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혐오’라는 괴물을 만난 여명학교 조명숙 교장께 [논설실 Pick]

이재철 기자(humming@mk.co.kr) 2026. 9. 23.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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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에 다시 우린 님비·혐오라는 불편한 현실과 마주했다.

[여명학교는 2004년 봉천동에서 개교해 2008년 한 교회의 도움으로 지금의 남산동으로 옮기게 됐다. 2010년 임차 상태에서 최초로 학력인가를 받게 됐는데 이때 서울시교육청은 교육의 안정성을 이유로 10년 이상의 장기 임대 계약을 요구했다. 남산골의 관광지에 10년간 임대를 해 준 집주인이 너무 고마웠고 우리는 행복하게 학교를 운영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21년 2월 임대 계약이 끝나는 시점을 고민해 몇 년 전부터 이전을 추진하다 서울시의 제안으로 은평구 진관동으로 이전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처음에는 섭섭했지만 이내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헤가 갈 만도 하다.이 세상에 님비는 없다! 다만 초창기에 내가 탈북 청소년을 만났을 때 독침을 찾았던 것처럼 생소하고 모르기 때문에 이해를 못하니 오해를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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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구에서 거부당한 탈북청소년 학교
7년 흘러 강서구에서 판박이 반대 직면
갈등 조정 역할 못 하는 중앙·지방정부
지난 17일 서울 강서구 여명학교 건립 주민 설명회에서 조명숙 여명학교 교장(오른쪽 둘째)이 무릎을 꿇고 호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7년 만에 다시 우린 님비·혐오라는 불편한 현실과 마주했다. 탈북청소년들이 다니는 ‘여명학교’란 이름을 통해서다. 이 학교가 임대 계약 만료로 거처를 옮기려 할 때마다 입주 반대 시위가 벌어지며 신문과 방송을 채운다. 쓰레기 소각장도, 교정시설도 아닌 정식 인가 학교가 혐오시설로 취급받는 세태가 서울 하늘 아래에서 반복되고 있다.

여명학교는 2004년 서울 관악구에서 개교해 중구 남산 자락을 거쳐 강서구로 거처를 옮겨온 대안학교다. 탈북청소년들이 이곳을 졸업하면 검정고시 없이 고등학교 졸업이 인정된다. 서울시로부터 정규 학력을 인정받은 최초의 사례. 조명숙 교장은 이곳을 “학생들에게 꿈꾸는 법을 알려주고 그 꿈을 함께 이뤄 성장하는 곳”이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당찬 이상과 달리 외부 현실은 냉랭하다. 임대 건물을 전전하던 학교는 서울시교육청의 부지 제공과 현대자동차의 통 큰 지원으로 강서구에 새 교사(校舍)를 지을 기회를 얻었다. 그런데 탈북민 학교라는 거리감 때문인지, 일부 주민들의 반발로 이전이 다시 진통을 겪고 있다.

최근 신문과 방송 뉴스를 통해 한 여성이 반대 주민들 앞에 무릎을 꿇고, 반대 주민들도 덩달아 무릎을 꿇으며 “제발 나가달라”고 호소하는 장면을 보았을 것이다. 여명학교를 둘러싼 갈등이 이토록 처절하다.

안타까운 점은 이 장면이 7년 전 은평구에서 벌어졌던 갈등과 판박이라는 점이다. 학교는 남산동 임대 만료를 앞두고 2019년 은평구 이전을 추진했지만 주민 반발로 무산됐다. “내 아이와 섞일 수 있다”, “집값 내려간다”는 우려가 그때도 쇄도했다. 학교는 청와대 신문고에도 도움을 호소했지만 갈등 조정 기능은 작동하지 않았다.

은평구 입주 무산 후 터진 코로나 사태는 역설적으로 이 곳에 연명의 기회를 제공했다. 코로나 불황으로 남산 임대 건물에 들어오려던 카페가 입주 계약을 포기하면서 여명학교의 임대 계약이 추가 연장된 것이다. 지금 강서구 염강초 폐교 터는 이 학교에 하늘이 내려준 마지막 동아줄과 같다.

그러나 강서구에서 드리워진 님비의 그늘은 2019년 은평구의 기억만큼이나 짙고 어둡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도, 박원순 서울시장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은평구 이전이 무산되고 며칠 뒤, 당시 교감이었던 조명숙 씨가 매일경제신문에 기고를 보냈다. ‘탈북청소년을 품는 넉넉한 마음’이란 제목으로 2019년 성탄절(12월 25일자) 매경 지면에서 그녀는 이렇게 적었다.

[여명학교는 2004년 봉천동에서 개교해 2008년 한 교회의 도움으로 지금의 남산동으로 옮기게 됐다. 2010년 임차 상태에서 최초로 학력인가를 받게 됐는데 이때 서울시교육청은 교육의 안정성을 이유로 10년 이상의 장기 임대 계약을 요구했다. 남산골의 관광지에 10년간 임대를 해 준 집주인이 너무 고마웠고 우리는 행복하게 학교를 운영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21년 2월 임대 계약이 끝나는 시점을 고민해 몇 년 전부터 이전을 추진하다 서울시의 제안으로 은평구 진관동으로 이전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처음에는 섭섭했지만 이내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헤가 갈 만도 하다.이 세상에 님비는 없다! 다만 초창기에 내가 탈북 청소년을 만났을 때 독침을 찾았던 것처럼 생소하고 모르기 때문에 이해를 못하니 오해를 했을 뿐이다.]

2019년 12월 25일 ‘탈북청소년을 품는 넉넉한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매일경제에 실린 조명숙 여명학교 교감(현 교장)의 기고문.
강서구 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조명숙 교장께 감히 올린다. 님비는 없다는 당신의 선의 어린 외침과 달리 그때도, 지금도 혐오와 님비의 정서가 우리 곳곳에 터를 잡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를 못하니 오해를 했을 뿐”이라는 진단은 여명학교의 애절한 소망일 뿐, 마주한 현실은 타자에 대한 경계 심리와 집값 걱정으로 점철돼 있음을 말이다.

그러니 부디 2019년 은평구에서 퇴짜를 맞았던 때보다 단단한 각오로 맞서 설득하고 응원받기를 당부드린다. 2019년의 대통령과 서울시장이 그랬듯, 2026년의 대한민국 대통령과 서울시장도 이 사안에 손을 보태기 어려울지 몰라서 미리 드리는 말씀이다. 검찰 개혁 완수와 대미 투자 등 당면한 현안에 밀려 수백 명의 청소년 미래가 걸린 사안에 관심을 두기 어려울 것이다. 더 단단하게 마음을 다지고 한 명이라도 더 설득하셔야 한다는 당부밖에 드리지 못해 송구할 따름이다.

여명은 새벽 동트기 직전 짙은 어둠을 끝내는 빛을 말한다. 그 희망의 기회를 탈북청소년에게 제공하고자 여명학교가 출범했다. 지금 이곳은 새 거처를 두고 혐오와 기피라는 짙은 어둠을 지나고 있다. 학교가 여명을 만날 것인지는 불가항력이 아닌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남산 자락에 아직까지 로고와 교명이 선명하게 남은 옛 간판 모습. <사진=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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