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한 사람의 100걸음보다 100사람의 한 걸음”…오무타시에서 본 통합돌봄
변정임 검단노인복지관장 “시설·프로그램보다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오무타시의 힘”

"한 사람의 100걸음보다 100사람의 한 걸음."
일본 후쿠오카현 오무타시 하야메지구에서 주민들이 오랫동안 이어온 말이다. 몇몇 전문가가 앞서가는 것보다 100명의 주민이 한 걸음씩 움직이는 것이 치매가 있어도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마을을 만든다는 의미다.
지난 21일 인천 부평아트센터에서 열린 '2026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선진지견학 성과공유회'에서 이 말이 여러 차례 등장했다. 이번 성과공유회는 인천지역 사회복지시설 종사자들이 일본 오무타시에서 살펴본 지역사회 통합돌봄 현장과 연수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 마련됐다.
성과공유회는 책 《한국에 없는 마을》을 중심으로 '사람이 중심이 되는 마을, 소통과 연대로 만들어가는 새로운 돌봄의 가능성'을 살펴보는 저자 특별강연으로 시작됐다. 이어 변정임 검단노인복지관장이 오무타시 현장에서 확인한 통합돌봄 사례를 발표했으며, 연수 참가자들과 참석자들이 한국의 지역사회 돌봄이 나아갈 방향을 함께 논의했다.
이날 행사에는 스위치아카데미 수료자와 관련 기관 종사자 등 약 30명이 참석했다. 스위치아카데미는 인천지역 사회복지시설 최고관리자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교육과정이다.
《한국에 없는 마을》에서 시작된 오무타 연수
이번 연수는 인천광역시사회서비스원의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연수사업을 통해 이뤄졌다. 인천지역 사회복지시설 기관장들은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연수 주제로 정하고, 방문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한국에 없는 마을》에 소개된 오무타시에 주목했다.
이후 저자를 통해 오무타시의 치매친화 지역사회 구축을 오랫동안 이끌어온 오타니 루미코(大谷るみ子) 그룹홈 후아미리에 관리자와 연결되면서 기관 방문 일정이 구체화됐다. 오타니 그룹홈장의 세심한 안내와 협조로 의료·행정·주민공동체·재활·생활돌봄에 이르는 다양한 현장을 폭넓게 살펴볼 수 있었다.

연수에는 노인복지관과 노인일자리기관을 비롯해 장애인·가족·자활·청소년 분야 등 서로 다른 사회복지 현장을 맡고 있는 기관장 10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8월 31일부터 9월 4일까지 후쿠오카와 오무타를 방문했다.
연수팀이 방문한 곳은 오무타시립병원, 오무타시청, 오무타시청 별관 라후루, 하야메지구 공민관, 재활특화형 데이서비스 라이즈, 소규모다기능홈 리빙아엘, 고령자 종합케어센터 선프렌즈 등 7개 기관이다. 의료·행정·주민공동체·재활·생활돌봄을 아우르는 일정으로, 변정임 관장은 성과공유회에서 이들 현장에서 확인한 통합돌봄 사례를 소개했다.
병원에서 마을까지…서비스가 아니라 '삶'을 연결하다
첫 번째 현장인 오무타시립병원에서 연수팀이 확인한 것은 병원의 역할을 '치료와 퇴원'에서 끝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전문의와 간호사, 사회복지사, 임상심리사 등이 치매케어팀을 구성해 환자의 인지 상태뿐 아니라 퇴원 후 돌아갈 집과 가족관계, 경제 상황, 돌봄 환경까지 함께 살핀다. 병원 밖에서는 지역포괄지원센터와 돌봄기관으로 연결한다.
변 관장은 이를 "환자가 병원 문을 나선 뒤에도 살던 지역에서 생활이 끊기지 않도록 연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무타시청에서는 이러한 관점이 정책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치매 당사자를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자기결정권을 가진 지역주민으로 바라보는 철학을 정책과 생활권 활동에 반영한다. 치매 코디네이터를 양성하고, 치매 당사자가 자신이 겪는 어려움과 원하는 삶을 직접 이야기하는 '본인 미팅'을 통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는 것도 이러한 접근의 하나다.
이러한 변화는 단기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오무타시는 2003년부터 의료·돌봄 현장의 전문인력을 대상으로 2년 과정의 '인지증 코디네이터' 양성교육을 이어오고 있다. 시민을 대상으로 한 치매 서포터 교육에는 시민의 20% 이상이 참여했으며, 어린이에게는 그림책을 활용한 교육을 지속해 왔다.
주민과 학교, 상점, 금융기관, 경찰·소방 등이 함께하는 모의훈련도 시 전역으로 확대됐으며, 3,000명에 가까운 주민이 참여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전문인력 양성부터 시민교육, 어린이 교육, 주민 참여훈련까지 20년 넘게 축적해 온 과정이 오무타시의 치매친화적 지역문화를 만든 기반이다.
변 관장은 현장에서 들은 "정책보다 먼저 바뀌어야 했던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는 말을 소개했다. 이어 오무타시청 별관에서 들은 지역포괄지원과 중층적 지원체계에 대한 설명에서는 이러한 관점이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치매가 있어도 나는 내가 가던 찻집에 갈 권리가 있다."
지원의 목표를 문제나 위험을 없애는 데만 두지 않고 당사자가 좋아했던 장소와 사람, 관계를 가능한 한 계속 유지하도록 한다는 의미다. 변 관장은 이 대목에서 "우리가 어르신들의 안전에 급급해 그분들의 권리를 많이 침해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주민·재활·돌봄 현장에 흐르는 하나의 원칙…'FOR'에서 'WITH'로
연수팀에게 특히 인상적인 현장 가운데 하나는 하야메지구의 주민 네트워크였다.
이곳에서는 주민과 학교, 상점, 금융기관, 경찰·소방, 의료·복지기관 등이 함께 치매 당사자가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처음에는 길을 잃은 치매 당사자를 찾는 훈련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당사자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걸고 행동의 이유를 이해하는 주민교육으로 발전했다. 어린이들은 그림책을 통해 치매를 배우고 치매 당사자도 교육에 직접 참여한다.
이곳에서 연수팀이 만난 고령 주민은 말했다.
"한 사람의 100걸음보다 100사람의 한 걸음."
"마음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공동체를 만든다."
이러한 철학은 재활과 일상 돌봄에서도 이어졌다. 재활특화형 데이서비스 라이즈에서는 재활의 목표를 신체기능 향상에만 두지 않고 장보기나 꽃 사기, 다시 일을 해보는 것처럼 개인이 원하는 일상으로 확장하고 있었다. 연수팀이 방문했을 당시에는 이용자들이 자동차 매장에서 세차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변 관장은 "재활의 성과를 몸의 기능 점수만으로 보지 않았다"며 "외출하고 사람을 만나며 다시 역할을 갖는 과정에서 자신감과 관계가 회복되는 것까지 재활로 보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소규모다기능홈 리빙아엘에서는 낮 동안의 이용과 숙박, 가정방문 서비스를 한 기관에서 통합적으로 제공하고 있었다. 당사자의 상황이 달라져도 익숙한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필요한 서비스를 조정할 수 있는 구조다.
이곳에서 강조한 것은 'FOR'가 아니라 'WITH'였다. 당사자를 '위해' 전문가가 답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와 '함께' 무엇을 원하는지 묻고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이바쇼(居場所)'라는 개념도 강조됐다. 단순히 머무르는 공간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와 역할, 관계가 인정되는 자리라는 의미다.
마지막 방문지인 고령자 종합케어센터 선프렌즈에서도 같은 원칙이 이어졌다. 상태가 중해졌다는 이유만으로 익숙한 공간과 관계를 쉽게 끊지 않고 개인의 생활리듬과 선택, 할 수 있는 역할을 유지하도록 했다. 가족도 돌봄과 생활에 계속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가능하면 익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공간에서 삶의 마지막까지 함께한다는 것이 이곳이 지향하는 돌봄이었다.

한국 통합돌봄에 남은 과제…현장에서 시작하는 작은 변화
변 관장은 7개 현장을 돌아본 뒤 오무타의 힘을 새로운 시설이나 특별한 프로그램에서 찾지 않았다. 그는 이번 연수가 치매정책과 통합돌봄 사례를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참가자들이 자신의 현장과 실천방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특히 오무타시의 강점에 대해 "새로운 시설이나 프로그램이 있어서라기보다 오랜 시간 주민과 전문가의 관점을 변화시키고 당사자의 목소리를 실제 환경 개선으로 연결해온 데 있었다"고 평가했다.
연수 참가자들의 소감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이 이어졌다. 주영신 연수구가족센터장은 치매를 가족만의 부담으로 두지 않고 마을이 함께하는 오무타의 공동체 활동에 주목했고, 조영정 인천서구지역자활센터장은 정책이 현장에서 작동하려면 지자체·기관·주민의 지속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류주미 늘푸른샘 시설장은 치매 진단을 받은 아버지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도 달라졌다고 했다. 그는 "치매가 있는 아버지를 보호의 대상이 아닌 대화하고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당사자로 바라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질의응답 시간에서는 "우리도 많은 해외 선진사례를 견학했는데 왜 지역사회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가"라는 질문도 나왔다. 논의 과정에서는 해외의 제도 하나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보다 지방정부와 의료·복지기관, 주민이 함께 움직이고 당사자의 목소리가 실제 의사결정에 들어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오무타시가 보여준 것은 외형을 새로 짓는 '치매마을'이 아니다. 기존의 병원에서는 퇴원 이후의 생활을 생각하고, 행정에서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는다. 주민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말을 건네고, 어린이는 치매를 배운다. 재활기관은 다시 하고 싶은 일을 묻고, 돌봄기관은 상태가 달라져도 익숙한 관계가 끊어지지 않도록 돕는다.
각각의 작은 연결이 모여 '치매가 생겨도 살던 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지역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지난 3월 27일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돌봄통합지원법)이 시행되면서 지역사회 통합돌봄이 전국적인 제도로 출발했다. 오무타시의 경험을 그대로 옮겨올 수는 없지만, 이번 연수는 통합돌봄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바라봐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이번 연수에 참여한 10명의 사회복지시설 기관장은 출국 전부터 방문기관을 공부하고 질문을 준비했다. 귀국 후에는 현장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다시 지역의 사회복지 종사자들과 나눴다. 참가자들은 오무타시에서 하나의 '정답'을 가져왔다기보다 각자의 현장에서 무엇부터 바꿀 수 있을지 새로운 질문을 안고 돌아왔다고 했다.
서비스의 종류와 규모뿐 아니라 그 서비스가 한 사람의 일상과 관계, 역할과 자기결정을 얼마나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그 변화는 몇몇 전문가의 100걸음보다 지역을 구성하는 많은 사람의 한 걸음에서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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