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진료실 밖 환자 하루가 데이터···희귀질환 치료·신약개발 근거로

김정수 기자 2026. 9. 23.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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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기록 쌓여 자연경과 ‘지도’
앞선 환자 경과 다음 치료 참고
소수 환자 신약개발 비교 근거로
美 FDA도 자연경과 중요성 제시
22일 문장섭 서울대병원 임상유전체의학과·신경과 교수는 서울 용산구에서 열린 '2026 희귀질환 공동 심포지엄'에서 희귀질환 진료와 연구의 출발점으로 환자와 가족이 남기는 일상의 기록을 꼽았다. /김정수 기자

희귀질환 환자를 3개월에 한 번 외래에서 만난다면 의료진이 직접 확인하는 시간은 극히 짧다. 진료 당일에는 우연히 상태가 좋을 수도 있다. 그 사이 어떤 증상이 나타났고 컨디션과 삶의 질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환자와 가족의 기억에 의존하기 쉽다.

22일 문장섭 서울대병원 임상유전체의학과·신경과 교수는 서울 용산구에서 열린 '2026 희귀질환 공동 심포지엄'에서 희귀질환 진료와 연구의 출발점으로 환자와 가족이 남기는 일상의 기록을 꼽았다.

문 교수는 "3개월에 한 번씩 환자를 본다고 하면 사실 잠깐잠깐 뵙는 것"이라며 "그날 잠깐 좋은 날일 수도 있고 나머지 날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잘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하루하루의 증상이나 컨디션, 삶의 질은 가족분들이 제일 잘 알 것"이라며 일상을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 환자의 기록은 당장의 진료를 돕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같은 질환을 가진 여러 환자의 기록이 장기간 쌓이면 증상이 언제 나타나고 어떤 속도로 진행되는지, 어느 시기에 어떤 합병증을 주의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자연경과(natural history)' 자료가 된다. 쉽게 말해 질환이 시간에 따라 어떤 경과를 밟는지를 보여주는 '질환의 지도'다.

한 환자의 경과가 다음 환자의 치료로

문 교수는 CSF1R 유전자 이상에 따른 백질뇌병증 환자를 사례로 들었다. 30대 후반 남성이 백색질 변성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고 유전자검사를 통해 진단됐지만 근본적인 치료법은 없었다.

의료진은 면역치료 등을 시도했지만 병은 계속 진행됐다. 문헌상 조혈모세포이식이 일부 환자에서 질환 진행을 늦추는 데 도움이 될 가능성이 보고돼 있었지만 당시 의료진에게도 해당 질환에서 이식을 시행한 경험이 없었다. 환자 역시 이식을 주저하면서 결국 치료 시기를 놓쳤고 합병증으로 숨졌다.

이후 몇 달 사이 비슷한 젊은 환자 5명가량이 잇따라 내원했다. 앞선 환자의 경과를 경험한 의료진은 혈액종양내과와 협의해 조혈모세포이식을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했고 현재 일부 환자에게 이식을 진행하고 있다. 아직 이식 후 장기 결과를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게 문 교수 설명이다.

그는 앞선 환자의 경험이 다음 환자의 치료 기회를 여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앞선 환자의 경과가 같은 질환을 진단받은 후속 환자의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개별 환자의 임상경과뿐 아니라 외래와 외래 사이의 일상 변화도 기록할 필요가 있다. 한두 달 전 일을 기억해 설명하는 것보다 증상과 컨디션이 달라진 시점에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등에 기록해 두면 짧은 외래 진료에서도 환자의 변화를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웨어러블 기기나 인공지능을 활용한 기록 방식도 발전하면서 과거보다 일상 데이터를 남기기 쉬워졌다.

문 교수는 "진료실에서 잘 확인하지 못하는 평소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얘기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여러 환자의 자료가 쌓이면 질환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치료제 임상시험에서도 환자가 실제 생활에서 중요하다고 느끼는 변화를 평가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문 교수는 의료진이 중요하게 보는 임상적 개선과 환자 및 가족이 체감하는 변화가 다를 수 있다며 '환자 주도형 임상지표 선정'의 중요성을 짚었다. 환자가 어떤 기능이나 증상이 개선됐을 때 실질적으로 삶이 나아졌다고 느끼는지를 치료제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 적은 희귀질환···자연경과가 신약개발 근거

희귀질환에서 자연경과 자료가 특히 중요한 이유는 환자 수가 적기 때문이다.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환자가 많은 질환에서는 치료제를 투여한 대규모 환자군과 투여하지 않은 환자군을 나눠 효과를 비교할 수 있다. 하지만 환자가 극히 적은 희귀질환에서는 같은 규모의 무작위 대조시험을 설계하기 어렵다.

이때 치료하지 않은 환자가 통상 어떤 경과를 밟는지가 충분히 알려져 있다면 신약을 투여한 뒤 나타난 변화와 비교할 기준이 생긴다. 예컨대 자연 상태에서는 빠르게 악화하는 질환이 치료 후 상대적으로 천천히 진행된다면 기존 자연경과와의 차이가 치료 효과를 판단하는 근거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문 교수는 "기존 자연경과와 비교해 천천히 나빠진다는 것을 보여줘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판정하는 분위기"라며 "그런 자료를 실제 신약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에서 자연경과 자료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FDA는 올해 2월 초희귀질환의 개별맞춤형 치료제 개발을 위한 'Plausible Mechanism Framework' 지침 초안을 공개했다. 환자 수가 적어 일반적인 임상시험이 어려운 상황에서 질환 원인과 치료제의 작용기전뿐 아니라 치료받지 않은 환자의 자연경과가 충분히 규명돼 있는지를 주요 요소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다. 아직 확정 지침은 아니다.

문 교수는 "진단명을 붙이고 난 이후 그 질환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에 대한 지도를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그 지도를 만드는 게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치료제 개발까지 이어지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22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는 '함께 만드는 희귀질환의 내일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주제로 '2026 희귀질환 공동 심포지엄'이 열렸다.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하고 있다. /김정수 기자

이날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는 '함께 만드는 희귀질환의 내일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주제로 '2026 희귀질환 공동 심포지엄'이 열렸다. 임병찬 서울대병원 희귀질환센터장은 개회사에서 "희귀질환 자체가 한 가지 질환이라기보다 빈도가 드문 질환들이 묶여 있기 때문에 내용을 구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정보가 알차고 뜻깊은 행사가 될 수 있도록 매년 센터 의료진과 구성원들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채종희 서울대어린이병원장은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의학적 진단·치료와 연구도 중요하지만 복지·정책·사회적 지원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통합적 접근이 훨씬 더 중요하다"며 "진료 이후 환자의 삶과 생활까지 아우르는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의료진·연구자·관계기관·환자단체와 협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CSF1R 관련 백질뇌병증= CSF1R 유전자 이상으로 발생하는 희귀 진행성 신경퇴행질환이다. 뇌 백질이 손상되면서 인지·운동 기능 저하 등이 나타날 수 있다. 확립된 완치 치료법은 없지만 조혈모세포이식이 일부 환자에서 질환 진행을 늦추거나 안정화할 가능성이 보고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또는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