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이 ‘치료되는’ 시대, 첫 추석을 맞다 [남인숙의 신중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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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을 앞두고 가족들과 격의 없는 식사 약속을 잡았다.
가족이 명절에 만나기로 했다는 것은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암묵적인 메시지에 합의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위고비, 마운자로가 한국에 상륙하고 처음 맞는 이번 추석은 명절과 만남, 그리고 음식에 얽힌 문화적 함의가 느슨해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식이면 이제 체중 감량을 결심한 사람에게 예전처럼 음식이 상징하는 연대감을 핑계로 식욕을 채우는 '명절의 허용'이 작동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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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을 기억하는 중년에 찾아온 변화…“많이 먹어라”는 인사도 바뀌나
(시사저널=남인숙 작가)
명절을 앞두고 가족들과 격의 없는 식사 약속을 잡았다. 장소는 모이기 편한 우리 집으로 정하고 음식은 배달로 해결하기로 했다. 요즘에는 연휴에 명절 음식 특선을 배달앱에 띄우는 식당들도 있으니 호스트로서 별다른 부담은 없을 터였다. 그래도 미리 메뉴를 생각해 두면 좋을 것 같아 배달앱을 열어 이런저런 식당을 둘러보는데 문득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이날 참석하는 가족원 중 두 명이 마운자로를 맞고 있었던 것이다. 여섯 명 중 두 명이 식단 관리를 하고 있다면 아무래도 메뉴 선정에 반영해야 한다. 위고비나 마운자로 같은 GLP-1계열 비만 치료제로 감량 중일 때는 탄수화물은 피하고 단백질 위주로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탄수화물 폭탄인 송편과 잡채를 피해 육류 위주로 음식을 찾아보던 와중에 문득 이제 명절 풍경이 또다시 바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는 데 진심인 사회, 살찌는 데는 냉정하다
명절이면 차례를 지내겠다며 허리가 휘도록 전을 부치고, 산같이 쌓인 음식을 나눠 먹던 의례가 희미해진 지는 꽤 되었다. 십여 년 전에 추석과 공휴일이 알맞게 이어져 역대급 황금연휴가 된 시기가 있었다. 이때를 장기 여행 적기로 보고 해외로 떠나는 사람들이 공항에 몰린 것을 두고, 한 네티즌이 올린 댓글이 이후 명절 풍경을 바꾼 전설로 남았다. 지면용으로 순화하자면, '명절 차례 의미 없다. 진짜 조상 덕 본 사람들은 지금 해외여행 가고 없다. 조상 덕이라곤 못 본 사람들만 남아 차례 지내고 와서 부부싸움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 문제로 피곤했던 사람들은 이 촌철살인 한마디에 허탈감을 느끼며 의례로서의 명절 지내기에서 이탈했다. 그 결과, 이제는 명절에 창문을 열고 있으면 밖에서 전 부치는 냄새가 들어오는 게 더 드문 일이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명절은 가족과 모여 맛있는 것을 나눠 먹는 날'이라는 의미는 남아있다. 추석이면 떡집마다 송편을 사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깜짝 놀랄 정도로 비싼 전을 부쳐내는 전집 계산대에 긴 대기줄이 생긴다.
우리 사회에서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곧 연결을 의미한다. 가족이 명절에 만나기로 했다는 것은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암묵적인 메시지에 합의했다는 뜻이다. 이런 의무감은 평소 의식적으로 걸어놓았던 식욕의 빗장을 푸는 합리적 핑계가 된다. 아무리 명절 풍경이 바뀌어도 연휴가 지나면 늘 몸무게가 늘어있었던 이유다. 그러나 위고비, 마운자로가 한국에 상륙하고 처음 맞는 이번 추석은 명절과 만남, 그리고 음식에 얽힌 문화적 함의가 느슨해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먹는 일에 대한 열정과 비만에 대한 혐오 모두가 극단적인 한국 사회에서 살고 있다. 이것은 모순된 것으로 보이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나는 여느 한국인처럼 맛없는 것으로 끼니를 때우면 억울한 기분이 든다. 사람은 생각보다 적은 양을 먹어도 충분히 활동할 수 있기에 '적당히' 먹으며 살려는 이들이 식욕을 채울 기회는 한정적이다. 그러니 비슷한 일상이 반복되는 일과에서 도파민이 보장되는 식사 시간만큼은 충분히 즐길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안 먹는다면 몰라도 먹는다면 맛있는 것으로 먹고 싶다.
물론 맛있는 것을 먹으면 기분이 좋은 것이야 인류 공통이겠지만, 모두가 우리처럼 되도록 맛있게 한 끼 한 끼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나는 외국인들이 짐작보다도 훨씬 음식에 무관심한 걸 목격할 때마다 매번 당황하곤 한다.
우리가 이처럼 유독 먹는 일 그 자체를 이벤트나 엔터테인먼트로 삼는 이유는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과거가 현재와 가장 밀착되어 있는 선진국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우리 사회에서 1980년대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굶주림을 경험한 전후 세대 부모에게서 음식을 결코 남겨서는 안 된다는 밥상머리 교육을 받았다. 오늘날의 중년은 유년 시절에 음식에 대한 결핍을 경험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그 영향으로 음식에 집착해 비만을 끊임없이 경계하고 살아왔으며, 이제 약물의 도움으로 식욕을 조절할 수 있는 시대를 맞고 있다.
'한 입만 더'가 통하지 않는 명절
결핍의 기억이 있는 세대는 명절에 만나는 자녀들에게 여전히 음식을 권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 의학의 수혜를 받은 위고비, 혹은 마운자로 투약자들은 강권하는 음식을 받아먹을 수 없다. 음식에 대한 욕구가 줄고, 조금만 많이 먹어도 속이 불편하다. 위장이 움직이지 않는데 억지로 음식을 욱여넣었다가는 응급실에 실려가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명절 앞두고 잠깐 투약을 쉴 것을 기대할 수도 없다. 약의 반감기가 긴 데다 투약을 쉬면 내성이 사라져 처음부터 약에 적응하는 단계를 밟아야 한다.
이런 식이면 이제 체중 감량을 결심한 사람에게 예전처럼 음식이 상징하는 연대감을 핑계로 식욕을 채우는 '명절의 허용'이 작동하지 않는다. 한쪽에서 식욕의 빗장을 풀더라도 반대편에서 그에 호응해줄 수 없고, 음식을 강권하는 사람을 설득할 필요도 없어진다.
이거 맛있는데 조금만 먹어봐라, 배불러서 못 먹겠다, 음식을 사이에 두고 웃으며 하는 이런 줄다리기가 사라지는 명절 풍경이 그동안 강력하게 묶여 있던 연대감과 음식의 관계를 재정의하게 될 수도 있겠다.
앞으로 비만 치료제 시장은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나와 있는 위고비와 마운자로는 피하지방에 주사하는 것인데 내년에는 진입장벽이 좀 더 낮은 경구용 제제가 국내 출시될 것이다. 점점 투약이 쉬워지고 가격도 내려갈 터여서 이제 비만 정복이 코앞에 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비만이라는 해로운 질병이 소아마비나 흑사병처럼 과거의 영역으로 물러날지는 알 수 없다. 흉악한 바이러스나 쥐 따위와 달리 비만의 원인, 즉 먹는 것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술이나 담배처럼 아예 삶에서 잘라낼 수도 없다. 약물로 식욕을 소거한다 해도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음식을 챙겨 먹어야 하니, 먹고 싶지 않다는 또 다른 욕구에 저항해야 하는 숙제가 남는다. 도무지 '적당히 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인류는 어떤 해결책을 찾아도 거기서부터의 균형점을 찾아 또다시 이리저리 흔들릴 것이다.
우리는 아무래도 먹는 행위와 관련해 문명이 축적해 놓은 수많은 의미적인 유산과 심신의 충족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니 앞으로는 추석과 같은 일상의 장면에서 어느 방향의 욕구를 남겨 놓을지 각자가 선택해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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