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는 아직"…엇갈린 본딩 베팅, 한미반도체가 웃었다

설동협 기자 2026. 9. 24. 06:03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 "수율 90~98%·수명 3~5년 충족해야"
엔비디아도 HBM4·4E 8~12단 검토…초고단 적층 속도조절
한화는 '하이브리드'·한미는 'TC 장기화'…엇갈린 전략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적층 기술로 주목받아온 '하이브리드 본딩'의 도입이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기존 열압착(TC) 본더의 수명이 길어질 것이란 한미반도체의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SK하이닉스도 엔비디아도 '속도조절'

23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최근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 주관 'AI 컴퓨팅의 미래' 콘퍼런스에서 하이브리드 본딩을 실제 양산에 적용하기 위한 조건으로 90~98% 수준의 수율과 3~5년의 제품 수명을 제시했다.

김지훈 SK하이닉스 아메리카 시니어 디렉터는 HBM을 12단 이상으로 높게 쌓을수록 발열과 수율, 패키징 측면에서 병목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양산성과 신뢰성을 충분히 확보하기 전까지 하이브리드 본딩 도입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D램 사이의 마이크로 범프 없이 구리와 구리를 직접 접합하는 기술이다. HBM 전체 두께를 줄일 수 있어 16단과 20단 등 초고단 적층을 구현하기 위한 차세대 기술로 꼽힌다.

최대 고객인 엔비디아의 HBM 전략도 하이브리드 본딩의 조기 도입 필요성을 낮추는 요인이다. 최근 엔비디아는 차세대 AI 가속기 '루빈 울트라'의 메모리 구성을 당초 HBM4E 12단 중심에서 HBM4E 8단과 HBM4 8단·12단까지 확대해 평가하고 있다. HBM4E 12단의 검증과 양산 수율에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엔비디아향 HBM4 공급에서도 8단 비중이 확대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세대 HBM4E 역시 당장 16단 이상 초고단 제품보다 8~12단 제품이 주력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적층 경쟁의 속도가 예상보다 완만해진다면 하이브리드 본딩을 서둘러 적용해야 할 필요성도 낮아진다. 수율과 신뢰성이라는 기술적 장벽에 더해 고객사의 초고단 HBM 수요까지 늦춰지면서 기존 TC 본딩의 적용 기간이 길어질 여지가 커진 셈이다.

한화는 '하이브리드'·한미는 'TC'…엇갈린 베팅, 현재 승자는

하이브리드 본딩의 도입 시점을 둘러싼 전망은 국내 장비업체들의 전략도 갈라놨다. TC 본더 시장 후발주자인 한화세미텍은 지난해부터 하이브리드 본더를 차세대 '게임 체인저'로 내세우며 시장 선점에 나섰다. 기존 TC 본더 시장의 경쟁 구도를 차세대 기술 전환을 계기로 뒤집겠다는 전략이다.

반면 한미반도체는 하이브리드 본딩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실제 전환 시점은 훨씬 늦을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곽동신 한미반도체 회장은 HBM4와 HBM5에 하이브리드 본더를 사용하는 것을 '우도할계(牛刀割鷄)', 즉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 격'​이라고 표현했다. 고가의 하이브리드 본더를 서둘러 적용할 필요 없이 HBM5까지 기존 TC 본더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미반도체는 이후에도 TC 본딩 수요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란 입장을 유지했다. 올해 들어서는 HBM5와 HBM6에 대응하는 '와이드 TC 본더' 출시 계획까지 내놓으며 TC 본더의 적용 범위를 차세대 HBM으로 넓히고 있다.

반면 하이브리드 본딩은 아직 주요 HBM 제조사의 본격적인 양산 공정에 적용되지 않고 있다. 당초 HBM4부터 적용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태다.

다만 하이브리드 본딩의 필요성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HBM이 20단 이상으로 고단화할수록 기존 범프 방식으로 두께와 발열을 제어하는 데 한계가 커지는 만큼 중장기적으로는 하이브리드 본딩 전환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미반도체 역시 이에 대비해 하이브리드 본더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HBM4와 HBM5까지는 TC 본딩으로 대응하고, 실제 수요가 형성되는 시점에 맞춰 하이브리드 본더 시장에 진입한다는 전략이다.

결국 양사의 승부를 가른 건 하이브리드 본딩의 필요성보다 '상용화 시점'이다. 한화세미텍이 시장의 조기 전환에 무게를 뒀다면 한미반도체는 TC 본딩이 차세대 HBM에서도 상당 기간 주력으로 남을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SK하이닉스가 하이브리드 본딩에 높은 수율과 신뢰성 기준을 제시한 데 이어 최대 고객인 엔비디아까지 HBM4·HBM4E에서 8~12단 제품으로 선택지를 넓히면서 당분간 TC 본더의 역할이 이어질 가능성은 한층 커졌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하이브리드 본딩이 궁극적으로 필요한 기술이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지만, HBM 제조사 입장에서는 기존 TC 방식으로 고객사가 요구하는 성능과 수율을 충족할 수 있다면 굳이 공정 난도가 높은 기술을 서둘러 적용할 이유가 없다"며 "하이브리드 본딩의 상용화 시점은 초고단 HBM 수요와 양산 수율이 얼마나 빠르게 뒷받침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설동협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