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나와서 "하루 벌고 사흘 놀래요"…'벽걸이족'의 등장 [차이나 워치]

김은정 2026. 9. 24.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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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최소한의 소득으로 버티며 노동시장과 인간관계에서 멀어지는 이른바 벽걸이족이 새로운 청년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SCMP는 "벽걸이족 확산은 중국 청년 문제가 취업률과 임금 같은 지표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단계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노동시장 이탈과 인간관계 단절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청년 고립 문제가 중국 사회의 새로운 정책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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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위안 들고 당구장에서 잔다
대학 나와도 사회 이탈…일도 관계도 '뚝'
중국에서 최소한의 소득으로 버티며 노동시장과 인간관계에서 멀어지는 이른바 벽걸이족이 새로운 청년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AFP

중국에서 최소한의 소득으로 버티며 노동시장과 인간관계에서 멀어지는 이른바 벽걸이족이 새로운 청년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공장 일용직 노동자 중심이던 현상이 최근 대학 졸업자와 도시 청년층으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취업난과 소득 불안, 가정 해체와 투자 실패 등이 겹치면서 경쟁을 스스로 거부하는 탕핑(躺平·드러눕기)과는 다른 형태의 사회적 고립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자리 잃고 친구도 끊었다 

중국 매체들을 종합해보면 중국 SNS에선 벽걸이를 뜻하는 과비(挂壁)라는 표현이 청년층의 새로운 생활상을 설명하는 은어로 확산하고 있다. 과비는 원래 벽에 걸린 채 사용되지 않는 물건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안정적인 일자리와 사회적 관계를 잃은 뒤 최소한의 소득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청년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이 현상은 2018년 선전 싼허 인력시장을 중심으로 알려진 싼허다선과 맞닿아 있다. 당시 단기 일용직을 전전하던 젊은 노동자들은 하루 일하고 사흘 쉰다는 생활방식으로 주목받았다. 최근에는 이 같은 생활방식이 제조업 노동자뿐 아니라 대졸 청년층으로도 번지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소개된 29세 궈쯔하오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후난성의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해 경제·경영학을 전공했다. 안정적인 경력을 쌓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가족의 죽음과 투자 실패를 겪은 뒤 삶이 급격히 흔들렸다.

수입이 끊긴 뒤 배달과 육체노동, 영업 등 임시직을 전전했고 한때 수중에 20위안(약 4100원)만 남은 채 선전의 24시간 당구장에서 잠을 청했다.

경제적 어려움은 인간관계 단절로 이어졌다. 그는 친구들이 자신을 돈을 빌리려는 사람으로 볼까 두려워 연락을 끊었다. 이후 SNS에서 과비라는 표현을 접했고 자신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는 SCMP에 당시 상황에 대해 단순한 경제적 어려움보다 매 순간이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청년 문제로 떠오른 벽걸이족 

비슷한 사례는 중국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월 구이저우성의 한 인터넷카페는 시간당 0.6위안이라는 저렴한 이용료 때문에 벽걸이족이 모이는 장소로 알려지며 화제가 됐다. 일부 청년은 거리와 공공장소에서 잠을 자거나 인터넷 방송으로 소액을 벌며 생활한다.

중국 매체들은 이들이 벽걸이족이 돼가는 경로도 다양하다고 전한다. 실직과 사업 실패, 가족 갈등, 이혼 등이 대표적이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관계를 끊고 스마트폰 번호까지 해지하는 사례도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벽걸이족은 최근 중국 청년층 사이에서 확산한 탕핑과는 차이가 있다. 탕핑이 과도한 경쟁과 장시간 노동을 거부하는 자발적 선택의 의미가 강하다면 벽걸이족은 경제적 충격과 가족 해체, 사회적 관계 단절이 겹치면서 주변부로 밀려난 상태에 가깝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사회 복귀를 위해 일자리 제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고용 기회와 함께 사회적 관계 회복을 돕고 과도한 고립을 강화할 수 있는 온라인 환경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SCMP는 "벽걸이족 확산은 중국 청년 문제가 취업률과 임금 같은 지표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단계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노동시장 이탈과 인간관계 단절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청년 고립 문제가 중국 사회의 새로운 정책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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