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군의관 없는 군부대 현실화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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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軍)과 취약지역 의료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고 있다. 올해 임관 예정인 군의관은 고작 304명으로 지난해 692명의 43% 수준이다.
국방부가 군의관·공보의에 대한 획기적인 개선책을 서둘러 내놓지 못하면 상황은 더욱 나빠질 수밖에 없다.
고도의 전문성을 가지고 군 의료의 발전을 위해 평생 헌신할 수 있는 진정한 '붙박이 군의관'을 확보하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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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軍)과 취약지역 의료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고 있다.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 올해 임관 예정인 군의관은 고작 304명으로 지난해 692명의 43% 수준이다. 36개월의 복무를 마치고 올해 전역하는 군의관 745명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는 규모다. 자칫 무의(無醫) 부대가 현실화할 수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매년 수백 명대였던 공중보건의(공보의)의 신규 편입 인원도 올해는 98명으로 줄어들었다. 보건지소에서 근무 중인 공보의도 2017년 2116명에서 올해 593명으로 8년 만에 72%나 감소했다. 내년에는 전국 보건지소의 86.9%(1083곳)가 공보의도 없는 속 빈 강정으로 운영된다는 뜻이다.
● 군의관·공보의 붕괴는 인재(人災)
군의관·공보의 체계의 붕괴는 의대 졸업생이 치르는 의사국가시험(의사국시)의 합격자가 크게 줄면서 생기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매년 3000명 이상 배출되던 의사국시 합격자가 작년에는 266명으로 줄었고, 올해도 818명뿐이었다. 2024년에 시작된 의정 갈등의 후유증이 완전히 해소되기까지는 이런 상황이 상당 기간 계속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엎친 데 덮친다고 군의관·공보의에 관한 의대생의 관심도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가 2024년 전국 40개 의대·의학전문대학원 재학생 2469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군의관·공보의 복무를 희망한 응답자는 29.5%에 그쳤다.
국방부가 ‘형평성’과 ‘추가 인력 수요’를 핑계로 군의관·공보의의 복무기간 조정을 외면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다. 사병의 복무기간은 18개월로 줄었는데, 군의관·공보의는 여전히 최장 3개월의 훈련 기간을 포함해서 39개월을 복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제정신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긴 복무기간의 문제를 반복적으로 지적하고, 개선책 마련을 채촉하고 있다. 그런데도 국방부와 정치권은 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
사실 군의관·공보의 체계의 붕괴는 의정 갈등 이전부터 시작된 일이다. 학업의 연속성이 중요한 의과대학에서 재학 중 입영 휴학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의대를 졸업한 후에 군의관·공보의를 통해 병역을 마치는 것이 의대의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그러나 사병의 복무기간을 단축한 2020년부터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2019년에는 112명이었던 재학 중 입영 휴학생이 작년에는 2838명으로 25배 이상 급증했다. 현재 사병으로 복무 중인 의대생은 최대 4000명에 이른다는 추정도 있다. 국방부가 군의관·공보의에 대한 획기적인 개선책을 서둘러 내놓지 못하면 상황은 더욱 나빠질 수밖에 없다.
사실 국방부의 억지는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병역법 제58조에 규정된 계열 전문직 장교 체계가 통째로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변호사 출신 공익법무관은 정원이 100명 수준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2022년 이후에는 충원율이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현역 장교인 군법무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장기 복무 충원율이 작년에 30%까지 추락했고, 단기 복무도 올해에는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수의사 출신 수의장교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새로 임관한 수의장교는 단 한 명도 없었고, 올해 공중방역수의사는 정원 150명 중 2명이 임관했다. 수의장교에게 전공과 아무 상관이 없는 급식용 육류·유제품·축산물과 급식소·조리시설의 위생 상태 점검 같은 업무가 떠맡기는 황당한 현실이 만들어낸 일이다.
추가 인력 수요에 대한 우려는 더 허술하다. 지원자가 이미 예년의 6분의 1 이하로 줄어든 상태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조사에서 복무기간을 24개월로 줄이면 공보의 복무 의향은 94.7%, 군의관 복무 의향은 92.2%까지 뛰어올랐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전문직 청년들이 거부해 버린 장기복무에 매달릴 상황이 아니다.
● 의과대학은 사관학교가 아니다
군의관·공보의는 병역법 제58조에 근거를 둔 제도다. 의사·치과의사·한의사·수의사·변호사 등의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 전문성을 살려 특수병과 장교나 대체복무직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다. 그렇다고 의대·수의대·법학전문대학원이 군 장교 양성을 위해 설립·운영되는 ‘사관학교’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의대에 입학하는 학생이 반드시 군의관·공보의 복무를 선택해야만 한다는 ‘법’도 없고, 그런 선택을 강제하는 ‘관행’도 없다. 재학 중 사병으로 입대하여 병역 의무를 마치는 것도 명백하게 법으로 보장된 합법적 선택이다. 아무도 의대생에게 일방적으로 군의관·공보의의 길을 강요할 수 없다.
최장 39개월의 긴 복무기간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보수와 처우도 형편이 없다. 이제 막 전문가의 길에 들어선 청년 의사에게는 군병원·보건지소의 열악한 근무 환경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무거운 부담이다. 군의관·공보의로 근무하는 동안의 실질적인 ‘경력단절’은 절대 가볍게 넘길 사안일 수가 없다. 자칫하면 힘든 의대와 전공의 수련에 쏟아부은 노력을 망쳐버릴 수도 있는 심각한 일이다.
사명감은 남에게 함부로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섣불리 사명감을 들먹이기 전에 “누구든지 병역 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한 헌법 제39조 제2항을 주목해야 한다. 사병의 2배가 넘는 복무기간이 혹시라도 헌법이 금지한 ‘불이익한 처우’에 해당하는지는 심각하게 따져볼 문제다.
특히 헌법재판소는 2020년 9월 관련 사건(2017헌마643)에서 공보의의 군사교육 소집기간을 복무기간에 산입하지 않는 것을 7대 2로 합헌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복무기간 자체의 위헌성을 다툰 사건은 아니었지만, 현역병·사회복무요원의 복무기간이 계속 단축되는 추세에 비춰 형평성 문제를 지적하는 소수의견도 있었다. 헌재의 판결 이후 현역병의 복무기간은 18개월까지 줄었는데 군의관·공보의는 여전히 그대로다. 소수의견의 무게감이 오히려 더 무겁게 느껴지고 있다.
● 군 의료에도 투자가 필요하다
국방부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자신들이 청년 전문가를 값싸게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착각에서 확실하게 벗어나야 한다. 개인적인 투자와 노력으로 의사·수의사·변호사의 자격을 취득한 청년 전문가에게 39개월의 확실한 ‘경력 단절’을 요구하는 제도는 공정하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다.
오히려 국방부가 군 의료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야 한다. 군 의료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군 의료 개편에 대한 목소리는 탁상공론으로 그치고 현실에서 실질적인 개선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군의관·공보의의 복무기간을 적절하게 조정하지 못한 것이 가장 대표적인 증거다. 장병들의 민간병원 이용은 이미 5년 새 두 배로 늘었는데, 정작 국방 예산에서 의무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0.5%에 불과하다.
이제 군 의료는 단순히 군 복무 중인 병사의 질병을 예방·치유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특히 군 의료는 골든아워 안에 응급처리·후송·외상치료에 집중해야 한다. 실제로 국방부가 사단급 의무대를 의원급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국군외상센터를 통해 특수 외상 수술을 적시에 받을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개편안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앞서 본 대로 의무 분야에 대한 투자는 여전히 미미하다. 국방부와 군이 군 의료의 중요성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군 병원에 훌륭한 시설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질병과 외상을 진단·치료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노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정작 장병들에게 필요한 것은 번듯한 건물이 아니라, 필요한 때에 자신을 치료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유능한 전문의다. 병역 의무를 위해 경력 단절을 감수하는 ‘뜨내기 군의관’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고도의 전문성을 가지고 군 의료의 발전을 위해 평생 헌신할 수 있는 진정한 ‘붙박이 군의관’을 확보하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물론 단기 대체복무의 부담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줄이는 일과, 별도의 유인책으로 장기복무 전문 군의관을 확보하는 일은 함께 풀어야 할 두 개의 다른 과제다. 그런 군의관이 사명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적 지원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국방부의 무거운 책무다.
군의관·공보의 체계의 붕괴는 의대생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사병 복무기간을 절반이나 단축하면서도 군의관·공보의의 복무기간을 그대로 방치한 것은 국방부와 정치권이었다. 2024년의 무리한 의대 정원 확대 시도로 의정 갈등을 촉발하고, 그 여파로 의사국시 합격자를 1년 만에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뜨린 것도 정부였다.
국회에는 이미 군의관·공보의의 복무기간을 24개월로 줄이자는 법안이 5건이나 발의돼 있다. 대통령까지 처우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제 공은 국방부와 정치권으로 넘어갔다. 의대생은 조용히 지켜볼 수밖에 없다. 복무기간 단축을 국방부와 정치권에 애걸하는 모습을 보일 이유가 없다. 오히려 군 의료의 개혁을 기대하는 의대생·수련의의 충정을 자칫 집단이기주의로 인식하는 정치권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형평성은 복무기간의 숫자가 아니라 병역 부담의 총량으로 따져야 한다. 의사면허를 취득한 청년 의사에게 3년 넘는 공백으로 포기해야 하는 기회비용은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감당할 이유가 없는 손실이다. 군 의료와 지역 공공의료가 더 무너지기 전에 정부와 국회는 정치적 비난을 멈추고 청년 의사들이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제도를 내놓아야 한다. 의과대학은 사관학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새겨야 할 때다.
※필자 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 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3200여 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질병의 연금술》《지금 과학》을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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