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달항아리에 담긴 마음

이은희 과학저술가 2026. 9. 23.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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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 전, 달 관련 연구를 하는 분께 귀한 선물을 받았다. 달의 토양 성분을 분석해 이를 복제한 인공 월면토와 그 월면토를 이용해 빚어낸 달항아리였다. 얼핏 보기에는 손가락만 한 유리병에 든 회색 돌가루와 아기 주먹만 한 작고 둥근 도기(陶器)일 뿐이지만, 어쩐지 저 하늘의 달과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달은 인류가 고차원적인 의식을 가진 존재가 되면서 가장 처음으로 인식했던 대상일 것이다.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는 태양신과 짝을 이루는 달의 신을 기리고 숭배하며, 달의 차고 이지러짐을 이용해 만든 달력이 등장한다. 태양은 그 빛이 너무 강해 맨눈으로 응시할 수 없는 데다가 변화(일출과 일몰 시간 및 남중 고도)의 정도가 적은 데 반해, 달은 뜨고 지는 시간의 변화 폭이 클 뿐 아니라 매일매일 차오르고 이지러지는 변화가 매우 뚜렷하기에 시간의 흐름과 주기적인 변화를 직관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휘영청 뜬 보름달의 밝기는 약 -12등급으로, 가장 밝은 별인 1등급 별에 비해서 1만2000배나 밝아 어두운 밤에도 사물의 형태를 구분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정도이면서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고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 만큼 지나치게 밝지 않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보이는 달빛은 긴긴밤을 어둠 속에서 지새워야 했던 인류의 상상력에 불을 지폈다. 달은 신들의 공간이자, 절세미인 월궁항아의 피난처이자, 절구질을 하는 토끼들이 사는 공간이며, 계수나무가 자라고 블루치즈로 이루어졌다고 상상하곤 했다. 이 상상의 베일은 갈릴레이가 손수 만든 망원경을 통해 메마른 회색 암석을 본 순간 처음 벗겨진 이후,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첫발을 디디고 그곳의 돌과 흙을 병에 담아 가져오며 완전히 사라졌다.

인류가 달에서 직접 채취해 지구로 가져온 월석과 월면토의 양은 380㎏을 조금 넘는다. 이것들은 달의 과거와 현재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였다. 태고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는 월석은 과거에 달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려주는 증거이며, 유기물이 거의 없고, 규소를 비롯해 알루미늄, 철, 칼슘, 망간, 티타늄 등 금속 원소가 산소와 결합된 산화물의 형태로 구성된 월면토는 달의 현재를 알려주는 지표였다.

최근엔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되어간다. 월석은 미래 에너지원으로 각광받는 헬륨-3뿐 아니라 다양한 희토류들을 품고 있어 기대가 크다. 월면토는 장차 우주로 나아가려는 지구인들이 우주 생활을 경험하는 시험장의 바탕이 되고 있다. 그래서 몇년 전부터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은 월면토 성분을 분석하여 이를 바탕으로 제조한 인공 월면토를 개발했다. 이를 이용해 건축용 자재, 산소 저장고(월면토의 40~45%는 산소로 이루어져 있다), 농업용 토양 등 다양한 응용법을 연구하고 있다. 월면토를 반죽해 구워서 만드는 월면토 벽돌은 초기 달 건축물의 주요 자재가 될 수 있다. 유기물을 생성하는 미생물들과 질소를 고정하는 질소고정세균, 토양을 유지하는 균류를 월면토에 섞어 만든 ‘월면 배양토’를 이용해 병아리콩 재배에 성공했는데, 이는 달에서 농사짓기, 나아가 식량 수급이 가능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지구 모래시계(왼쪽)는 연속적으로 떨어지지만, 달 모래시계는 불연속적이다.


지난주 해외의 한 과학관을 방문했다가 진짜 달에서 가져온 월면토, 정확히는 달 모래와 마주했다. 달 모래는 모래시계에 담겨 지구의 모래시계와 나란히 놓여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지구 모래와 달 모래는 입자의 크기 차이는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구 모래는 연속적으로 떨어지는 데 반해, 달 모래는 뒤집히거나 흔드는 등 물리적 충격을 주었을 때만 잠깐 떨어지고 다시 멈추곤 한다는 것이었다. 지구 모래는 오랜 세월 비바람에 시달리며 모서리가 모두 닳아 매끄러우나, 깨어졌을 뿐 풍화작용을 겪지 않은 달의 모래는 여전히 날 선 모서리를 가졌기에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인류의 탄생 이후 지구에서는 끊기지 않고 이어왔던 문명의 시간이, 이제 멈춰 있던 달에서도 이어질 것인지가 기대된다. 올 한가위에는 보름달을 바라보며 지구에서 시작한 인류가 달까지 이어지는 미래를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이은희 과학저술가

이은희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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