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년전 물탱크에서… ‘백제인들 로컬 푸드’ 쏟아졌다
개암·복숭아·포도·자두씨·콩·팥
볍씨 도정, 대마 기름 짜낸 흔적도

“채반을 물에 넣고 살살 흔들었다가 휙 건져보세요. 모래 사이에서 반짝이는 게 보일 겁니다.”
지난 8일 충북 충주시 장미산성 발굴 현장. 1600년 전 백제 한성기 최대 규모의 목조 집수지(集水池)가 확인된 곳이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고무 앞치마와 고무 장화로 무장하고 물이 가득 담긴 대야 앞에 앉았다. 우리나라 집수지 발굴 조사 최초로 시도한 ‘물체질’ 작업에 직접 뛰어들기 위해서다.
평균 나이 74세 어르신 10명이 두 팀으로 나눠 흙을 물에 씻어내고 있었다. 가로 6.7m, 깊이 1.8m 규모의 정사각형 집수지 바닥에서 퍼 올린 흙이다. 최관호 국립중원문화유산연구소 특별연구원은 “15㎏짜리 마대로 무려 6000자루가 나왔다”며 “이 중 4분의 1 정도 작업이 진행됐다”고 했다.

서툰 솜씨로 물속에서 채반을 살살 흔들다 꺼내자, 반짝이는 갈색 껍질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다!” 이곳에서 가장 흔하게 나온다는 개암(헤이즐넛)이었다. 귀한 유물을 놓칠세라 핀셋으로 조심스럽게 건져 올렸더니 베테랑 ‘선배’ 이정승(68)씨가 “이런 속도로 하면 오늘 집에 못 간다”고 재촉했다. 이날 기자가 건져 올린 것만 복숭아씨, 포도씨, 자두씨, 박씨 등 10여 종에 달했다. 이씨는 “토기 조각, 곡물·과일 씨앗이 흔히 나오고, 아주 작은 생선 뼈를 처음 발견했을 때가 제일 기뻤다”며 “내 손으로 1600년 전 유물을 건져 올린다는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물탱크서 쏟아져 나온 ‘백제 로컬 푸드’
국가유산청 국립중원문화유산연구소는 2022년 하반기부터 충주 장미산성 발굴 조사를 진행 중이다. 집수지는 물이 모이는 계곡부에서 물을 저장하고 흐름을 조절하는 시설로 당시 백제의 체계적인 수자원 관리 체계를 보여준다. 최대 저수 용량은 약 8만3000ℓ. 이보람 연구소 학예연구사는 “300명이 약 75일간 마실 수 있는 양”이라고 했다. 지하수와 진흙 속에서 공기가 완전히 차단된 덕분에 목재와 식물 씨앗, 동물 뼈 등 유기물 자료가 썩지 않고 1600년간 잘 남아 있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식물 유체만 50여 종에 이른다. 벼·조·콩·팥 등 곡물은 물론 복숭아·밤·산사 열매·머루 같은 과실류, 우엉·도꼬마리 등 재배·채집 식물이 쏟아져 나왔다. 소·말·돼지·개·자라·꿩 등 다양한 동물 뼈도 확인됐다. 국내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실물 자료로 판단되는 삼태기, 소 코뚜레, 자루가 온전히 남아 있는 철제 도끼 등 5세기 생활 유물도 쏟아져 나왔다. 이보람 연구사는 “1600년 전 백제 산성 안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보여주는 실물 자료로서 의미가 크다”며 “소 뼈의 해체 흔적을 통해 가축의 이용과 육류 소비 양상도 알 수 있다”고 했다.



◇볍씨 가공하고, 대마 기름 짜내고
1차 선별 작업이 끝난 미세 씨앗들은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고환경 연구팀으로 보내져 현미경 정밀 분석을 거친다. 16일 경주 월성에서 만난 안소현 연구소 특별연구원은 “단일 유적에서 이처럼 다양한 종자와 열매가 확인된 사례는 국내 최초”라며 “약재로 쓰였을 산사, 우엉 씨앗이 나온 것도 드문 경우”라고 설명했다. 산사는 산사나무 열매로 특히 고기 먹고 체했을 때 탁월한 효과를 냈다고 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볍씨와 삼(대마) 씨앗. 도정한 볍씨가 3000개 확인됐고, 삼 씨앗 200여 개는 모두 파편 형태로 발견됐다. 삼 씨앗은 요즘도 이른바 ‘슈퍼 푸드’로 불린다. 안 연구원은 “밖에서 수확한 벼를 산성 안에서 껍질을 까서 가공해 먹었음을 뜻한다”며 “껍질이 깨진 채 파편으로 발견된 삼 씨앗은 요즘 홈쇼핑에서 많이 판매하는 대마종자유처럼 압착해 기름을 짜낸 흔적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산성이 단순한 군사 방어선이 아니라 내부에서 곡물을 가공하고 기름을 짜내는 체계적인 생활 공간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반도의 중원 땅을 지배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수준 높은 생활 문화를 갖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는 것. 이보람 연구사는 “장미산성에서 나온 식재료를 바탕으로 내년쯤 ‘백제 로컬 푸드 레시피 공모전’을 열 계획”이라고 했다.

◇물길 흐르는 전략적 요충지
1600년 전 백제는 왜 지방인 충주에 대규모 산성을 쌓았을까.
충주는 한성(서울)으로 향하는 육로와 영남으로 연결되는 물길이 교차하는 천혜의 교통 요충지다. 5세기를 전후해 동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한 백제와 남진한 고구려, 북진한 신라의 국가 전략이 한데 교차하며 삼국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인 현장이기도 하다. 삼국의 경쟁과 재편을 거치며 충주는 통일신라 때 ‘중원(中原)’이라 불리게 됐다.
백제는 일찍부터 이러한 지리적 가치에 주목했다. 국립중원문화유산연구소는 “물길, 고갯길, 철 생산 기반을 함께 갖춘 충주는 한강 유역과 영남을 잇고,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관리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고 했다.

특히 남한강과 충주 분지가 함께 내려다보이는 장미산(해발 337.5m)은 산성을 쌓기에 더없이 좋은 입지였다. 발굴 조사 결과, 현재의 석축성벽 아래에서 백제 한성기에 쌓은 판축성벽과 백제 한성기 중앙 양식의 토기가 다량 확인됐다. 판축은 흙을 틀 안에 넣고 단단하게 다져 쌓아 올리는 기법이다. 연구소는 “풍납토성 같은 백제 왕성을 대표하는 축성 기술을 적용한 것으로, 당시 지방 산성에서는 흔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노명구 국립중원문화유산연구소장은 “장미산성은 단순한 방어 시설을 넘어, 백제가 중앙의 기술과 인적·물적 자원을 적극 투입해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운영한 중원 지역의 핵심 거점이었던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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