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재의 돌발史전 2.0] 명량해전 ‘열두 척’ 바로 뒤에... 배 수백 척이 더 있었다고?

며칠 전 전남광주 해남과 진도에서 ‘명량대첩축제’가 열렸다. 미처 기사화하지 못했던 이야기 하나가 문득 생각났다.
1597년(선조 30년) 9월 16일(그레고리력 10월 26일) 있었던 명량해전은 이순신 장군이 고작 13척의 판옥선으로 330여 척의 일본 수군과 싸워 이긴 전투로 잘 알려져 있다. 12척이 아니었느냐고? 조정에 보낸 장계에서는 ‘신에게는 아직 12척이 있사옵니다’라고 했던 것이 맞다. 그런데 그 장계를 보낸 뒤 한 척을 더 건조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중일기’에는 13척으로 기록돼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이미 세간에는 ‘12척’으로 알려져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열두 척’이라는 것은 명량해전을 설명하는 관용적인 표현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12척이든 13척이든,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전과라는 것에는 별 차이가 없다. 조선 수군에는 작은 초탐선(정찰선) 32척도 있었지만 직접 전투에 가담했던 배는 아니다.
그런데 이 배들이 전부였나? 아니다. 수백 척의 배가 이순신의 전선 배후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민초들이 타고 있던 피란선이었다. 이 배들을 전선의 후방에 배치해 멀리서 보면 조선 수군의 배가 훨씬 많은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작전이었다. 일종의 의병(疑兵·적을 속이기 위한 가짜 군사 시설)이었다.
이 얘기는 조선 중기 문신인 오익창(1557~1643)의 ‘사호집(沙湖集)’에 나온다. 조선 수군의 전선이 12척밖에 남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은 전라도 연해민들이 겁을 먹고 피란길에 올랐으나, 오익창이 이들을 설득해 피란선을 동원, 수군의 후방을 지원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사실을 전한 기록은 ‘사호집’뿐이었다.

그런데… 이 기록을 뒷받침할 뿐만 아니라 당시 피란선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전하는 다른 기록이 최근에 나왔다. 몇 년 전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에 의해 비로소 번역된 ‘만오만필(晩悟謾筆)’이었다. 무명의 남인 선비 정현동(1730~1815)이 1812년(순조 12년) 쓴 것이다.
그것은 이런 기록이었다.
壬辰之歲, 倭寇充斥於一國, 湖嶺尤毒. 積年不解, 人皆避寇於山谷之間. 富人則必專船載糧, 聚合宗族, 浮宅於海上.
임진지세, 왜구충척어일국, 호영우독, 적년불해, 인개피구어산곡지간, 부인즉필전선재량, 취합종족, 부택어해상.
(임진년, 왜구가 온 나라에 가득했는데 호남과 영남에서 피해가 한층 심했다. 몇 년이 지나도록 전란이 끝나지 않자 사람들이 모두 왜구를 피해 산골짜기로 들어갔다. 부자들은 반드시 배를 전세 내 식량을 싣고 일가붙이들을 모아 바다 위에서 지냈다.)
元制使均敗沒, 忠武公復來. 新到之初, 只有敗兵如干人及戰船十二隻, 而倭數百艘, 鱗次蔽海而來, 公以十二船挺身, 當前以禦之.
원제사균패몰, 충무공부래. 신도지초, 지유패병여간인급전선십이척, 이왜수백소, 인차폐해이래, 공이십이선정신, 당전이어지.
(그 무렵 통제사 원균이 패해 전사하고 충무공 이순신이 다시 통제사로 돌아왔다. 처음 도착해 보니 그저 패잔병 약간 명과 전선 열두 척만 남아 있었다. 왜구의 배 수백 척이 비늘처럼 이어져 바다를 가득 뒤덮으며 왔는데, 충무공은 배 열두 척으로 용감하게 나아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時避亂船白如艘在港, 公命在後鼓噪以助聲勢. 遂大戰, 移時, 倭艘數百隻相繼燒盡, 死倭浮海. 於是奏凱喧天, 避亂船人男女老少, 踴躍歌舞, 天地爲之變色.
시피란선백여소재항, 공명재후고조이조성세. 수대전, 이시, 왜소수백척상계소진, 사왜부해. 어시주개훤천, 피란선인남녀노소, 용약가무, 천지위지변색.
(이때 피란선 백여 척이 항구에 있었는데 충무공이 피란선들에 명하여 후방에서 북을 치고 함성을 질러 기세를 돋우도록 하였다. 마침내 큰 전투가 벌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왜구의 배 수백 척이 연이어 죄다 불탔으며 왜구의 시체가 바다에 떠다녔다. 이에 개선가가 하늘까지 울려 퍼져 피란선의 남녀노소가 펄쩍 뛰며 춤추고 노래했으니 하늘과 땅의 풍경이 바뀌었다.)

이순신 전문가인 노승석 동국대 여해연구소 학술위원장은 “‘사호집’의 기록과 일치하며 당시의 자세한 정황이 나와 있는 자료로서 신빙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만오만필’의 이 기록은 당시 피란선에 타고 있던 사람들끼리 통혼을 했다는 스토리로 이어지는데, 노 소장은 “임진왜란 때 많은 민간 배들이 해상을 전전했기에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한마디로 ‘피란선에 타고 있던 백성 입장에서 본 명량해전 기록’인 셈이다. 명량해전에 맞춰 조선 수군 뒤에 있는 배에 타고 있었다는 것은 ‘그 시점에 가장 안전한 곳’에 있었던 것인 동시에 무척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그들은 민초였다. 배 주인이야 부유한 백성이었겠지만 그들의 일가친척과 노비들까지 그랬을 리는 없다. 만약 명량해전에서 우리 수군이 패했더라면 이 피란민들은 몰살당할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명량해전은 반드시 이겨서 백성을 보호해야 할 전투였다는 말이 된다. 적군의 오판을 가져오는 전술에서 일익을 담당했던 피란선의 백성들은, 우리 수군 입장에선 ‘반드시 이겨서 지켜야 할 대상’이기도 했다. 이순신 장군은 그런 심리전도 동시에 노렸을 것이다.
명량해전을 뒤에서 ‘직관’했을 그 피란민들을 다시 생각해 보면,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명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승리를 거두자 남녀노소가 배 위에서 환호성을 지르며 펄쩍펄쩍 뛰었다는 서술은 이 기록에서만 나오는데, 그 기쁨은 어떤 스포츠 장면의 감동의 순간보다 훨씬 더 컸을 것이 분명하다.

▶‘유석재의 돌발史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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