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에 분노한 나를 구한 건 이스라엘 사람들이었다

나선진 2026. 9. 24.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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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자의 뒤늦은 고백록 (편집자주)만 15세에 홀로 인도로 떠나 50여 개 나라를 여행한 나선진 씨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과 풍경을 연재합니다.

만 15세에 홀로 인도로 떠나 50여 개 나라를 여행한 나선진 씨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과 풍경을 연재합니다.

이후 읽은 빅터 프랭클, 프리모 레비, 엘리 위젤, 티머시 스나이더는 그 길 위에서 만난 훌륭한 스승들이다.

아픔이 길이 되어 주듯, 과거와의 접점은 나의 현재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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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 두 개의 태양이 뜨는 나라 리투아니아, 한(恨, Żal)의 나라 폴란드 
배낭여행자의 뒤늦은 고백록 (편집자주)

만 15세에 홀로 인도로 떠나 50여 개 나라를 여행한 나선진 씨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과 풍경을 연재합니다. 목사의 아들이기도 한 그는 여행을 통해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그 고민의 과정을 정화·조명·합일의 흐름을 따라 12편으로 기록했습니다. 연재는 매월 넷째 주 목요일 발행합니다. 

멀어지기

서쪽으로, 해가 지는 곳으로 향했다. 저녁의 땅, 황혼으로 향하는 여정이었다. 끝을 보길 바라며 미지의 세계로 움직였다.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된 기나긴 기찻길은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거쳐 헬싱키까지 갔다. 

큰 배를 타고 에스토니아에 내린 뒤, 다시 작은 배로 옮겨 타 리투아니아의 니다(Nida)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니다에 간 것은 순전히 헬싱키에서 만난 한 부부의 권유 때문이었다. 의문을 품고 도착한 니다는 내가 지구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곳 중 하나가 되었다. 
여행은 질문이다. 질문은 저항이다. 7년 전, 한창 세상에 저항하던 노랑머리 청년. 니다에서 길과 바다를 오래 지켜봤다. 사진 제공 나선진

니다에서는 딱히 할 일이 없다. 아침에 해 뜨는 것을 보고, 밥을 해 먹고, 동네를 거닐다 보면 저녁이다. 다시 바다로 가서 해 지는 것을 보면 하루가 끝난다. 특이한 점이라면 이 마을의 지리적 특성이다. 쿠로니아 사주(砂洲)로 불리는 독특한 지형은 리투아니아의 클라이페다와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를 긴 실톱 모양으로 잇는다. 폭 2km 정도의 좁은 땅이 길게 이어지는 모양새 때문에 해가 뜨는 동쪽의 바다에서 해가 지는 서쪽의 바다로 20분 정도면 걸어갈 수 있다. 

니다에서 지내는 며칠 동안 아침 바다에서 떠오르는 태양과 저녁 바다에서 지는 태양을 매일 봤다. 그 두 개의 태양이 마침내 하나로 이어질 만큼 오랫동안 지켜보고서야 니다를 떠날 수 있었다.
리투아니아의 클라이페다와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를 잇는 긴 모래땅 가운데 위치한 니다(Nida). 좌에서 우로 20분만 걸으면 닿는 길쭉한 땅이다. 해가 뜨는 동쪽에 숙소가 있었고, 해가 지는 서쪽의 해변은 내가 오래 앉아 있던 곳. 사진 출처 Wikipedia

속세를 떠나 자연을 거니는 시간은 보잘것없는 삶에서 누리는 사치다. 여행 중에는 필연적으로 그 사치를 자주 누린다. 거친 발트해 바다와 모래 산, 좋은 사람들과 혹고니가 곁에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매일 힘차게 떠오르는 동쪽 바다의 태양을 보며 삶을, 다시는 떠오르지 않을 듯 무자비하게 사라지는 서쪽 바다의 태양을 보며 죽음을 떠올렸다. 내가 알던 것들과 완전히 작별한 어느 타지에서 마주한 것은 결국 나 자신이었다. 모든 모험은 언제나 내면으로 가는 여행이다. 맥락의 공백은 자신을 타자화한다. 완전히 낯선 곳에서 온전한 나를 대면한다.
바닷가에 앉아 한참 시간을 낚았다. 낯선 풍경 앞에서 시간은 확장된다. 수천 번은 봤을 태양도 새롭다. 뭐든 오랫동안 지켜보면 낯설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사진 제공 나선진

내가 소속된 곳에서 적응하지 못하던 나는 자아를 잃어 가고 있었다. 산다는 것이 아파서 무책임하게 떠났다. 먼 곳에서 발견한 나를 대면하며 여러 질문을 떠올렸다. 나는 어디서 왔는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나는 어디를 향하는지, 삶의 목적은 무엇이며, 삶의 이유는 무엇인지. 궁극적인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민에서 왔다. 

내가 니다에서 발견한 사실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것이었다. 거창한 의미 따위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사실이었다. 질문은 멈추지 않았다. 대부분 그래서 뭘 하지? 어디로 가지? 하는 보잘것없는 질문들이었다. 다행히 익숙한 것들과 멀어지며 나와 가까워질 수 있었고, 세상과 동떨어지며 삶에 안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영원히 부유할 것만 같던 내가 처음 삶에 내려앉은 곳이 바로 '니다'였다.

가까워지기

니다를 떠나 칸트가 살던 쾨니히스베르크(칼리닌그라드)를 거쳐 폴란드에 도착했다. 폴란드는 큰 기대 없이 방문한 나라였다. 유일한 목적은 아우슈비츠였다. 나를 가장 거대한 질문에 빠트린 사건인 쇼아(홀로코스트)를 알고 싶어서였다. 20세기는 어쩌다 그토록 거대한 광풍에 휘말렸는가? 그 질문의 극단에는 아우슈비츠가 있었다.

고작 몇 시간 스치는 것으로 감히 알 수 없을 거대한 서사지만, 장소에 내재된 기억의 힘은 위대하기에, 그 기억의 공간에 꼭 가 보고 싶었다. 폴란드를 북에서 남으로 여행하며 많은 이야기를 보고 들었다. 복잡한 갈등의 역사를 지닌 그단스크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연대(Solidarność, 자유노조) 운동, 조선소 노동자였다가 후일 폴란드의 대통령이 된 레흐 바웬사(Lech Wałęsa)에 대해 알게 된 것이 큰 수확이었다. 1980년 그단스크 조선소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던 파업으로 시작한 연대운동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거대한 사회운동으로 확장됐다.

철의 장막이 무너지는 과정에 평범한 사람들의 연대가 있었다. 보통 시민들이 모여 사회의 모습을 바꾸려고 시작한 작은 움직임이 결국 동구권의 체제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폴란드 자유노조 이야기에 나는 여전히 가슴 뛴다. 역사의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공간의 숨결은 길 위의 선물이다.
연대(Solidarność, 자유노조)운동은 땅의 역사다. 민초들의 역사이며, 민중들의 역사다. 자기 삶을 개선하고자 나섰던 시민들의 염원이 모여 세상을 바꿨다. 한국에는 '자유노조'로 알려진 연대운동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의미 있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다. 사진 제공 나선진 
전쟁 전 바르샤바는 유럽 최대 규모의 유대인 공동체였다. 1939년 폴란드를 점령한 독일군은 이듬해 벽을 세워 게토를 설치했다. 4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3.4㎢에 수용됐다. 격리, 착취, 기아, 강제 이송 등으로 유대인을 죽이기 위해 설계된 공간이다. 사진 제공 나선진
1943년 바르샤바 게토 봉기에서 희생된 유대인들을 기리는 게토 영웅 기념비. 사진 제공 나선진 / 1970년 12월 7일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가 헌화 후 무릎을 꿇어 나치의 범죄를 참회했다. "무릎을 꿇은 것은 브란트 한 사람이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민족이었다." 사진 출처 GHDI

바르샤바, 크라쿠프를 거쳐 오시비엥침(Oświęcim)으로 불리는 아우슈비츠로 계속 내려갔다. 아우슈비츠에 도착하기 전날에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인 '쉰들러 리스트'의 쉰들러가 운영한 공장에도 들렀다. '빈 의자들'이 놓인 크라쿠프 영웅 광장에서는 더 마음 아팠다. 떠나면 돌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간 이들의 원혼이 크라쿠프 시민들의 일상 속 공간에 자리 잡았다. 

한(恨) 많은 우리 민족의 역사만큼이나 어렵게 나라를 지켜 온 폴란드에는 잘(Żal)이란 단어가 있다. 슬픔, 비탄, 후회, 회한으로 번역하면 적절할 이 단어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인 한(恨)과 닮았다. 역사가 남긴 고통 이후 힘겹게 탈환한 평화를 살고 있는 우리는 이런 울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는 폴란드에서 그 한 맺힌 역사를 살폈다. 아우슈비츠라는 거대한 기억의 공간을 찾을 이유는 분명했다. 
시내 중심지 폴란드 유대인 역사박물관(POLIN)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유대인 묘지(Cmentarz Żydowski). 고아원을 운영하던 폴란드 의사 '야누시 코르차크'는 아이들만 수용소로 보내길 거부하고 끝까지 함께했다. 그의 묘지 앞에서 한참 질문했다. 사진 제공 나선진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촬영지이자 실제 오스카 쉰들러가 운영한 에나멜 공장. 쉰들러는 유대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를 만들어 1200명의 생명을 살렸다. 사진 제공 나선진
크라쿠프 게토 영웅 광장(Plac Bohaterów Getta)의 '빈 의자들'. 유대인 주민들이 수용소로 강제 이송 되기 전 이곳에 집결했다. 빈 의자들은 강제로 끌려가며 버려둔 가구와 소지품을 상징하며, 사라진 사람들의 부재를 의미한다. 쉰들러 공장과 비슷하게 많은 사람을 살린 '독수리 약국'이 근처에 있다. 사진 제공 나선진

아우슈비츠는 복잡성을 띤 곳이다. 수용자 집단들에게는 구체적인 물증, 생존자와 자손들에게는 가족묘지, 역사의 현장을 전시하고 안내하는 박물관, 순교자들의 고행지이자 순례지, 참회, 경고, 성명, 주장을 할 수 있는 역사적 무대이고, 역사가들에게는 흔적을 고증하고 확증하는 고고학적 현장이다. 

사회인류학자 조너선 웨버가 말하듯, 아우슈비츠는 이 모든 것이 하나로 녹아 있는 곳이며 우리의 언어는 아우슈비츠가 어떤 장소라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범주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곳에는 분명 '매체로 재생산을 할 수 없는 장소의 아우라'가 있다. 

집단적 망각의 단계를 넘어 기억을 보존한 아우슈비츠를 7년 전, 22살에 다녀왔다. 이 기억은 이후 내가 삶을, 세상을, 인류를 바라보는 데 크나큰 이정표이자 길라잡이가 된다. 이후 읽은 빅터 프랭클, 프리모 레비, 엘리 위젤, 티머시 스나이더는 그 길 위에서 만난 훌륭한 스승들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정문에 걸려 있는 'Arbeit macht frei(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문구. 강제노동과 학살이 일어난 곳의 문장이 섬뜩하다. 사진 제공 나선진

역사의 현장을 찾음은 그 역사와 가까워지는 일이다. 한낱 타인의 고통에 불과한 역사를 나의 서사 속으로 들여오면 그 역사가 달리 보인다. 아픔이 길이 되어 주듯, 과거와의 접점은 나의 현재를 바꾼다. 어제는 우리를 변형시킨다. 이 관점의 변화는 곧 질문의 변화다. 세상과 멀어지며 내 안에 맴돌던 질문은 마침내 타자를 향한다. 거대한 역사의 광풍 속 타인이 겪었을 고통을 질문한다. 세상의 비참함을, 잔혹함을, 불공정함을 질문하게 된다. 지금의 세계가 되기까지 겪어 온 수많은 생채기와 상처를 직시하며 묻는다. 

나의 시선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그리고 나는 어느 곳에 서 있을지 말이다. 멀고도 가까운 어둠 속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과거를 들여다볼 때다. 역사는 더 멀리 나아가려는 우리를 위한 '길 잃기 안내서'다. 역사의 쓸모는 우리가 질문할 때만 빛을 발한다. 망각되고, 마비되며, 상실되고 휘발되는 기억에 맞서 끊임없이 이 세상의 부조리를 질문할 때, 타인의 역사에 가까이 다가설 때 세상은 더 이상 이전처럼 보이지 않는다. 질문이 우리를 내 앞의 사람에게로 이끈다. 삶은 하나의 질문이다. 여행은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을 찾기 위한 증명이자 풀이 과정이다.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는 책에서 말한다. "수많은 신생 폭군들이 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서랍 속에 간직하고 있다. 몇 군데는 수정하고 몇 군데는 이름을 바꾸면, 그 책은 여전히 쓸모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푸틴을, 네타냐후를, 트럼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역사는 왜 반복하는가? 사진 제공 나선진

질문

질문은 저항이다. 저항하지 않으면 우리는 같음의 지옥에 빠지고, 질문하지 않으면 얕음의 지옥에 빠진다. 나치의 고트 미트 운스(Gott mit uns, 신은 우리와 함께)는 20세기 현대사를 지옥불로 빠트렸다. 그 지옥을 의심 없이, 질문 없이 따랐던 수많은 아이히만들은 히틀러가 전용한 기독교의 메타포를 무심하게 받아들였다. 지금의 우리에게도 그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저항과 질문을 반기지 않는 우리는 무감각하고 닫혀 있다. 수동적으로 주어진 정보만을 받아먹으며 질문할 힘을 잃는 시대를 살고 있다. 진리를 추구하며 신앙하는 종교인들은 이런 맹목적인 수용 탓에 갈수록 세상과 동떨어진다. 

우리들끼리만 거룩한 폐쇄적 집단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선 신앙 앞에서 건강한 질문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시대에서 종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스도가 보여 준 숭고한 가치는 지금의 이 땅에서 어떻게 실현될 것인지 말이다. 좋은 질문만이 우리를 같음과 얕음의 지옥에서 건져 낸다.

루트 클뤼거는 "아우슈비츠 이후 서구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아우슈비츠를 그들 역사 속에 갖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여명의 땅, 동양 끝에 사는 우리에게 동떨어진 말이 아니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르완다 키갈리, 중국 난징, 캄보디아 프놈펜, 제주의 4·3 유적지에서 같은 질문을 했다. 그래서 타인의 고통이 나와 무슨 상관인지.

그 질문들은 나의 역사에 남아 있다. 세상과 멀리 떨어졌을 때 내 안에서 맴돌던 질문들이, 세상에 가까워지자 세상을 향한 질문이 되었다. 여전히 답변을 떠올리기는 어렵지만 질문해야 할 이유 정도는 찾았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 과거에 대한 관심은 사실 현재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다. 여행은 타인의 역사를 나의 역사로 만든다.
그단스크 제2차세계대전 박물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순덕 할머니의 그림 '끌려감'을 만났다. 이역만리 폴란드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떠올리며 세상에 질문했다. 사진 제공 나선진

답

여행은 낯섦의 천국이다. 온갖 낯선 것들을 받아들이며 시간이 확장되고, 사고의 틈이 열린다. 이 틈으로 비치는 연민의 빛으로 세상을 볼 때, 우리는 마침내 타자에게 다가설 수 있게 된다. 연민과 사랑에서 비롯되는 질문은 우리가 은총으로 다가서는 자리다. 

나와 상관없다며 넘기던 일을 나의 고민으로 여기며 연대하는 일은 질문부터 시작된다. 즉각적인 대답이나 상응하는 대답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더라도 먼저 질문하면 말 없음에 가까운 말로 답은 온다.
내 마음이 가장 크게 무너진 곳은 가스실이 아닌 물건들 앞이었다. 신발, 구둣솔, 가방, 의족 등 수많은 생명들이 바스러져 간 흔적들에 마음 아팠다. 눈물을 움켜쥐고 추모비 앞에서 묵념했다. 사진 제공 나선진
아우슈비츠에서 통탄에 빠졌다. 실어증에 걸린 것마냥 언어를 잃었다. 곧 죽을 것이라 생각 못했을 사람들의 사라진 희망을 봤다. 머나먼 피난길 오래 지고 왔을 짐보따리 앞에서 말을 잃었다. 가방, 그릇, 의족, 빗, 구둣솔, 신발, 그리고 머리카락. 지극히 일상적인 물건에 담긴 이야기는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이었다. 그 앞에 서자 또 다른 질문이 나를 뒤덮었다. 
아우슈비츠 이후 큰 슬픔에 빠졌다. 다음 행선지가 산이라 다행이었다. 삶이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 때, 언제나 자코파네가 있다. 타트라산맥 자코파네에서 다시 살 힘을 얻었다. 자연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아름다움이다. 산이 내보이는 아름다움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 제공 나선진.

이튿날 다시 테라 인코그니타(Terra incognita, 미지의 땅)로 떠났다. 타트라산맥 자코파네 어귀에서 길을 잃었다. 설산에 가기엔 장비가 턱없이 부족했고, 시간 계산도 실패했다. 가도 가도 길이 끝없었다. 마을까진 차로 30분 거리였다. 이미 버스는 끊기고 산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나를 구해 준 건 우습게도 이스라엘 형님들이었다. 홀로코스트 이후 이스라엘을 생각하며 화가 나있던 내게 임한 신비였다. 다시 사람을 믿게 되었다. 다시 신을 믿게 되었다. 자연 속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가 폴란드에서 다시 찾은 답이었다. 
길을 잃었고, 누군가의 선의로 길을 다시 찾았다. 나를 구해 준 이스라엘 형님들. 사진 제공 나선진
이 질문과 답 뒤에는 거대한 신의 섭리가 있었을 것이다. 나를 불쌍히 여긴 신이 내 앞사람의 목소리로 내게 말하셨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월든>에서 소로는 말한다.

"우리는 길을 잃고 세상을 잃은 뒤에야 비로소 자신을 찾기 시작한다. 자신이 있는 곳을 깨우치고, 자신과 세상이 무한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깨닫는다."

온 세상을 잃으라. 그 속에서 길을 잃으라. 그리하면 영혼을 찾으리라.
함께 읽으면 좋을 책

<길 잃기 안내서: 더 멀리 나아가려는 당신을 위한 지도들> / 리베카 솔닛 지음 / 김명남 옮김 / 반비 펴냄 / 2018

<기억의 공간: 문화적 기억의 형식과 변천>/ 알라이다 아스만 지음 / 변학수 옮김 / 그린비 펴냄 / 2011

나선진 / 중앙루터교회 교인
필자 소개

많은 시간을 길 위에서 보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혼자 일본 친구 집에 다녀온 이후 만 15살 인도와 네팔을 여행했고 이후 50여 개의 나라를 다녔다. 가장 사랑한 여행지는 까미노 순례길, 가장 기억에 남는 나라는 남수단이다. 목회자 자녀로 태어나 한때는 신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지금도 교회와 세상의 경계 위에서 세상 속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중앙루터교회에 출석 중인 20대 청년이다.

사랑하는 <뉴스앤조이>에 쓸 여행기는 뒤늦은 고백록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너무 늦게 당신을 사랑했습니다(sero te amavi)"라고 말했듯이, 지나온 모든 순간에 함께한 하나님의 사랑을 고백한다. 낯선 타인을 만나며, 아름다움 앞에 멈춰 서며 떠올렸던 생각들을 적으려 한다.

이 글에서 여행의 이유, 여행의 기술, 여행의 사고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곳에서 모든 이야기를 다 할 순 없으니 언젠가 길 위에서 당신을 만나기를 기대하며 기다린다.

나선진 newsnjoy@newsnjo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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