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 유언"... 두 배우가 재난현장 3년째 달려간 이유

양승준 2026. 9. 2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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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키운 장미들은 죄다 썩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토사를 옮긴 두 사내는 배우 조성규(65)와 이정용(57). 트럭 위에서 무거운 포대를 받아 쌓던 이정용은 재난 현장을 가면 궂은 일부터 찾는다고 했다.

두 배우가 재난 현장에서 함께 땀을 흘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진흙을 퍼내고 잿더미를 치우는 복구 현장마다 두 배우는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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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문란]
2023년 충남 논산의 물 난리, 2025년 경북 일대 산불 피해 복구 현장에 모두 있었다. 배우 조성규(왼쪽)와 이정용은 3년 동안 전국 재난 현장을 찾아가 같이 봉사했다. 고생을 같이 하며 20년 넘게 이어진 두 사람의 인연은 더 깊어졌다. 조성규에게 이정용은 친동생 같은 후배다. 재난 현장을 먼저 찾아가는 두 배우를 추석 연휴 직전 경기 과천 지역 농산물 직거래 장터 '바로마켓'에서 만났다. 정다빈 기자
<환상의 콤비④>재난 현장 봉사에 진심인 배우 조성규·이정용

곱게 키운 장미들은 죄다 썩고 있었다. 재배 장비도 모두 폐기처분해야 했다. 집중호우가 휩쓸고 간 지난 8월 경기 파주시의 한 장미 농장. 비닐하우스는 온통 물에 잠겨 쑥대밭이 돼 있었다. 진흙투성이가 된 그곳에서 두 사내가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였다. 못 쓰게 된 장미들과 밀려든 토사를 포대에 쓸어 담아 밖으로 나르고, 물을 먹어 묵직해진 포대를 트럭에 실었다. 한 사내가 포대를 들어 올리면, 다른 사내가 트럭 위에서 받아 쌓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토사를 옮긴 두 사내는 배우 조성규(65)와 이정용(57). 트럭 위에서 무거운 포대를 받아 쌓던 이정용은 재난 현장을 가면 궂은 일부터 찾는다고 했다. “가진 건 힘밖에 없으니까요. (허리 굽혀 하루 종일) 김매기 하는 것보다 낫죠 뭐, 하하하." 주위에 카메라는 없었다.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촬영이 아니었다. 두 배우는 자원봉사를 위해 이곳을 찾았다. 수해로 생계에 큰 타격을 입은 농민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마음이 아픈 게 작년에도 이 농가가 수해를 입었더라고요." 이렇게 말한 조성규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옆에 있던 이정용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수해를 입은 농민 분이 오히려 덤덤하더라고요. '(농장 복구) 어떻게 하실 거예요?'라고 물으니 '하면 어떻게 되겠죠?'라며 허탈하게 웃으시더라고요. 너무 슬프면 눈물이 안 난다잖아요."

지난 8월 경기 파주시의 한 농장에서 진행된 수해 복구 작업. 배우 이정용이 트럭에 올라 토사 등을 담은 포대를 싣고 있다. 조성규 제공

두 배우가 재난 현장에서 함께 땀을 흘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3년 전부터 물난리와 산불이 할퀴고 간 곳에 나란히 달려갔다. 2023년 여름 폭우가 덮친 충남 논산, 2025년 봄 대형 산불이 휩쓴 경북 안동에 함께 갔다. 모두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될 만큼 피해가 컸던 곳이었다.

진흙을 퍼내고 잿더미를 치우는 복구 현장마다 두 배우는 함께 있었다. 조성규는 텐트에서 잠을 자며 길게는 보름씩 현장에 머물렀고, 이정용은 짜장밥을 만들어 이재민들에게 식사도 대접했다. 봉사를 한다고 늘 따뜻한 대접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온종일 진흙을 퍼내고도 점심 한 끼 먹지 못한 날도 있었다. 좋은 뜻으로 찾아간 곳에선 "약 팔러 왔느냐"는 의심까지 받았다.

2025년 경기 가평군 대보리 마을 수해 현장. 자원봉사자들이 진흙 범벅이 된 농가를 치우고 있다. 조성규 제공
올 여름 수해를 입은 경남 통영시 산양읍의 한 농가. 자원봉사자들이 폐기물을 치우며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조성규 제공

그래도 두 배우는 멈추지 않았다. 조성규는 앞서 세상을 떠난 여동생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재난 복구 현장에 몸을 던졌다. 그가 바짓단을 걷자 종아리 곳곳에 붉은 자국이 드러났다. 수해 현장에서 폐기물을 나르다 긁힌 상처였다. 1992년 드라마 '가시나무새'로 데뷔해 30년 넘게 조·단역으로 화면에 오래 머물진 못했지만, 그는 재난 현장엔 끝까지 남았다. 그렇게 함께 한 시간을 지역은 기억했다. 그는 경북 예천군에선 표창패, 충남 청양군에선 감사패를 받았다.

이정용은 KBS '6시 내 고향' 코너 ‘오! 만보기’에서 1박 2일 동안 오만보를 걸으며 전국 농어촌을 찾아가는 '만보기맨'으로 8년간 활동했다. 그곳에서 만난 어르신들에게 받은 사랑을 갚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재주를 재난 현장에 보탰다. 출발점은 달랐지만 두 배우가 3년 동안 같은 진흙탕과 잿더미로 향한 이유였다.

"분장했을 때와 지우고 나서가 다른 배우들이 있어요. 카메라 앞에선 그렇게 예의 바르다가 촬영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달라지는 거죠. 그런데 정용이는 그런 게 없어요." 조성규에게 이정용은 카메라가 켜져 있을 때나 꺼진 뒤나 한결같은, 그래서 믿음이 가는 사람이었다.

괜히 '환상의 콤비'가 아니었다. 두 배우의 연기 인연도 진흙탕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10년 KBS 드라마 ‘전우’에서였다. 이들은 포로수용소에서 강냉이죽 한 그릇을 놓고 뒤엉켜 싸웠다. 진흙탕에서 서로를 쓰러뜨리던 두 배우가 이젠 같은 편이 돼 또 다른 진흙탕에서 무너진 누군가의 삶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그렇다고 진흙탕에서 두 사람의 ‘전투’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이 형은 일하는 데 말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형, 말 좀 그만하고 빨리 일 좀 해'라고 하죠, 하하하." 이정용이 타박하자 조성규가 받아쳤다. "힘들 때 말이 없으면 더 힘들어. 힘 안 들려고 그러는 거야."

추석 연휴 직전 두 사람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오케이 좋아 연예인 봉사단'의 봉사용 '짜장 밥차'. 배우 이정용이 동료 연예인들과 이 차를 몰고 지난해 경북 산불 피해 이재민 대피소에 가서 짜장밥을 만들었다. 조성규 제공

-지난해 경북 산불 피해 현장에서도 두 분이 같이 계셨잖아요. 어떻게 합류하게 된 거예요?

조성규=제가 먼저 안동에 내려가 봉사하고 있었어요. 수백 명의 이재민이 실내체육관에 텐트를 치고 지내고 있었고요. (이)정용이가 근처에서 '6시 내 고향'을 촬영하고 있다고 해서 '산불 현장에 있는데 와라' 했더니 촬영이 끝나자마자 오더라고요. 그랬던 정용이가 서울로 올라가 동료 배우 등 20~30명을 데리고 다시 내려왔어요. 짜장밥 수백 인분을 현장에서 만들어 이재민분들 점심도 챙겨드리고요.

이정용=현장을 보고 그냥 올라갈 수가 없었어요. KBS 사극 '명성황후' 등을 연출한 신창석 PD와 '오케이 좋아 연예인 봉사단'으로 함께 활동하며 봉사용 '짜장 밥차'를 만들어 놓은 게 있었거든요. 바로 신 PD에게 전화했죠. "여기(산불 복구 현장) 가야 한다"고요. 그 밥차를 몰고 이종원, 배도환, 현영, 방은희, 조은숙 등 동료 연예인들과 안동으로 내려간거죠.

배우 조성규가 최근 3년간 전국 재난 현장을 함께 다니며 겪은 일을 말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두 분이 재난 현장을 찾아가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조성규=제 배우 인생을 늘 걱정해 주던 여동생이 있었어요. "오빤 뭐든 할 수 있다"고 용기도 많이 줬고요. 그 동생이 암 투병 끝에 2023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눈을 감기 전에 그러더라고요. "오빠, 착하게 살아." 동생이 떠나고 나서 생각했죠. '착하게 사는 게 뭘까.' 그러다 그해 (경북) 예천 수해 기사를 봤어요. 남들처럼 5,000만 원, 1억 원씩 내놓을 형편은 안 되니 '그러면 몸으로라도 좋은 일을 해보자' 해서 예천으로 간 게 시작이었어요.

가보니까 완전히 전쟁터더라고요. 집은 무너져 있고요. 처음 이틀은 모텔에서 잤는데 하루에 8만~10만 원씩 들었어요.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사흘째부터는 텐트를 치고 거기서 자면서 봉사했죠. 예천 수해가 어느 정도 수습된 뒤에는 충남 청양에서 나흘, 강원 고성에서도 일주일 정도 복구를 도왔고요. 그러면서 알았어요. '아, 돈이 없어도 몸으로 줄 수 있는 게 이렇게 많구나.'

'6시 내 고향' 코너 '오! 만보기'를 통해 전국 농어촌을 누비며 현지 어르신을 만나고 있는 배우 이정용(왼쪽)의 모습. KBS 영상 캡처

이정용=저는 처음엔 봉사를 잘 몰랐어요. 가끔 무료급식 봉사하는 정도였죠. 그런데 '6시 내 고향'을 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제가 예상도 못 했던 사랑을 어르신들한테 정말 많이 받았거든요.

마을에 가면 "만복이 왔다, 만복이 왔다" 하세요. "내가 어젯밤에 무슨 좋은 꿈을 꿨기에 만복이를 보나. 좋은 일 있으려나" 하시면서요. 제가 '살아 움직이는 복'이 된 거잖아요? 감사하죠. 그래서 '이 고마움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경로당 봉사부터 시작했어요. 제가 뮤지컬로 데뷔했는데, 그 (노래) 재주라도 써보자는 생각에 작은 스피커 하나 들고 찾아가는 거예요. 어르신들이 바둑이나 장기 두고 계시면 "지금부터 저하고 한 번 놀아볼까요?" 하고 노래를 불러드리죠. 제가 사람들 신나게 하는 재주는 좀 있거든요(웃음).

이제는 수해 소식이 있으면 형님하고 먼저 통화해요. "올해는 비가 많이 안 와서 다행이다" 했는데, 며칠 뒤 형님한테 전화가 온 거죠.

배우 이정용이 최근 3년간 전국 재난 현장을 함께 다니며 겪은 일을 말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그렇게 다니다 보면 잊히지 않는 분도 있을 것 같아요.

이정용=나이 구십 되신 어르신 한 분이 계셨어요. 오래 살던 집이 산불로 다 타버려서 우울증에 걸리셨더라고요. 말씀도 거의 안 하고 계셨고요. 그런데 저를 보더니 웃으시는 거예요. 제가 '6시 내 고향-오! 만보기'에서 하는 시그니처 포즈가 있거든요. "어머니, 만복이 한번 보여드릴게요"하고 그 포즈를 했더니 박장대소를 하셨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죠. '아, 내가 사람들한테 이렇게 힘을 줄 수도 있구나.'

-좋은 마음으로 갔다가 씁쓸했던 적도 있었나요?

조성규=수해복구라고 하면 어렵게 사는 노부부의 집 같은 걸 생각하고 가잖아요. 그런데 막상 가보면 산 밑에 으리으리한 별장인 경우도 있어요. 집 안에 비싼 물건도 많고요. 그러면 흙을 퍼내다가도 '내가 왜 이런 집까지 와서 이걸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물론 그 집도 수해를 입었으니 복구 지원을 신청한 거겠지만요.

또 하나는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배려예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자기 돈 들여서 가는 건데 어떤 현장에선 점심도 못 먹어요. 공무원한테 물어보니 지자체 홈페이지에 '점심은 제공하지 않습니다'라고 공지돼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복구 현장 주변에는 식당도 없는 경우가 많아요. 혼자 오는 분들은 장갑이랑 장화 정도만 챙겨서 오는데, 밥 먹으려고 멀리 봉사하러 가는 건 물론 아니지만 그런 배려(점심 도시락) 정도는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왜 또 가시나요?

조성규=정말 사람 손 하나가 절실한 곳이 있으니까요. 그거죠.

2010년 방송된 KBS 드라마 '전우' 촬영장에서 조성규(오른쪽)와 이정용. 조성규 제공

-두 분 인연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때도 '진흙탕'이 있더라고요. 드라마 '전우'에서 진흙탕 격투신을 찍었잖아요. 실제 복서였던 조성규씨를 때리고 쓰러뜨려야 했으니 이정용씨도 쉽진 않았겠어요.

이정용=제가 북한 인민군 역이었는데 굉장히 강한 캐릭터였어요. 대본에는 형님이 저한테 한 방 맞고 쓰러지게 돼 있었거든요. 그런데 안 쓰러지는 거예요(웃음). 형이 복싱을 했잖아요. 맞으면 쓰러져야 하는데 자꾸 버티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NG가 났죠.

조성규=그때 정용이가 지금보다는 말랐어요. 몸은 단단해 보였지만 속으로는 '한두 방이면 보낼 수 있겠는데' 했죠(웃음). 그런데 PD가 "오늘 정용이한테 맞고 쓰러져서 드라마에서 하차하는 겁니다"라는 거예요. 맞자마자 쓰러져야 하는데 자꾸 버텼나봐요. 복싱할 때는 맞으면 버텨야 하잖아요. 그게 몸에 밴 거죠. 보다 못한 PD가 "성규 형, 맞으면 바로 떨어져야지. NG! 정용씨, 다시 한번 때려봐" 하더라고요. 죽도록 맞았죠. 그래서 속으로 그랬어요. '언젠가는 갚을 날이 있겠지.'(웃음)

이정용=죽도록은 아니고요(웃음). 그런데 형도 일방적으로 맞기만 한 건 아니에요. 연기할 때는 약속된 동작이 있잖아요. 때리는 시늉만 해야 하는데 이 형은 자기도 모르게 '진짜 주먹'이 나와요. 주먹에 무게를 완전히 실어서 들어오니까 처음에는 '저 형 왜 저래?' 했다니까요.

2002년 방송된 드라마 '야인시대' 속 이정용의 모습. SBS 영상 캡처

'환상의 콤비' 인터뷰를 위해 두 배우를 만난 곳은 경기 과천시의 '바로마켓'이었다. 전국에서 올라온 농축산물이 좌판을 채운 직거래 장터였다. "정말 좋은 곳인데 모르는 분이 많아 (추석 명절 앞두고) 이 장터를 알리고 싶다"며 이정용이 이곳에서의 인터뷰를 제안했다.

'6시 내 고향'을 통해 농어촌을 누벼온 그는 지역과 도시를 잇는 일에 관심이 많다. '바로마켓' 관계자는 "이정용씨가 돈 한 푼 받지 않고 영상을 찍어 홍보를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용은 그렇게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는 배우'였다. 조성규도 비슷했다. 30년 넘는 배우 생활에서 그의 몫은 주로 조·단역이었다. 카메라 앞에선 누군가 자신을 선택해주길 기다려야 했던 그는 재난 현장에선 자신의 손이 필요한 사람들을 먼저 찾아갔다.

2018년 방송된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복싱 편에 심판으로 출연한 조성규(왼쪽 두 번째). 그는 복싱 선수 출신 배우다. MBC 영상 캡처

두 배우의 삶엔 묘한 반전도 있다. 조성규는 애초 '링 위의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주먹 하나로 버텨 온 프로 복서였던 그는 서른을 넘겨 배우로 전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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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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