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어업의 브로커들] ④빚을 내야 탈 수 있는 배: 압두로힘과 그들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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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외국인 산업기술연수생 18명이 처음으로 한국 어선에 올랐습니다.
그런 그가 한국 인근 해역을 오가는 연근해어선으로 옮기려 한 이유는 분명했다.
반면 한국 인근 해역에서 조업하는 연근해어선은 그보다 임금 수준이 높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세 사람은 모두 같은 인도네시아 송출업체와 한국 송입업체를 거쳐 한국 어선에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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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외국인 산업기술연수생 18명이 처음으로 한국 어선에 올랐습니다. 그로부터 30년. 어촌 인구 감소와 인력난 속에서도 오늘날 K-수산업은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 성장을 떠받쳐 온 건 이주 어선 노동자들입니다. 한국 어선에 오르는 선원 중 절반 이상이 외국인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현실은 ‘코리안 드림’과는 거리가 멉니다. 열악한 처우와 불공정 계약, 한국행 비행기에 타기 전부터 떠안아야 하는 막대한 비용. 그 뒤에는 여러 단계를 거쳐 비용과 책임을 선원에게 전가하는 다단계 착취 구조가 있습니다. 그렇게 한국에 온 외국인 선원들이 잡아 올린 생선이 오늘도 우리의 식탁에 오릅니다.
뉴스타파는 인도네시아 현지 독립언론 자링(Jaring.id), 글로벌 비영리단체 환경정의재단(EJF) 등과 함께 한국 이주 어선 노동자들을 둘러싼 먹이사슬을 추적해 연속 보도합니다. <편집자주>
“한 번도 임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서른아홉 살 인도네시아 선원 압두로힘 씨는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갔다. 2024년 8월 한국 연근해어선에 올랐다. 하지만 두 달 만에 고향인 인도네시아 서(西)자바 인드라마유로 돌아왔다. 손에 쥔 돈은 없었다.
“저는 한국에 있는 동안 한 번도 임금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한 번도 임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압두로힘)
압두로힘 씨는 고향에 돌아온 뒤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일한 두 달치 임금도 지금까지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그를 관리했던 송입업체 측은 “선주가 임금의 일부를 현금으로 정산한 것으로 안다”면서도 “내역은 남아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결국 저는 이렇게 된 거죠. 돈을 많이 벌려고 거기까지 갔는데, 결국 일방적으로 계약이 해지됐습니다. …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일을 얻기 위해 많은 에너지와 돈을 잃었습니다.” (압두로힘)

‘한국에서 돈을 벌기 위해, 왜 노동자가 먼저 거액의 돈을 내야 하는가. 그리고 일하기도 전에 짊어진 빚은 배 위에서 무엇을 견디게 하는가.’
뉴스타파와 국제협업 취재팀은 이 질문의 답을 듣기 위해, 한국 연근해어선에서 일했거나 일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선원 7명을 현지에서 만났다. 이들 가운데 5명이 인드라마유 지역 출신이다. 인드라마유는 몇 년째 서부 자바에서 빈곤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자, 인도네시아에서 해외로 일하러 나가는 사람이 가장 많은 곳이다.
“고향에 집을 짓고 싶었습니다”
압두로힘 씨는 베테랑 선원이다. 원래 한국 원양어선을 네 차례나 탔다. 러시아 해역까지 나가 조업한 경험이 있다. 그런 그가 한국 인근 해역을 오가는 연근해어선으로 옮기려 한 이유는 분명했다. 더 높은 임금 때문이었다.
“제 기대는 급여 조건이 더 좋아지는 것, 즉 월급을 좀 더 많이 받았으면 하는 거였습니다. … 그래서 저는 연근해선으로 옮기고 싶었습니다. 성공한 친구들이나 잘 풀린 친구들처럼, 고향에 집도 짓고, 그러고 싶었거든요.” (압두로힘)
원양어선은 공해나 외국 수역에서 수 개월 이상 조업한다. 선상의 고된 노동조건에 비해 압두로힘 씨가 받을 수 있는 임금은 많아야 월 600달러 수준으로 우리 돈 80만 원 정도였다. 반면 한국 인근 해역에서 조업하는 연근해어선은 그보다 임금 수준이 높다. 압두로힘 씨는 2년 전 한국으로 떠날 때 매달 230만 4927원의 급여를 받기로 하고 3년 계약을 맺었다.
인드라마유 출신으로 대만에서 일하던 선원 아마드(가명) 씨도 같은 이유로 한국행을 택했다.
“부모님을 돕기 위해서였고, 결국 급여 때문이었습니다. 대만 선박에서는 급여가 그리 많지 않은데, 한국은 그래도 좀 더 많이 받을 수 있으니까요.” (아마드)

한국 연근해어선의 선원이 되는 일은 이들에게 가족의 삶을 바꿀 기회였다. 그러나 더 높은 임금에는 먼저 치러야 할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집문서를 담보로…빚을 내야 탈 수 있는 배
압두로힘 씨가 한국 배에 오르기 위해 인도네시아 송출업체에 낸 선납금은 1억 6800만 루피아. 우리 돈으로 약 1300만 원이다. 절반은 입국 전후 교육비, 건강검진비, 업체수수료 등을 포함한 ‘송출비용’이었다. 나머지 절반은 선원의 도망을 막기 위한 ‘이탈보증금’이었다.
그에게 목돈이 있을 리 없었다. 그는 장인·장모의 집 등기권리증을 담보로 인도네시아 협동조합에서 1억 5000만 루피아를 빌렸다. 3년 만기에 매달 890만 루피아(약 70만 원)씩 원리금을 갚아야 하는 조건이었다.
“한국 연근해어선 취업 비용은 1억 6800만 루피아였습니다. 그 비용을 마련하려고 협동조합을 찾아 대출을 받았고, 집 문서를 담보로 맡겼습니다.” (압두로힘)
정작 두 달 만에 빈손으로 돌아온 이후로, 그는 대출금을 제대로 갚지 못하고 있다.
“대출금 상환을 제대로 못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껏해야 일용직 같은 잡일밖에 없거든요. 한국에 가면 월급을 많이 받을 거니까, 그래서 감히 그런 큰돈을 대출할 엄두를 냈던 겁니다.” (압두로힘)
피해는 처가까지 번졌다. 최근 들어 장인·장모의 집이 압류당해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놓였다.
“아내는 계속 화만 냅니다. 제 머릿속은 정말 골치가 아프고 터질 지경이죠. 여파가 정말 컸습니다. 가족들, 장인·장모님, 저희 부모님까지 다들 걱정이 태산입니다.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압두로힘)

같은 고향 사람인 부디(가명) 씨는 부모의 땅을 담보로 맡기고 돈을 빌렸다.
“한국 선박으로 출국하는 데 필요한 총비용은 1억 6000만 루피아였습니다. … 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부모님 소유의 논을 저당 잡혔습니다.” (부디)
돈으로 사람을 묶어두는 ‘이탈보증금’
압두로힘의 사례에서 보듯이 선원들이 한국으로 오기 전 송출업체에 낸 선납금의 상당 부분은 ‘이탈보증금’이다. ‘선원이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면 돌려받지 않는 조건으로 출국 전에 본국 송출업체에 맡기는 돈’이다.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에 임의로 배에서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한국에 불법체류하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이런 형태의 보증금을 강제노동의 지표 가운데 하나인 ‘채무 속박’(debt bondage)으로 본다. 채무 속박은 빚 때문에 노동자가 일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보호법도 인력 배치 비용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도 이탈보증금 징수를 인신매매 피해의 지표로 본다. 그런데도 선원들은 한국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지금도 공공연하게 이탈보증금을 내고 있다.
취재팀은 실제로 이탈보증금이 명시된 문건을 입수했다. 부디 씨가 인도네시아 송출업체와 맺은 각서다. 이 각서에 따르면, 그가 낸 선납금 가운데 절반인 8000만 루피아, 우리 돈 650만 원가량이 이탈보증금으로 확인된다.
각서 제1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보증금은 현금으로 납부하며, 최소 4년 10개월의 근로계약 기간을 마친 뒤에야 돌려받을 수 있다. 근무기간이 4년 10개월에 미치지 못할 경우 보증금은 반환되지 않고 몰수된다. 또한 무단이탈하거나 도주한 선원, 비자를 불법적으로 사용한 선원은 1억 루피아(약 770만 원)를 납부해야 한다.”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면 납부한 보증금을 잃는 데 그치지 않고, 추가로 벌금까지 물어야 하는 구조다. 선원들은 자신이 낸 돈으로 스스로를 옭아매는 약정을 맺고 있는 셈이다.
계약 기간을 모두 채우고도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한국 연근해어선에서 5년 7개월을 일하고 2024년 2월 귀국한 와휴(가명) 씨. 그는 당초 이탈보증금으로 7500만 루피아, 현재 가치로 약 600만 원을 냈다. 하지만 실제로 돌려받은 돈은 1700만 루피아(약 145만 원)에 그쳤다. 각종 비용 명목으로 80% 가까이를 임의로 공제했기 때문이다.
“보증금을 돌려받을 때 제가 내야 하는 비용들을 보증금에서 빼는 방식이었습니다. 보증금에서 이 비용은 얼마, 저 비용은 얼마 하는 식으로 하나씩 빼고, 결국 얼마가 남는지 계산했습니다. … 제 경우에는 잔액으로 약 1700만 루피아 정도를 받았습니다. 실제로 제 손에 들어온 순수한 금액이 그 정도였습니다.” (와휴)

“이틀 동안 쉬지도, 먹지도 못했습니다”
이렇게 거액을 치르고 얻은 선상의 일자리는 가혹했다.
“○○호에서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버틸 수 없었습니다. 때로는 이틀 동안 몰아서 일하면서 쉬지도 못하고 밥도 못 먹었습니다. 더는 버틸 수 없어 에이전시(한국 송입업체)에 배를 옮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압두로힘)
원양어선 베테랑이었던 압두로힘 씨도 한국 연근해어선에 오른 지 12일 만에 다른 배로 옮겨달라고 요청했다. 다행히 배를 옮길 수 있었지만, 새로 간 곳에서는 한 달이 채 안 되는 근무 기간 동안 폭력을 겪었다고 한다.
“그 25일 동안에도, 갈치잡이 배에서 선장이 계속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 뺨을 때리고, 발로 차고, 귀를 잡아당기는 일도 있었습니다. 배에서는 흔한 일이었습니다.” (압두로힘)
압두로힘 씨는 폭행 당한 사실을 주한인도네시아대사관에 신고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구체적인 증언에도 불구하고, 그를 관리했던 한국 송입업체 측은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폭행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현직 선원 에코(가명) 씨도 같은 일을 겪었다고 말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뒤에서 제 머리를 때렸습니다. … 결국 저는 배를 옮기고 싶었는데, 누구에게 호소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습니다.” (에코)
에코 씨를 때린 사람은 기관실에서 일하는 한국인이었다고 했다. 그가 신입 인도네시아 선원들을 상습적으로 때렸다는 게 에코 씨의 증언이다. 그럼에도 에코 씨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어 막막하기만 했다. 처음 맞았을 때 동료 선원이 조언한 말은 “참고, 배를 옮기지 말라”는 것이었다.

목숨 건 선상 노동…“폭풍이 쳐도 일했습니다”
부디 씨는 조업 현장에서 생명의 위협도 느꼈다.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힘들었던 것이 폭풍이 칠 때였습니다. 폭풍이 치는 중에도 계속 일을 해야 했는데, 그게 제가 겪은 일 중에 가장 극단적이었습니다.” (부디)
폭풍 속에서의 작업은 극도로 위험했다. 그때 그가 입은 것은 두꺼운 우비와 장화가 전부였다.
“(구명조끼는 입지 않았습니까?) 아니요, 구명조끼는 입지 않았습니다. … 정말 너무 위험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거부할 수 없습니다.” (부디)

위험한 노동과 피로를 견디다 크게 다치기도 한다. 트레스노 씨는 꽃게잡이 어선에서 통발을 놓던 중 사고를 당했다.
“당시 오전 6시에 막 일을 시작해서 게 통발을 놓으려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줄이 제 몸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아래쪽으로 끌려가다가 바다에 빠졌습니다. … 병원으로 옮겨져 7개월 동안 치료를 받았고, 수술도 두 번 했습니다.” (트레스노)
트레스노 씨는 고향에 돌아온 지금도 사고 당시 다친 손을 회복하기 위해 재활 운동을 하고 있다.

선원들은 사고의 원인을 개인의 부주의 때문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 어선에서 4년 8개월을 일한 슬라멧(가명) 씨는 이렇게 말했다.
“졸음 때문이기도 하고, 피로 때문이기도 합니다. 일이 너무 고되니까요. 그리고 파도, 날씨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일을 빨리 해야 하잖아요. 계속 빠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저희는 한국인에게 혼날까 봐 두렵습니다. 파도가 쳐도 일해야 했습니다.” (슬라멧)
어선원에게는 법정 근무시간이나 휴식시간 기준이 없다. 선원들은 근로기준법이 아니라 선원법을 적용받는데, 선원법의 근로시간 제한 규정에서 어선원은 제외된다. 사실상 이들의 노동조건을 규정하는 것은 수협이 만든 표준근로계약서뿐이다.
그러나 표준근로계약서에도 근무시간과 휴식시간 기준은 없다. 모호한 표현만 적혀 있다. 계약서 제6조는 “근해어선의 조업은 작업시간의 특수성 때문에 외국인선원의 작업시간은 대한민국 선원의 통상적인 작업시간에 준한다”며 “적당한 휴식시간을 부여하여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오랜 기간 외국인선원 인권을 위해 일해온 공익인권법센터 어필의 김종철 변호사는 선상 노동의 실태를 이렇게 이야기했다.
“선원법상 어선에는 노동시간 제한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아무리 오래 일을 시켜도 현행법 위반이 아니에요. 실제로 (선원들) 인터뷰를 해보면 18시간, 19시간 하루에 일한다는 선원들도 많이 있거든요.” (김종철 변호사 / 공익인권법센터 어필 선임연구원)
배를 옮겨달라고 했더니, 계약이 해지됐다
문제는 노동여건이 아무리 열악해도 외국인 선원들이 자유롭게 배를 옮길 수 없는 점이다.
수협 표준근로계약서 제15조는 선주가 외국인선원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관리업체에 통보해 출국을 요구할 수 있는 사유가 적혀 있다. 그 첫 번째가 “멀미, 노동강도, 근무환경 등의 사유로 근무처 변경을 요구하는 경우”다.
즉, 일이 힘들다고 불만을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공식적인 해고 사유가 될 수 있다. 외국인 선원들은 거액의 송출비용과 이탈보증금을 마련하려 빚까지 내어 한국에 왔지만, 정작 너무나 쉽게 계약이 해지될 수 있는 구조에 놓여 있다. 이런 조건 아래에서 부조리나 노동조건을 개선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로 압두로힘 씨는 선장의 폭행을 알리고 이직을 요구했다가 해고됐다고 했다.
“공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느낍니다. 제가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는 희생도 필요했고, 여러 가지 고민도 했고, 비용도 들었으니까요. … 그런데 (한국에) 가자마자 계약이 끊겼습니다. 먼저 휴가를 가라고 하더니 결국 계약을 끊었습니다.” (압두로힘)
아마드 씨와 부디 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두 사람 모두 휴가 중 계약해지 통보를 받고 일자리를 잃었다.
“제가 배를 옮겨달라고 요청했더니 오히려 휴가를 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계약이 정리됐습니다. … 계약을 해지하면서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화가 났습니다.” (아마드)
“제가 하던 일이 이미 다른 사람으로 교체됐다고 했습니다. … 제 자리는 한국 현지인으로 교체됐다고 했습니다.” (부디)
이렇듯 압두로힘, 아마드, 부디 세 사람 모두 휴가를 이유로 인도네시아에 일시 귀국한 뒤 계약 해지를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세 사람은 모두 같은 인도네시아 송출업체와 한국 송입업체를 거쳐 한국 어선에서 일했다.
이는 특정 송출·입 업체들이 선주가 문제시하는 선원의 일자리를 빼앗는 하나의 수법으로 ‘휴가 중 해고’ 방식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들 세 명을 한국에 데려온 한국 송입업체 측은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요즘은 선원들이 휴가를 가라고 해도 잘 가려고 하지 않는다”며 “(휴가 중 해고 통보 사례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선원들이 부당한 일을 겪고도 쉽게 맞서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맞서는 사람도 있고, 도망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맞서게 되면 가끔 고용주가 본국으로 돌려보내기도 하고, 계약을 끊기도 하고, 다른 배로 옮기기도 합니다. … 그런 상황에서 막막했던 게, 우리가 맞서게 되면 인도네시아로 돌려보낼까봐 두렵다는 겁니다.” (슬라멧)

거액의 빚을 지고 한국에 온 선원에게 ‘힘들면 그만두면 된다’는 선택은 쉽지 않다. 일자리를 잃는 순간 코리안 드림은 사라지고 한국에서 벌어 갚으려던 빚만 남기 때문이다.
‘선원’으로 왔는데…모텔·식당·공장에서도 일했다
선원들은 취재팀에 계약서에 없는 일까지 해야 했다고 증언했다. 아마드 씨는 자신이 받은 비자(E-10-2)로는 바다에서만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근로계약서에도 선상 근무만 적혀 있었지만, 배가 정박하면 선주의 다른 사업장에서도 일해야 했다.
“배를 옮겨달라고 한 건 급여 문제 때문이었고, 또 일이 배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 (선주의) 모텔에서도 일하고, 식당에서도 일하고, 밭에서도 일했습니다. 계약상으로는 배에서만 일하게 되어 있었거든요.” (아마드)
2024년 6월 한국에 온 에코 씨는 현직 ‘선원’이다. 하지만 2년이 넘게 일하는 동안 어선에서 일한 기간은 두 달에 불과하다. 생선 가공 공장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체류자격상 허용되지 않는 불법 근무지만, 고용주가 시킨 일이었다고 에코 씨는 말했다.
“항의할 수는 있었습니다. … 준비됐느냐고 해서, 저는 어디서든 일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에코)
받아야 하지만 아직도 받지 못한 돈
계약 도중 해고된 선원들은 당연히 받아야 할 돈도 아직 받지 못했다.
압두로힘 씨는 해고되기 전 일한 두 달치 임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부디 씨는 해고되기 전 마지막 16일치 임금과 퇴직금, 그리고 퇴직 시 선주가 부담해야 할 귀국 항공권 비용을 받지 못했다.
수협 표준근로계약서 제8조는 ‘근무 기간이 1년을 넘고 3년 미만이면 귀국 비용의 3분의 2를 선주가 부담하도록’ 정하고 있다. 부디 씨는 2년 4개월을 일했으니 이 비용을 받을 자격이 있다. 하지만 받지 못했다.
“근로계약이 해지된 것 자체에 대해서는 저는 아무것도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저는 손해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받아야 할 권리도 아직 지급되지 않았고,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부디)
아마드 씨는 5개월치 임금과 2년치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게다가 퇴직할 경우 선주가 내줘야 할 귀국 항공료도 그가 송출업체에 낸 이탈보증금에서 공제됐다. 임금체불에 이어 선주가 부담해야 할 항공료마저 자신의 돈으로 낸 셈이다.
“(받지 못한) 제 월급은 아직 저쪽에 남아있는데 말이죠. 왜 보증금에서 공제해야 하나요? 왜 저쪽에서 받는 월급에서 공제하지 않는 건가요?” (아마드)
같은 제도 다른 결과…운에 맡겨진 삶
물론 모든 선원이 같은 일을 겪는 것은 아니다. 슬라멧(가명) 씨는 다행히 총 4년 8개월의 계약을 온전히 마쳤다. 그리고 받아야 할 돈을 모두 받았다.
“제 경우에는 다행히도 전부 정산이 끝났습니다. … 보증금이랑 퇴직금, 저축 같은 것, 연간 지급금, 급여, 전부 지급받았습니다.” (슬라멧)
슬라멧 씨의 사례는 외국인선원제라는 같은 제도 아래에서도 어떤 선주와 인력 중개업체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민간 업체에 의존하는 다단계식 외국인 선원 중개 구조 안에서, 이주 선원들의 삶과 인권이 사실상 '운'에 맡겨져 있는 것이다.
선상 사고 후 7개월 입원 끝에 재활 중인 트레스노 씨는 한국행을 준비하는 예비 선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 가려는 예비 선원이 있다면 한국에 출국하기 전에 다시 한번 신중하게 생각하는 게 좋겠습니다. 배에서의 일이 어떤지, 친구들의 경험담을 많이 들어보고, 그곳의 일이 실제로 어떤지 알아보는 게 좋습니다.” (트레스노)
압두로힘의 호소…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압두로힘 씨가 지금 당장 원하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이미 지나간 제 일은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선원들에게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에게 일어난 것과 같은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외국인 선원들이 한국 바다에서 잡아 올린 수산물은 오늘도 우리 식탁에 오른다. 한국 연근해어선에서 일하는 외국인 선원은 약 1만 명. 취재팀이 만난 7명은 이 중 극히 일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선원이 빚을 진 채 일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선원들이 막대한 빚을 내 송출비용과 이탈보증금을 부담하는 구조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정부와 수협이 이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한국 어선 위에서는 압두로힘 씨와 같은 피해자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취재 김지윤, 홍우람, 압두스 소마드, 아크왐 하니판
영상취재 신영철, 오준식
영상편집 박서영
CG 이미예
디자인 이도현
출판 임승은
뉴스타파 홍우람 wooramho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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