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폭발했던 후쿠시마에 농사·에너지로 희망 만드는 사람들 있어요”

최원형 기자 2026. 9. 23.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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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원전)가 폭발한 뒤 주변에 많았던 농지들은 모두 황무지로 버려졌다. 원전 사고 때문에 전력도 기름도 공급되지 않아 기계를 가동할 수조차 없던 상황에선 '에너지를 자급할 수 없으면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지난 16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만난 오바라 히로야스(62) 감독은 "후쿠시마는 원전 사고의 최대 피해 지역인데, 그곳에서 농작물과 에너지를 직접 생산하며 희망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바라 감독은 "실제로는 언제든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체제를 유지하고 싶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솔직한 심정"이라며 "전력에 관해서라면, 재생 에너지만으로도 일본은 이미 충분히 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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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다큐 ‘햇볕의 농부들’ 오바라 히로야스 감독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망원정X’에서 ‘햇볕의 농부들’ 상영회가 끝난 뒤 오바라 히로야스 감독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인리히뵐재단 동아시아사무소 제공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원전)가 폭발한 뒤 주변에 많았던 농지들은 모두 황무지로 버려졌다. 방사성 물질이 확산돼 농작물을 더 이상 생산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북서쪽으로 70㎞가량 떨어진 니혼마쓰도 그랬다. 유기농업을 하던 콘도 케이는 어쩔 수 없이 농사를 접고 농협 직원으로 일하며 수확한 쌀을 모두 직접 폐기 처분하는 아픔을 겪었다. 원전 사고 때문에 전력도 기름도 공급되지 않아 기계를 가동할 수조차 없던 상황에선 ‘에너지를 자급할 수 없으면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그는 2019년 ‘영농형 태양광’(일본어로는 ‘솔라셰어링’) 사업을 시작했다. 황무지가 된 농지에 태양광 발전 패널을 설치하고, 그 아래에서 다시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이다. 농작물과 에너지를 직접 생산하는 것은, 자신의 삶터를 폐허로 만든 도쿄전력과 원전에 “되갚아주는” 일이기도 했다. ‘햇볕의 농부들: 후쿠시마와 희망’(2025)은 이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독일 하인리히뵐재단 동아시아사무소는 최근 국내에서 이 영화의 상영회 및 ‘감독과의 대화’ 행사를 열었다.

지난 16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만난 오바라 히로야스(62) 감독은 “후쿠시마는 원전 사고의 최대 피해 지역인데, 그곳에서 농작물과 에너지를 직접 생산하며 희망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콘도가 시작한 영농형 태양광이 어떻게 뜻을 함께할 사람들을 불러 모았는지, 그들이 어떤 시도를 하며 희망을 찾고 있는지 보여준다. 태양광 패널 아래 포도를 심어 수확하고, 소를 데려와 풀을 먹여 키워보고, 지역 사회와 소통하며 농업 부흥과 에너지 자립의 뜻을 확대해가는 모습이다. 이들에게 영향을 받은 오바라 감독 자신도 고구마로 시작해 지금은 무화과를 영농형 태양광으로 재배하고 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햇볕의 농부들’ 국내 상영회 포스터. 이 영화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뒤 버려진 농지에서 농작물과 발전을 함께하는 영농형 태양광 실험을 하는 농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인리히뵐재단 동아시아사무소 제공

원전 사고 뒤 후쿠시마에선 많은 농지들이 버려졌고, 이들 중 상당수는 태양광 발전에 동원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올해 초 한 일본 언론은 원전 주변에 도쿄돔 100개에 해당하는 면적의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대규모 태양광 발전은 농지를 영영 훼손할 뿐 아니라 지역 사회의 필요와도 무관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농업이 주된 목적이고 발전은 그 도구로 활용하는 영농형 태양광은 그 뜻과 방법 모두에서 이와 확연히 구분된다. 콘도 등은 농업 부활을 꿈꾸지만, 농사만으론 생계 유지가 어렵기 때문에 지금은 발전 수익에 주로 기대고 있다. 현재 도전하는 여러 시도들이 결실을 맺어, 하루빨리 농업 수익이 발전 수익을 넘어서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바람이라고도 했다.

오바라 감독은 “에너지는 그 지역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태양광으로 발전을 한데도, 지역 주민과 무관하게 대도시에 공급할 목적으로 대규모로 전기를 생산하는 것은 애초 원전의 방식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발전은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도구는 사용하기 나름이죠. 지역 주민들의 이해를 얻지 못하고 산비탈을 깎아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여 반대에 부닥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지역 주민들이 자신들의 발전소라고 이해하고, 자신들의 발전소를 소중히 여기고자 하는 마음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전이 만든 근본적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선, 단지 발전 방식만 원자력에서 재생 에너지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지역 사회가 발전소를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지역을 위해 발전하고 산림·환경도 보전하면서 태양광 발전을 하는 사례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햇볕의 농부들’ 상영회가 끝난 뒤 오바라 히로야스 감독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인리히뵐재단 동아시아사무소 제공

일본은 2013년부터 일찌감치 영농형 태양광을 시작했다. 태양광 패널 아래 수확량을 기존의 80% 이상 유지하는 것을 허가 조건으로 삼았다. 그러나 발전 수익을 노리고 음지 식물만 형식적으로 재배하는 등의 편법도 있어, 내년부터는 허가 조건을 ‘차광률 30%’ 등으로 바꿀 예정이다. 태양광 패널 밀집도 자체를 규제해 재배 작물을 다양화하라는 취지다. 이에 대해 오바라 감독은 “규제가 지나치게 엄격해져 신규 진입이 줄어들 수 있다. 영농형 태양광을 적극적으로 키우지 않으려는 당국의 의도가 숨어있지 않나” 의심했다. 우리나라는 올해 12월부터 영농형 태양광 특별법이 처음 시행될 예정인데, 일본 사례를 참고해 ‘차광률 30%’ 기준을 적용하기로 한 상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라는 비극을 겪었음에도, 그간 일본 정부는 원전 의존도를 크게 줄이지 못했고 최근에는 아예 ‘원전 최대 활용’ 노선까지 제시했다. 호르무즈 해협 사태 등 에너지 안보가 점점 중요해지는 국제 정세에 대비해 정지됐던 원전을 최대한 재가동하고 새로운 원전도 짓겠다는 것이다. 오바라 감독은 “실제로는 언제든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체제를 유지하고 싶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솔직한 심정”이라며 “전력에 관해서라면, 재생 에너지만으로도 일본은 이미 충분히 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세계적으로 재생 에너지가 대세이고 일본도 언젠간 100%가 될 것인데, 그 사이 또 한번이라도 원전 사고가 나면 일본은 정말로 끝장”이라고도 비판했다.

우리나라 이재명 정부는 집권 초기 ‘재생 에너지 확대’를 강조했지만 최근 원전 활용에 점점 무게를 더 많이 싣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재생 에너지 확대 전략과 관련해서도 생태계 파괴, 농민 반발 등의 우려가 있다. 오바라 감독은 “다양한 것을 활용해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는 데 더 힘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태양광을 중심으로 하되 배터리나 풍력, 지열로 이를 보충하는 등 ‘유연성’ 개념으로 다양한 방법을 조합하면 재생 에너지 중심으로 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원전과 다르게 재생 에너지의 기본은 ‘작은 발전소를 많이 만들어 지역 사회에 전기를 공급한다’는 것이란 것도 여러번 강조했다.

지난 16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햇볕의 농부들’ 상영회가 끝난 뒤 오바라 히로야스 감독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인리히뵐재단 동아시아사무소 제공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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