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힘, 어디서 오는가[서중해의 경제망원경](68)

2026. 9. 24.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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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의 명소인 ‘서울 문(SEOUL MUN)’ 거리는 몰려드는 인파에 밤마다 불야성을 이룬다. 연합뉴스

한국은행은 올해 안으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GNI)이 4만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9월 8일 2026년 2분기 국민소득 통계 발표 자리에서 김화용 국민소득부장은 “하반기에 예상치 못한 충격이 없고 명목 GNI 증가율과 환율 안정세가 유지된다면 그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고 밝혔다.

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는 2025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6만4210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소폭 웃돌며 일본을 앞선다. 숫자에 집착하지 않아도, 한국 경제가 물질적 성과 면에서 유사 이래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번 칼럼에서는 한국의 성취를 밝은 측면에서, 다음 칼럼에서는 어두운 측면에서 살펴보려 한다.

바깥으로 퍼져나가는 한국의 힘

한국의 성과는 경제 통계를 넘어선다. 멀리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두고 중국어로 발행되는 온라인 언론 사이노비전(SinoVision·美国中文网)에 ‘왜 몽골은 이토록 한국을 좋아할까?’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울란바토르가 거의 ‘작은 서울’처럼 변한 모습을 전한다. 한국 편의점 CU가 600개, GS25가 300개에 달한다. 그 외 한식 음식점과 카페, K팝이 거리를 메운다. 한국 기업이 참여한 주거단지는 서울 아파트를 연상시키며, 젊은 세대 사이에는 ‘코리아 드림(Korean Dream)’까지 생겨났다.

기사는 몽골이 한국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이유 중 하나로, 한국이 아시아의 선진국이면서도 자신들을 지배한 역사가 없어 역사적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점을 들었다. 13세기 몽골 제국과 고려의 관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몽골인들은 오늘날의 한국을 보며 “조상들이 한때 잘나갔다”는 여유마저 느낀다고 서술했다. 한국의 관점에서는 경제적 성취가 문화적 매력과 소프트파워로 자연스럽게 전환돼 먼 나라의 일상 속으로 스며든 장면이다.

이처럼 바깥으로 퍼져나가는 한국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후발국 산업화 과정에서 국가의 강력한 역할,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에서 이루어진 기술의 학습과 개발 체제, 높은 교육 투자와 교육열 등이 한국 경제·사회의 발전을 설명한다.

아울러 개방성과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한국의 발전 과정을 조명해보면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한국은 종교적으로 다양성이 매우 높은 나라다. 많은 사람은 여전히 ‘불교와 기독교가 공존하는 나라’ 정도로 막연히 인식한다. 그러나 최근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의 조사 결과는 한국이 단순한 공존을 넘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높은 수준의 종교 다양성을 가진 사회임을 수치로 보여준다.

2026년 2월 퓨 리서치 센터가 발표한 ‘세계 종교 다양성(Religious Diversity Around the World)’ 보고서는 2020년 기준 세계 201개 국가·영토의 종교 구성을 분석해 ‘종교 다양성 지수(Religious Diversity Index·RDI)’를 산출했다. 이 지수는 인구가 기독교와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유대교, 기타 종교, 무종교 등 7개 범주에 얼마나 고르게 분포돼 있는지를 0점에서 10점 사이의 점수로 나타낸다. 점수가 높을수록 한 종교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지 않고 여러 그룹이 비교적 균형 있게 나뉘어 있다는 뜻이다.

이 지수에서 한국은 7.3점을 기록하며 세계 4위에 올랐다. 1위는 싱가포르(9.3점), 2위는 수리남(7.5점), 3위는 대만(7.5점)이었다. 한국은 이들 국가와 함께 ‘매우 높음(Very high)’ 그룹에 속한다. 2010년 데이터에서는 한국이 7.7점으로 세계 2위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10년 사이 점수가 소폭 하락했지만 여전히 세계 최상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한국문화축제인 K컬처 타운에서 시민들이 한국 문화를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의 높은 다양성 점수는 구체적인 종교 구성에서 비롯된다. 퓨 리서치 센터의 추정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무종교 인구가 48~52%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 외 기독교가 약 32%, 불교가 약 19%를 차지한다. 어느 한 그룹도 절반을 넘지 않으며 세 그룹이 비교적 고르게 분포돼 있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단일 종교가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단일 종교가 과반을 형성하지 않는 국가는 7개국인데, 한국이 그중 하나다. 그 7개국은 싱가포르와 한국, 모리셔스, 호주, 프랑스, 영국, 코트디부아르다.

이러한 구성이 형성된 배경에는 한국사회의 급격한 세속화와 활발한 종교 전환이 자리한다. 퓨 리서치 센터 조사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약 53%가 어린 시절 가졌던 종교 정체성을 바꾸었다. 특히 종교를 버리고 무종교가 되는 비율은 홍콩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이다.

불교에서 무종교로, 또는 기독교에서 무종교로 이동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동시에 기독교는 여전히 사회적으로 중요한 세력으로 남아 있고, 불교 역시 상당한 신자 기반을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무종교의 증가’와 ‘전통 종교의 잔존’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독특한 균형 상태가 만들어졌다.

물질적 풍요가 소프트파워로 확장

한국의 종교 다양성은 단순한 통계적 현상을 넘어 한국사회의 특징을 반영한다. 강한 단일 종교 문화를 가진 여러 아시아 국가와 달리, 한국은 특정 종교가 사회를 압도하지 않는 공간을 유지해왔다. 이는 종교 간 갈등을 상대적으로 낮추는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종교적 정체성의 유동성’과 ‘세속화의 심화’라는 과제를 던지기도 한다.

더 나아가 개방성과 다양성은 외부 제도와 아이디어를 유연하게 받아들여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는 사회 구조를 가능하게 한 토대로 작용한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경제 지표가 보여주는 물질적 성취와 몽골 거리에서 확인되는 소프트파워, 내부의 높은 종교 다양성, 이 세 장면은 서로 무관해 보이지만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한국은 빠르게 부를 축적했을 뿐만 아니라 그 성과를 문화적 매력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사회의 밑바탕에는 특정 가치가 절대적으로 지배하지 않는 상대적 개방성과 다양성이 자리하고 있다. 경제 지표를 넘어 한국이 앞으로 어떤 사회로 진화할 것인지를 고민할 때 다양성의 성격과 한계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물질적 풍요가 소프트파워로 확장되고, 그 소프트파워를 가능하게 한 내부의 유연성이 무엇인지 되짚어보는 것, 이것이 한국 경제의 미래를 고민할 때 함께 던져야 할 질문이다.

서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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