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수, “‘배트’ 대신 ‘마이크’… 짧았던 태극마크의 恨 풀겠습니다"

최보윤 기자 2026. 9. 24.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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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야구 선수 추신수 인터뷰… TV조선서 해설위원 도전
TV조선 아시안게임 야구 해설위원으로 변신한 추신수는 “멀리서나마 대표팀에 뭔가 기운을 좀 주고 싶다”고 밝혔다. /박성원 기자

“저는 뭐 이제 야구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다 보니….”

은퇴한 뒤에도 왜 야구 곁을 떠나지 않느냐고 묻자 추신수(44)는 싱겁다 싶을 만큼 담백하게 답했다. 아홉 살쯤 처음 방망이를 잡아 34년을 그라운드에서 보낸 그는 인터뷰 중 “아는 건 야구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각종 기록을 갈아치운 ‘레전드’ 추신수(SSG 랜더스 구단주 보좌역 겸 육성총괄)가 지난 19일 개막한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TV조선 야구 해설위원으로 데뷔했다. 그에겐 한 번도 끝난 적 없는 야구 인생의 새로운 장이 시작되고 있다.

◇ “야구가 아름다웠다”… 루키 첫날, 30분 만에 무너진 자부심

부산고 시절 ‘초고교급 대형 투수’이자 4번 타자도 겸한 에이스 추신수는 국내 프로 구단은 물론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았다. 2001년 시애틀 매리너스와 입단 계약으로 미국 무대에 진출한 그가 “인생이 바뀐 순간”으로 꼽은 건 화려한 데뷔전이 아니라 미국 도착 직후의 어느 훈련장이었다.

―고교 때 인터뷰를 보니 일찌감치 ‘메이저리그 진출’을 희망했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겠다.

“난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내가 야구를 세상에서 제일 잘하는 줄 알았다.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늘 그런 자부심이 있었다. 미국 리그 중 가장 낮은 단계인 루키로 시작했다. 그들 훈련을 보는데, 30분 만에 내 전부가 무너져버렸다.”

―실력 차이 때문이었나.

“잘해서가 아니다.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다. 느린 타구는 굳이 글러브 안 쓰고 맨손으로 잡아 던지고, 글러브 토스(공을 빼낼 시간이 없을 경우 손목 스냅으로 글러브 속 공을 전달하거나, 글러브 채로 던지는 것)도 하고…. 우리는 감독·코치님한테 혼나지 않고, 싫은 소리 안 듣는 게 중요했다. 여기에선 실수를 해도 감독이 잘했다고 격려해 줬다.”

―당황했겠다.

“너무 아름다웠다. 게다가 자고 일어나면 괴물 같은 선수가 또 들어오는 거다. 그때 이후로 내가 야구를 잘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루키가 이 정도면 메이저리그는 대체 어떤 사람들이 모인 걸까 정말 궁금했다.”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TV조선 야구 해설위원을 맡은 추신수(가운데)가 정용검 캐스터(왼쪽)와 송재우 해설위원(오른쪽)과 지난 21일 대만전 중계에 나선 모습 /TV조선

◇ “물이 필요해서 길을 만든 것”

2005년부터 미 MLB에서 활약한 추신수에겐 ‘개척자’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는다. ‘명예의 전당(HOF)’에 들어갈 수 있는 후보에 오른 것도, 득표까지 한 것도 그가 처음이다. 올 초 그에게 한 표를 선사한 텍사스 레인저스 담당 제프 윌슨 기자는 현지 매체에 “한국 선수 가운데 가장 뛰어난 커리어를 쌓은 선수”라면서 “언젠가 한국 선수가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날, 추신수는 개척자(trailblazer)로 언급될 것”이라고 했다.

―남들이 가지 못한 길을 닦았다는 평가다.

“좋아하는 걸(야구)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물이 필요해서 길을 만든 거지, 길을 만들어 물을 찾은 게 아니다.”

―목표 지향적일 줄 알았다.

“성격상 평범한 걸 좀 안 좋아하는 건 있다. 2등을 할 바엔 꼴등이 낫다는 쪽이었다.”

― ‘스스로를 믿는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

“자신감은 연봉, 커리어 이런 데서 오는 게 아니다. 한 타석, 한 경기를 위해 내가 몇 시에 출근했고 뭘 준비했는지, 그 과정이 조금씩 쌓여 생겨나는 것이다. 잘하려고 내가 쓴 시간이 있는데 긴장하고 두려울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나는 유니폼 입고 운동장에 나가면, 결과야 미래의 일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너무 당당했다.”

그는 현역 20여 년 내내 스프링캠프와 경기 날이면 새벽 네다섯 시에 가장 먼저 야구장에 나왔다. 랜더스에서도 ‘출근 1등’은 늘 그였다.

―추신수 하면 새벽 4시 반 출근 같은 루틴(같은 행동 규칙)을 빼놓을 수 없다.

“잘하는 선수, 모범적인 선수를 지켜보면서 따라 해봤다. 맞지 않으면 버리고 또 다른 걸 해보고…. 루틴이란 건 말 그대로 어떤 일이 있어도 해야 하는 것이다. 잘될 때는 그 흐름을 더 오래 끌고 가는 에너지가 되고, 안 될 때는 그 (슬럼프) 구간에서 최대한 빨리 올라오는 힘이 된다.”

― ‘오늘 하루쯤은’ 하는 마음이 들지 않던가.

“왜 없겠는가. 그럴 때 딱 한 가지 생각하면 된다. 지금 여기서 놓아버리면 15년, 20년 해온 게 다 백지가 된다고. 그러면 바로 일어나게 돼 있다. 진짜 바로.”

'추추트레인'(추신수 별명)은 멈추지 않는다. 레전드 메이저리거 추신수가 TV조선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해설위원으로 본격 '등판'했다. 큰 사진은 추신수가 지난 2024년 7월 24일 KT 위즈와 SSG 랜더스의 경기에서 안타를 날리는 장면. 이날 추신수는 42세 11일의 나이로 역대 최고령 타자 출전, 안타, 타점 신기록을 동시에 달성했다. /SSG·TV조선
그래픽=김성규

◇ 추신수식 ‘6툴(tool)’… “그들이 10개 할 때 나는 1000개”

―지난해 미 MLB.com과 인터뷰에서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에서 스카우트될 정도면 어느 정도 재능은 있었을 것이다. 현지 선수들에 비해 체구도 크지 않고, 타고난 힘이나 탄력 같은 데서 불리했다는 얘기다. 방법이 있겠나. 그들이 10개 (연습) 할 때 나는 1000개 했다. 그래서 항상 일찍 나갔다. 이기려면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추신수는 바꿀 수 없는 변수(키·골격·탄력 등)를 지우고 남은 변수(반복 횟수)에 전부를 걸었다. 스포츠사에서 이 등식을 집요하게 완성한 이를 꼽자면 단연 일본 출신 MLB 스타 스즈키 이치로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20년 넘게 같은 시간에 같은 스트레칭을 했고, 하루의 준비 과정을 1분 단위로 통제했다. 전설적인 미국 농구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1978~2020)의 새벽 4시 훈련 역시 유명하다.

―재능만으로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알았나.

“2008년까지 마이너리그 7년 생활(2005년 메이저 승급 뒤 다시 마이너행)로 터득했다. 충분히 메이저리그에 갈 재능인데도 80% 넘게 못 올라갔다. 대체 왜일까. 야구에는 ‘5툴(tool)’이라는 게 있다. 잘 치고(타격), 멀리 치고(파워), 잘 잡고(수비), 잘 뛰고(주루), 잘 던지고(송구). 그래서 여섯 번째 툴을 스스로 만들었다. 생각, 멘털이다. 재능을 발전시키고 유지할 멘털이 없으면 나머지 다섯 개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추신수식 ‘6툴’을 두고 그는 이렇게 강조했다. “다섯 툴은 재능이 반 이상이다. 여섯 번째(멘털)는 100% 자신의 것이다. 아무도 못 뺏어가고,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다.”

◇ 3할의 게임, 7할의 실패를 다루는 법

―타석에선 무슨 생각을 하나. 멘털 관리가 가장 중요한 때일 것 같은데.

“되도록 생각을 비워내려 했다. 정리가 안 되면 한 발 물러나서 정리하고 다시 들어가고…. 내가 그보다 더 중요하게 보는 게 있다. 실패한 그다음이다.”

―실패? ‘출루 기계’ ‘출루의 신’이라고 불렸다.

“야구는 타석에 열 번 나서 세 번만 성공해도 대단한 타자로 추앙받는다. 우리 사회에서 열 번 기회 중 세 번 성공하고 인정받는 분야가 뭐가 있을까. 실패자로 낙인찍히지 않을까? 일곱 번, 아니 ‘겨우’ 세 번의 실패만 해도, 가혹한 평가를 받거나 아예 기회가 더는 안 주어질 수도 있다. 야구는 성공보다 실패가 훨씬 많은 스포츠다. 내가 말하는 ‘멘털’은 실패했을 때, 그다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패에 익숙해지라는 말인가

“얽매이지 말라는 얘기다. 왜 실패했는지 파고드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실패에 사로잡혀 상대에 주눅 들거나, ‘옛날은 잘됐는데 왜 안 되지’ 붙잡고 있으면 현재와 미래까지 망친다. 실패를 인정하고, 털어내고, 고치고 나아가야 한다. 괴물 같은 선수가 수두룩한 메이저리그다. 머무르면, 뒤처진다.”

추신수는 보통 숫자로 평가됐다. MLB 16시즌 1652경기, 218홈런, 아시아 선수 최초 사이클링 히트 같은 그의 기록과 이를 통해 그가 이뤄낸 부(富)의 규모같은 것들이다. 정작 그가 “제일 소중했다”고 꼽은 건 화려한 숫자가 하나도 없던 시절이다.

―요즘 추신수를 이야기할 때는 ‘누적 연봉 1900억’ ‘5500평 미국 집’ 같은 숫자가 제목을 장식하곤 한다.

“사람들이 현재 나의 보이는 점만 이야기하더라도, 나는 괜찮다. 하지만 미국 생활 21년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을 꼽으라면 마이너리그에서 보낸 7년이다.

―마이너리그 시절, 불 꺼진 숙소에 들어가기 싫었다고 한 적도 있는데.

“돈 없고, 외롭고, 힘든 시절인 것은 맞다. 가족(2004년 결혼) 덕에 버틴 것도 있다. 미국행을 원하고 택하는 이들 모두가 겪을 필요는 없지만, 내게 마이너리그는 야구 외의 너무 많은 것을 알려줬다.”

―육성 총괄이라는 직책을 맡았는데.

“강팀이란 지금 뛰는 주전 선수가 잘하는 팀이 아니라, 그 선수가 빠졌을 때 공백이 커 보이지 않게 메워주는 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은 미국처럼 선수층이 두터운 게 아니라서, 그 안에서 뭔가 만들어내려고 해야되는 게 좀 많이 힘든 상황이다.”

―’한국 야구에 절실함이 부족하다’는 쓴소리도 했다.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이제 이 시대를 인정하고 그 다음을 생각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우리는 야구를 이렇게 했는데, 너희는 부족해’ 하는 건 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세대 아이들을 이해하면서, 기본에서 벗어나는 선수에겐 냉정하게, 그렇지 않은 선수에겐 사랑과 관심을 주면서 하는데… 그게 제일 어렵다. 내 마음 같지 않으니까.”

21일 열린 대만전에서 추신수(가운데)는 탁월한 경기력을 선보인 한국 대표팀에 박수를 보내는가 하면, 정용검 캐스터(왼쪽)와 송재우 해설위원과 함께 중계석에서 일어나 마치 현장 더그아웃(감독·코치 등이 앉는 자리)에 있는 것처럼 선수들을 응원하며 힘을 보탰다. /TV조선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TV조선 야구 해설위원을 맡은 추신수(가운데)가 정용검 캐스터(왼쪽)와 송재우 해설위원과 지난 21일 대만전 중계에 나선 모습 /TV조선

◇ “100명 중 3명만이라도”

추신수에게 마이너리그는 야구만 배우는 곳이 아니었다. 구단 버스에서 동료들과 경기를 복기하며 영어를 익혀나가고, 클럽하우스에서 동료들과 짓궂은 농담을 주고받고는, 경기 뒤 밥을 함께 먹으며 ‘친구’가 되는 법을 몸으로 익혔다.

2013년 텍사스 레인저스 유니폼을 입은 추신수는 2020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마이너리그가 멈추자 텍사스 산하 마이너리거 191명에게 1인당 1000달러씩 생계 지원금을 보냈다. 이듬해 한국으로 돌아와 SSG 랜더스에 입단하면서 연봉 27억원 중 10억원을 기부했고 모교 세 곳에 6억원을 냈다. 현역 마지막 해인 2024년엔 연봉을 KBO 최저인 3000만원으로 낮춘 뒤 그마저도 전액 기부하는 등 각종 후원을 자청하고 있다.

―‘추신수한테 돈이 뭐가 대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돈이 있다고 모두가 기부하는 건 아니다.

“첫째는 아무것도 없던 나한테 야구가 너무 많은 걸 줬다. 둘째는 마이너리그 시절 경험 때문이다. 선수들이 먹는 게 열악한 데 메이저리거들이 한 번씩 와서 밥을 사줬다. 금액을 떠나 자기 시간을 써서 재능 기부를 하는 선수, 아이들에게 야구 용품을 지원하는 선수도 많았다.”

―받는 사람 반응은 어땠는가.

“좋아해 준다면 고마운 일이지만, 무슨 반응을 기대하고 하는 일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나를 위해 기부하는 것이다. 기분 좋으니까. 그렇게 배웠고, 기부할 여력이 생겨서 다행이니까. 다만 딱 하나 바라는 게 있다. 100명 중 두세 명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해서, 그 선수들이 잘됐을 때 베풀어 주는 것. 그 세 명이 나중에 여섯 명이 되고, 아홉 명이 되고…. 그 이유 말고 다른 뜻은 없다.”

◇ 짧았던 태극 마크 시절, 마이크로 함께 뛴다

그는 해설위원 제의를 여러 차례 거절했다고 했다. 그런 그를 결국 중계석에 앉힌 건 짧게 달았던 태극 마크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고교 시절 청소년 대표, 2009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그 뒤로 그의 대표팀 이력은 이어지지 못했다. 2013년 WBC 불참을 두고는 여러 사정이 있었음에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가 적지 않다. KBO 자료에는 2013년과 2017년 두 차례 WBC를 앞두고 추신수를 차출했지만 ‘구단의 만류·반대’ 등으로 불발됐다고 명시돼 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 번의 거절이 있었고, 그다음엔 부상으로 못 나갔고, 그 이후로는 아예 차출이 안 됐다. 사연을 몇 번 말씀드리긴 했지만, 안 좋게 보신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대표팀 커리어가 일찍 끝난 게 나한테는 많이 아쉽다. 그래서 대표팀에 나가는 선수들에게 뭔가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같이하고 싶다는 마음이 제일 컸다.”

―타석에 서고 싶지 않은가.

“이제는 못 들어간다. 실력이 안 된다. 서로 다른 소속 선수들이 하나가 돼서, 같은 유니폼을 입는다는 건 정말 귀한 경험이다. ‘우리’ ‘같이’ 이런 말을 되게 좋아한다.”

―시청자의 기대치가 높을 텐데.

“옆의 두 분(정용검 캐스터·송재우 해설위원)이 워낙 전문가시고 경험이 많으셔서 사실 편하다. 일반 시청자들이 생각지 못한 부분, 선수 입장에서 보이는 걸 이야기하려 한다.”

―선수로서 이룰 건 다 이뤘다는 평가다.

“은퇴하고 1년 정도는 쉬고 싶었다. 팬 입장에서 메이저리그 30개 구장을 다 가보는 게 꿈이었다. 구장마다 유명한 음식이 있다. 어디는 핫도그, 어디는 햄버거, 필라델피아는 필리 치즈스테이크…. 언젠가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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