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웅·안성훈·김용빈 그 다음은? “남자들이여, 칼을 뽑아라”… 무명도, 눈물도, 실패도 베어낸다

최보윤 기자 2026. 9. 24.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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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연말, ‘미스터트롯4’가 온다
/TV조선, 그래픽=이철원

지난 2020년 TV조선 ‘미스터트롯’ 결승 ‘인생곡’ 미션에서 임영웅이 고른 노래는 ‘배신자’. 다섯 살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생전 어머니에게 불러주던 노래였다. 진(眞)으로 호명된 날, 그는 결승 생방송 당일이 아버지의 기일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목이 멘 채, 엄마를 혼자 두고 간 아버지가 미안한 마음으로 건넨 선물이라 여기겠다고 했다. 경기도 포천의 작은 동네에서 어머니와 할머니 손에 자란 청년이, 전 국민 앞에서 아버지의 노래로 아버지를 불러낸 순간이었다.

그 밤, 누구의 가슴에나 칼이 하나씩 꽂혀 있었다. 선(善)에 오른 영탁은 기약 없던 무명 시절 자신을 붙들어준 노래 ‘내 삶의 이유 있음은’을 불렀고, 미(美)로 최종 낙점된 이찬원은 아버지가 손수 골라준 ‘18세 순이’로 꺾기의 진수를 보였다. 막내 정동원은 하늘에 있는 할아버지에게 ‘누가 울어’를 띄워 보냈다.

오래된 상처가 있는 사람의 노래는 때때로 완벽한 음정보다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기회를 잃었던 사람이 다시 기회를 잡기 위해 내딛는 한 걸음은, 어떤 화려한 퍼포먼스보다 강했다. 사내들은 가슴속 칼을 뽑아 노래로 내보였고, 시청자는 그 상처에서 자기 얼굴을 보았다. 트로트가 ‘어른들의 음악’이라는 좁은 칼집에서 빠져나와 온 국민의 노래가 된 순간이었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TV조선 ‘미스터트롯’이 올 연말 네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다. ‘미스터트롯4’가 앞세운 문구는 이렇다. “남자들이여, 칼을 뽑아라”. 트로트 경연 무대에서 칼끝이 향하는 곳은 언제나 상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무너지고 싶은 마음, 멈추고 싶은 마음을 견디며 끝내 노래해야 할 목소리를 지켜낸 칼이다. 더 강하고, 냉정하게 자신과의 싸움을 예고한 것이다.

미스터트롯4 포스터/TV조선

‘미스터트롯1’의 사내들이 빼든 칼은 시즌을 거듭하며 담금질을 했다. ‘미스터트롯2’의 진(眞) 안성훈은 재도전의 신화를 썼다. 벼리고 벼린 칼 끝처럼 천장을 뚫어버릴 것 같은 그의 열창은 평소의 온화한 미소와 대비되며 왕관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현재 TV조선 스핀오프 예능 ‘미스트롯 포유’ 등의 MC를 맡아 후배 트로트 여제들의 무대를 지켜주는 등 각종 프로그램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선(善) 박지현은 채널의 경계를 넘나들며 종횡무진했다. 모델 같은 체형에 구수한 넉살은 트로트에 관심 없는 이들도 TV 앞과 콘서트 무대로 끌어모았다. 트로트가 세대를 잇는 다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경연이 끝난 뒤에도 계속 성장하는 인물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미스터트롯3’의 진(眞) 김용빈에게는 유독 많은 눈물이 따라붙었다. 트로트 신동 출신에 곱상한 얼굴로도 화제가 됐지만, 그 얼굴 뒤에는 스무 해 넘게 버텨온 목소리가 있었다. 그를 키워준 삶의 버팀목이었던 할머니는 경연에 참가하기 몇 달 전 세상을 떠났다. 위독하다는 연락에 기차를 타고 달려간 손자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가쁜 숨을 붙들고 있던 할머니는 비로소 눈을 감았다고 한다. 그 빈자리를 안고 부른 노래였기에, 김용빈의 꺾기 한 마디 한 마디는 유난히 깊게 베어 들었다. 미스터트롯 시리즈 스타들의 노래에 유난히 마음이 흔들렸던 것은 어쩌면 그 안에 ‘잘된 사람의 이야기’보다 ‘다시 일어나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경연이 혹독할수록, 더 뜨겁게 뭉친다. 경쟁자로 만나 한 식구가 된 미스터트롯 스타들은 후속 스핀오프 예능에서 또 하나의 서사를 써 내려갔다. 등을 맞댄 채 서로를 지키기 위해 칼을 뽑듯, 마치 피를 나눈 형제 같은 우애를 선사했다. ‘미스터트롯1’이 바로 그랬다. 맏형 장민호가 판을 깔면 막내 정동원이 ‘삼촌들’ 사이를 뛰어다녔고, 서로의 소리를 들어가며 화음을 얹었다. 때로는 냉철한 조언과 따스한 상담으로 서로의 길을 밝혀갔다. 승자와 패자로 갈리던 여느 오디션과는 전혀 다른 온기를 남겼다.

그 온기가 깨운 것은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중장년의 열정이다. 임영웅의 팬클럽 ‘영웅시대’가 프로축구 경기장 관중석을 메우고 파도타기를 벌인 장면은, 이 팬덤이 한 장르를 넘어 한국 대중문화의 지형 자체를 바꾸었다는 상징이 됐다. 대중이 새롭게 발견한 것은 ‘트로트의 힘’만이 아니었다. 누구든지 한 사람의 꿈을 자신의 꿈처럼 응원할 열정이 숨 쉬고 있다는 것을, 가슴 깊은 곳에서 꺼내주었다는 데 있다.

이제 새로운 사내들이 무대 앞에 선다. ‘미스터트롯4’에 도전하는 사내들이 칼을 빼 든 건, 오랫동안 자신을 묶어온 시간을 끊어내기 위해서일 수 있다. 실패했던 기억과, 스스로에게 던졌던 의심과, 이제는 늦었다고 체념했던 마음을 베어내기 위해서일 수 있다. 제작진은 “범람하는 트로트 오디션 속에서 왜 참가자들이 돌고 돌아 미스터트롯에 재도전하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는 시즌이 될 것”이라며 미스터트롯만의 정통성과 남다른 클래스를 강조했다. 또 “한마디로 미스터트롯4는 비현역에게는 통곡의 벽, 현역들의 무덤”이 될 것이라며 한층 독해질 경연을 예고했다. 그리고 이 겨울밤, 우리는 또 한 번 누군가의 노래를 들으며 웃고, 또 울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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