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대형 국책사업 잡아라… 지역 소멸 위기 경남 농산촌들 ‘양수발전소’ 유치전 후끈

합천/김준호 기자 2026. 9. 23. 13:1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14일 경남 합천군 봉산면 주민들이 '제42회 대야문화제'에서 오도산 양수발전소 유치 의지를 담은 현수막을 들고 양수발전소 유치 홍보 퍼포먼스를 펼쳤다. /합천군

정부의 신규 양수발전소 사업자 공모를 앞두고 지역 소멸 위기에 직면한 경남 농산촌 지자체들이 유치전에 사활을 걸고 나섰다. 1조원이 훌쩍 넘는 대형 국책 사업 유치를 통해 인구 감소를 막고 침체된 지역 경제를 되살릴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올 하반기 신규 양수발전소 사업자 공모를 진행한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응하고자 1.25GW 규모의 양수발전 물량을 반영했다.

양수발전은 전력이 남을 때 하부 댐(저수지)의 물을 상부로 끌어올렸다가 전력 수요 급증 시 낙하시켜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상부 저수지가 에너지 저장 장치(ESS)로 쓰이는 셈이다. 이에 양수발전소를 WESS(Water ESS), ‘물 배터리’라 부르기도 한다. 출력 조절이 어려운 원전과 발전량 변동성이 큰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모두를 보완할 수 있는 인프라로 평가된다.

경남에서는 합천군을 필두로 하동군, 산청군, 거창군 등 4개 군이 양수 발전소 유치에 뛰어들며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모두 인구 소멸 위기를 겪는 곳들로, 대규모 국책 사업을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 등 파급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가장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곳은 합천군이다. 합천군은 봉산면 압곡리 일원에 900MW 규모의 ‘오도산 양수 발전소’를 유치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미 묘산면 일원에서 추진 중인 900MW급 두무산 양수 발전소(사업비 2조5490억원, 2034년 준공 목표)에 이어 오도산에도 양수 발전소를 지어 국내 최초·최대 규모의 ‘1800MW급 쌍둥이 양수 발전소’를 구축하겠다는 청사진이다. 한국수력원자력과 협력 중인 합천군은 두 발전소가 인접해 지하 발전소와 기반 시설을 공동 활용함으로써 건설비와 유지 관리비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는 입지적 강점을 내세우고 있다.

김윤철 합천군수는 “오도산은 해발 1100m 이상의 고도와 급한 경사, 깊은 골이 있어 대규모 저수 용량 조성이 가능한 고낙차 지역”이라며 “호남과도 가까워 경제성과 효율성 모두 높다”고 했다. 그는 지난달 31일 기후에너지환경부를 찾아 일자리 창출과 지역 소멸 위기 극복을 위한 양수발전소 유치 의지를 전달했다.

지난 7월9일 김현수 경남 하동군수가 한국남부발전 서성재 부사장, 옥종면양수발전추진위원회 윤재희 위원장, 옥종면 주민들과 함께 옥종면 양수발전소 예정지를 방문해 유치 의지를 재확인했다. /하동군

하동군은 화력발전소 폐쇄에 따른 대체 산업으로 양수발전소를 정조준했다. 한국남부발전과 손잡고 옥종면 종화리·두양리 일원에 설비용량 700MW, 총사업비 1조5000억원 규모의 양수발전소를 짓겠다며 정부에 유치 의사를 밝혔다. 2031년까지 예정된 하동화력발전소의 단계적 폐쇄에 따른 일자리 감소와 인구 유출을 막기 위해 정부 결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동군의회는 최근 유치 촉구 건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으며, 수몰 예정지 36가구 전원의 동의를 얻어 높은 주민 수용성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김현수 하동군수는 “하동은 오랜 기간 국가 전력 수급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며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지역과 주민이 소외되지 않도록 양수발전소 유치와 LNG복합발전소 건립 등 대체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해 지역과 주민이 함께 성장하는 상생 모델을 만들어가겠다”고 했다.

산청군은 기존 인프라와 운영 노하우를 앞세운다. 산청군은 700MW급 양수발전소를 20여 년간 운영해 온 경험을 무기로 신규 발전소 유치에 나섰다. 한국남동발전과 상생 협약을 맺은 산청군은 축적된 기술력과 주민 수용성을 강점으로 평가받는다. 유명현 산청군수는 지난 7월 24일 국회를 찾아 양수발전소 건립 등 지역 핵심 사업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다.

거창군은 한국남부발전과 협력해 가북면 우혜리·용산리 일원에 600MW급, 약 1조7900억원 규모의 양수발전소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민관 유치위원회는 위원을 73명에서 97명 규모로 확대하고, 주민 동의율을 높이기 위한 활동을 본격화했다. ‘거창양수발전소 유치 및 주변 지역 자원화 지원에 관한 조례’도 제정해 시행한다. 발전소 주변 지역 주민에 대한 소득 증대 사업, 주민 복지 사업, 관광 자원화 조성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경남 외 전북 진안군에서도 한국동서발전과 손잡고 총사업비 1조7000억원 규모의 양수발전소 유치에 전력을 쏟고 있다. 진안군은 주천면민 99%, 전 군민 80% 이상의 압도적인 지지와 ‘수몰 가구 제로’에 따른 갈등 요인 부재를 최대 경쟁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지자체들이 양수 발전소 유치에 사활을 거는 것은 지역경제 전반에 미칠 파급효과 때문이다. 사업이 확정되면 1조원이 넘는 대형 국책사업이 수년간 진행된다. 공사 인력 유입과 그에 따른 상권 활성화 등이 기대된다. 50년의 운영 기간 동안 특별지원금 등 수백억 규모 지역 지원 효과도 발생한다.

지난 2023년 6월 22일 합천체육관에서 열린 두무산 양수발전소 유치 궐기대회 모습. 합천군은 두무산 양수발전소 유치에 성공한 뒤 오도산 양수발전소 유치전에도 뛰어들었다. /합천군

앞서 두무산 양수발전소를 유치한 합천군에 따르면 군은 발전소 건설 8년간 8000명에 이르는 고용 유발 효과와 1조7000억원에 달하는 생산·소득·부가가치 유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또 발전소 건설 기간 특별 지원금 200억원, 가동 60년간 기본 지원금 450억원, 사업자 지원 사업비 200억원 등 총 850억원의 지원금을 받아 지역 인재 육성, 사회복지 사업 등 주민에게 다양한 혜택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관광 자원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최근 본지 기고를 통해 “과거 양수발전소는 심야의 값싼 전기로 물을 채웠다가 전력 소비가 급증하는 낮에 전기를 만드는 조연에 머물렀지만, 재생에너지가 늘어난 지금은 ‘전력 계통의 안전 밸브’라는 주연으로 거듭났다”며 “풍요로운 햇빛과 바람을 온전히 우리의 에너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거대한 물 배터리(양수발전소)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라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