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에 분노한 나를 구한 건 이스라엘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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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자의 뒤늦은 고백록 (편집자주)만 15세에 홀로 인도로 떠나 50여 개 나라를 여행한 나선진 씨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과 풍경을 연재합니다.
만 15세에 홀로 인도로 떠나 50여 개 나라를 여행한 나선진 씨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과 풍경을 연재합니다.
이후 읽은 빅터 프랭클, 프리모 레비, 엘리 위젤, 티머시 스나이더는 그 길 위에서 만난 훌륭한 스승들이다.
아픔이 길이 되어 주듯, 과거와의 접점은 나의 현재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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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5세에 홀로 인도로 떠나 50여 개 나라를 여행한 나선진 씨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과 풍경을 연재합니다. 목사의 아들이기도 한 그는 여행을 통해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그 고민의 과정을 정화·조명·합일의 흐름을 따라 12편으로 기록했습니다. 연재는 매월 넷째 주 목요일 발행합니다.
멀어지기 |
서쪽으로, 해가 지는 곳으로 향했다. 저녁의 땅, 황혼으로 향하는 여정이었다. 끝을 보길 바라며 미지의 세계로 움직였다.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된 기나긴 기찻길은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거쳐 헬싱키까지 갔다.

니다에서는 딱히 할 일이 없다. 아침에 해 뜨는 것을 보고, 밥을 해 먹고, 동네를 거닐다 보면 저녁이다. 다시 바다로 가서 해 지는 것을 보면 하루가 끝난다. 특이한 점이라면 이 마을의 지리적 특성이다. 쿠로니아 사주(砂洲)로 불리는 독특한 지형은 리투아니아의 클라이페다와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를 긴 실톱 모양으로 잇는다. 폭 2km 정도의 좁은 땅이 길게 이어지는 모양새 때문에 해가 뜨는 동쪽의 바다에서 해가 지는 서쪽의 바다로 20분 정도면 걸어갈 수 있다.

속세를 떠나 자연을 거니는 시간은 보잘것없는 삶에서 누리는 사치다. 여행 중에는 필연적으로 그 사치를 자주 누린다. 거친 발트해 바다와 모래 산, 좋은 사람들과 혹고니가 곁에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내가 소속된 곳에서 적응하지 못하던 나는 자아를 잃어 가고 있었다. 산다는 것이 아파서 무책임하게 떠났다. 먼 곳에서 발견한 나를 대면하며 여러 질문을 떠올렸다. 나는 어디서 왔는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나는 어디를 향하는지, 삶의 목적은 무엇이며, 삶의 이유는 무엇인지. 궁극적인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민에서 왔다.
가까워지기 |
니다를 떠나 칸트가 살던 쾨니히스베르크(칼리닌그라드)를 거쳐 폴란드에 도착했다. 폴란드는 큰 기대 없이 방문한 나라였다. 유일한 목적은 아우슈비츠였다. 나를 가장 거대한 질문에 빠트린 사건인 쇼아(홀로코스트)를 알고 싶어서였다. 20세기는 어쩌다 그토록 거대한 광풍에 휘말렸는가? 그 질문의 극단에는 아우슈비츠가 있었다.
고작 몇 시간 스치는 것으로 감히 알 수 없을 거대한 서사지만, 장소에 내재된 기억의 힘은 위대하기에, 그 기억의 공간에 꼭 가 보고 싶었다. 폴란드를 북에서 남으로 여행하며 많은 이야기를 보고 들었다. 복잡한 갈등의 역사를 지닌 그단스크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연대(Solidarność, 자유노조) 운동, 조선소 노동자였다가 후일 폴란드의 대통령이 된 레흐 바웬사(Lech Wałęsa)에 대해 알게 된 것이 큰 수확이었다. 1980년 그단스크 조선소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던 파업으로 시작한 연대운동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거대한 사회운동으로 확장됐다.



바르샤바, 크라쿠프를 거쳐 오시비엥침(Oświęcim)으로 불리는 아우슈비츠로 계속 내려갔다. 아우슈비츠에 도착하기 전날에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인 '쉰들러 리스트'의 쉰들러가 운영한 공장에도 들렀다. '빈 의자들'이 놓인 크라쿠프 영웅 광장에서는 더 마음 아팠다. 떠나면 돌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간 이들의 원혼이 크라쿠프 시민들의 일상 속 공간에 자리 잡았다.



아우슈비츠는 복잡성을 띤 곳이다. 수용자 집단들에게는 구체적인 물증, 생존자와 자손들에게는 가족묘지, 역사의 현장을 전시하고 안내하는 박물관, 순교자들의 고행지이자 순례지, 참회, 경고, 성명, 주장을 할 수 있는 역사적 무대이고, 역사가들에게는 흔적을 고증하고 확증하는 고고학적 현장이다.
사회인류학자 조너선 웨버가 말하듯, 아우슈비츠는 이 모든 것이 하나로 녹아 있는 곳이며 우리의 언어는 아우슈비츠가 어떤 장소라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범주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곳에는 분명 '매체로 재생산을 할 수 없는 장소의 아우라'가 있다.

역사의 현장을 찾음은 그 역사와 가까워지는 일이다. 한낱 타인의 고통에 불과한 역사를 나의 서사 속으로 들여오면 그 역사가 달리 보인다. 아픔이 길이 되어 주듯, 과거와의 접점은 나의 현재를 바꾼다. 어제는 우리를 변형시킨다. 이 관점의 변화는 곧 질문의 변화다. 세상과 멀어지며 내 안에 맴돌던 질문은 마침내 타자를 향한다. 거대한 역사의 광풍 속 타인이 겪었을 고통을 질문한다. 세상의 비참함을, 잔혹함을, 불공정함을 질문하게 된다. 지금의 세계가 되기까지 겪어 온 수많은 생채기와 상처를 직시하며 묻는다.


질문 |
질문은 저항이다. 저항하지 않으면 우리는 같음의 지옥에 빠지고, 질문하지 않으면 얕음의 지옥에 빠진다. 나치의 고트 미트 운스(Gott mit uns, 신은 우리와 함께)는 20세기 현대사를 지옥불로 빠트렸다. 그 지옥을 의심 없이, 질문 없이 따랐던 수많은 아이히만들은 히틀러가 전용한 기독교의 메타포를 무심하게 받아들였다. 지금의 우리에게도 그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저항과 질문을 반기지 않는 우리는 무감각하고 닫혀 있다. 수동적으로 주어진 정보만을 받아먹으며 질문할 힘을 잃는 시대를 살고 있다. 진리를 추구하며 신앙하는 종교인들은 이런 맹목적인 수용 탓에 갈수록 세상과 동떨어진다.
우리들끼리만 거룩한 폐쇄적 집단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선 신앙 앞에서 건강한 질문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시대에서 종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스도가 보여 준 숭고한 가치는 지금의 이 땅에서 어떻게 실현될 것인지 말이다. 좋은 질문만이 우리를 같음과 얕음의 지옥에서 건져 낸다.
루트 클뤼거는 "아우슈비츠 이후 서구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아우슈비츠를 그들 역사 속에 갖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여명의 땅, 동양 끝에 사는 우리에게 동떨어진 말이 아니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르완다 키갈리, 중국 난징, 캄보디아 프놈펜, 제주의 4·3 유적지에서 같은 질문을 했다. 그래서 타인의 고통이 나와 무슨 상관인지.
그 질문들은 나의 역사에 남아 있다. 세상과 멀리 떨어졌을 때 내 안에서 맴돌던 질문들이, 세상에 가까워지자 세상을 향한 질문이 되었다. 여전히 답변을 떠올리기는 어렵지만 질문해야 할 이유 정도는 찾았다.

답 |
여행은 낯섦의 천국이다. 온갖 낯선 것들을 받아들이며 시간이 확장되고, 사고의 틈이 열린다. 이 틈으로 비치는 연민의 빛으로 세상을 볼 때, 우리는 마침내 타자에게 다가설 수 있게 된다. 연민과 사랑에서 비롯되는 질문은 우리가 은총으로 다가서는 자리다.




이튿날 다시 테라 인코그니타(Terra incognita, 미지의 땅)로 떠났다. 타트라산맥 자코파네 어귀에서 길을 잃었다. 설산에 가기엔 장비가 턱없이 부족했고, 시간 계산도 실패했다. 가도 가도 길이 끝없었다. 마을까진 차로 30분 거리였다. 이미 버스는 끊기고 산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우리는 길을 잃고 세상을 잃은 뒤에야 비로소 자신을 찾기 시작한다. 자신이 있는 곳을 깨우치고, 자신과 세상이 무한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깨닫는다."
<길 잃기 안내서: 더 멀리 나아가려는 당신을 위한 지도들> / 리베카 솔닛 지음 / 김명남 옮김 / 반비 펴냄 / 2018
<기억의 공간: 문화적 기억의 형식과 변천>/ 알라이다 아스만 지음 / 변학수 옮김 / 그린비 펴냄 / 2011
많은 시간을 길 위에서 보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혼자 일본 친구 집에 다녀온 이후 만 15살 인도와 네팔을 여행했고 이후 50여 개의 나라를 다녔다. 가장 사랑한 여행지는 까미노 순례길, 가장 기억에 남는 나라는 남수단이다. 목회자 자녀로 태어나 한때는 신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지금도 교회와 세상의 경계 위에서 세상 속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중앙루터교회에 출석 중인 20대 청년이다.
사랑하는 <뉴스앤조이>에 쓸 여행기는 뒤늦은 고백록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너무 늦게 당신을 사랑했습니다(sero te amavi)"라고 말했듯이, 지나온 모든 순간에 함께한 하나님의 사랑을 고백한다. 낯선 타인을 만나며, 아름다움 앞에 멈춰 서며 떠올렸던 생각들을 적으려 한다.
이 글에서 여행의 이유, 여행의 기술, 여행의 사고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곳에서 모든 이야기를 다 할 순 없으니 언젠가 길 위에서 당신을 만나기를 기대하며 기다린다.
나선진 newsnjoy@newsnjo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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