍼뜨리는 작업에 특화돼 있다.”

-왜 유독 중국에서 숏폼 드라마가 빠르게 발전했나.

“숏폼 드라마는 중국식 사고가 콘텐츠에 극단적으로 접목된 사례라고 본다. 한 작품을 몇 년씩 공들여 만드는 대신 단기간에 여러 작품을 만들고, 시청 지속 시간과 결제율이 좋은 작품이 나오면 광고를 늘리고 비슷한 작품을 다시 만든다. 그래서 중국 숏폼 드라마는 전통적인 의미의 IP라기보다 빠르게 생산하고 소비하는 공산품에 가깝다.”

-중국에는 벌써 ‘AI 드라마 공장’도 생겼다.

“저장성 사오싱 등 소도시에는 AI 숏폼 드라마를 대량으로 만드는 ‘공장’이 들어섰다. 지방정부 지원을 받아 청년 수백 명이 프롬프트 작성과 AI 영상 제작을 배우는 곳이다. AI 숏폼 드라마 공급가는 1분당 500위안 정도까지 내려왔다. 지난해 말만 해도 1500위안 안팎이었다.”

-중국 콘텐츠 기업들의 해외 진출도 빨라지고 있다.

“작년 초를 전후해 뚜렷해졌다. 과거에는 중국에서 성공한 콘텐츠의 해외판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면 지금은 중국 내수용과 북미·동남아용 콘텐츠를 처음부터 따로 만든다. 중국 제작자들이 ‘중국 밖에도 거대한 시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중국 AI 숏폼 드라마의 해외 진출 속도도 상당히 빠르다.”

-한국 콘텐츠의 경쟁력을 흔들 것으로 보나.

“처음에는 그런 우려를 했다.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한국 콘텐츠의 강점이 더 선명해질 수 있다고 본다. 중국의 공장식 AI 콘텐츠를 보다 보면 마지막 2~3%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사람 사이의 미묘한 감정 표현이나 이야기의 밀도가 아쉽다. 성공 공식을 지나치게 복제하거나 검열 때문에 표현이 제한되는 한계도 보인다.”

-한국이 지켜야 할 경쟁력은.

“개인의 창작력이다. 한국 콘텐츠의 힘은 정해진 흥행 공식대로만 만들지 않는 데 있다. 작가와 감독, 작은 창작 집단에서 이상하고 독특한 것이 튀어나온다. 그게 ‘오징어 게임’도 만들고 K팝도 만들었다. AI 모델 자체는 결국 누구나 쓸 수 있게 된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누가 무엇을 상상하느냐다.”

-한중 콘텐츠 협업의 이상적인 방식은.

“중국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 나가면 새로운 IP와 창작자가 계속 필요하다. 결국 한국의 K팝과 드라마, 창작자를 다시 찾게 된다. 팝마트가 한국 아이돌과 협업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요한 것은 한국이 단순히 창작물만 제공하는 하청 역할에 머무느냐, IP와 후속 수익을 함께 가진 파트너가 되느냐다. 한국 기업은 몇억원을 받고 중국 회사에 판권을 넘기는 단순 거래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중국 업체는 그 IP로 굿즈와 카드, 팬 이벤트를 만들어 몇 배, 몇십 배의 후속 매출을 낼 수 있다.”

-지난 10년을 지켜보며 한국 콘텐츠 업계가 가장 크게 착각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보나.

“좋은 작품만 만들면 된다는 생각이다. 한국은 여전히 세계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능력과 그 콘텐츠로 큰돈을 버는 능력은 전혀 다른 역량이다. 중국은 후자를 빠르게 손에 넣었다. 한국이 중국처럼 콘텐츠를 공장식으로 만들 필요는 없지만 어떻게 세계 시장에서 수익을 확장할지는 다시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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