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질환은 관리했지만 환자는 놓쳤다···희귀질환관리법 10년의 한계
미진단 환자 통계·심사 공백
장애등록 전 돌봄 활동지원 밖
'질환→사람' 개정안 연내 발의

병은 확인됐지만 국가관리대상 희귀질환 목록에는 없었다. 올해 5월 서울대학교병원 신생아실에서 국내 첫 사례로 확인된 극희귀질환 환아 얘기다. 신생아실 치료비만 수천만원이 발생했지만 기존 희귀질환 지원을 곧바로 연결하기 어려웠다.
22일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는 서울 용산구에서 열린 '2026 희귀질환 공동 심포지엄'에서 이 사례를 소개하며 현행 희귀질환 지정 체계의 사각지대를 지적했다.
당시 질병관리청에 문의했지만 해당 시점에 질환을 바로 지정 목록에 반영할 방법이 없다는 답을 들었다는 게 권 교수 설명이다. 이후 환자 가족 동의를 받아 민원 등을 제기했다.
권 교수는 "중간에 발견돼도 발견된 시점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되는데 혜택이 불가능하다"며 "이게 지정 제도의 사각지대"라고 말했다.
희귀질환관리법은 2015년 12월 제정돼 이듬해 12월 시행됐다. 희귀질환 예방·진료·연구와 등록통계·의료비 지원 등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 국가 차원의 관리체계를 구축한 법이다. 올해로 시행 10년째다.
하지만 유전체 진단 확대와 고가 치료제 등장 등 희귀질환을 둘러싼 환경이 달라지면서 질환명과 지정 여부를 중심으로 작동해온 기존 체계만으로는 환자의 실제 필요를 충분히 포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 질환 발견과 지정 사이 '시차'
현행 제도에서도 미지정 질환을 새롭게 국가관리대상 희귀질환으로 지정해달라고 신청할 수 있다. 다만 신청된 질환을 심의해 신규 질환으로 지정·공고하는 과정은 연 단위로 이뤄져 연중 새 질환이 발견될 경우 실제 지원이 뒤따르기까지 시차가 생길 수 있다.
특히 환자 수 자체가 극히 적은 질환은 국내 환자 사례와 진단 가능성·질환의 중증도 등을 검토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새 질환이 확인된 순간부터 곧바로 기존 지정 희귀질환과 동일한 지원을 적용하기 어려운 이유다.
권 교수는 질환이 최종 목록에 들어갈 때까지 기다리는 방식 대신 일정 요건을 갖춘 환자를 우선 인정할 수 있는 별도 경로가 필요하다고 봤다. 질환 목록이 환자를 뒤따르는 동안 당사자가 지원에서 빠지는 상황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다.
병명 못 찾으면 통계에서도 안 보여
아직 정확한 병명을 찾지 못한 '미진단 환자'도 다른 형태의 사각지대에 놓인다. 현재도 정밀검사와 협진에도 진단되지 않은 환자를 대상으로 미진단 희귀질환 진단지원사업이 운영되고 있다. 끝내 질환을 확정하지 못한 경우에는 심사를 거쳐 '상세불명 희귀질환'으로 산정특례를 적용받을 수 있는 경로도 있다.
문제는 복잡한 미진단 환자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최종 판단하고 이들을 국가 차원에서 어떻게 지속적으로 파악할 것인가다.
권 교수는 "상세불명을 누가 결정할 것이냐가 너무 애매하다"고 지적했다. 여러 장기와 증상이 얽힌 사례는 심사에 참여한 의료진조차 자신의 세부 전문분야가 아니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는 설명이다.
진단명이 없으면 통계에서도 환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질환별 코드를 중심으로 환자를 분류할 경우 아직 병명이 붙지 않은 사람은 규모 자체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은 약 2년 전부터 자체적으로 '미진단' 코드를 만들어 해당 환자들을 별도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개별 환자 진단을 지원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병명이 없는 환자를 지속적으로 식별·등록하고 복잡한 사례를 전문적으로 심사할 국가 단위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장애 안 되려고 관리하는데"···의료와 복지 사이
병명은 있어도 장애인복지 체계 기준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환자도 있다. 일부 희귀질환은 꾸준한 의료·재활과 가족 돌봄을 통해 기능 악화를 늦추는 것이 중요하다. 적극적인 관리 덕분에 장애가 심해지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일상적인 의료 처치와 지속적인 돌봄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현행 장애등록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활동지원 등 장애인복지서비스와 연결되기 어려울 수 있다.
권 교수는 한 희귀질환 환자 아버지가 제기한 문제를 사례로 들었다. 열심히 관리하면 장애가 생기지 않는데 지원을 받으려면 결국 상태가 악화돼 장애진단을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는 "장애가 안 돼야 되는 희귀질환들이 있는데 훨씬 손이 많이 가고 돌봄이 더 필요하다"며 "이런 의료와 장애의 사각지대가 있다"고 말했다.
병명만을 기준으로 지원 수준을 정하는 방식도 한계가 있다. 유전체 검사가 확대되면서 같은 희귀질환 범주 안에서도 아직 증상이 거의 없는 사람부터 인공호흡기 등 의료기기에 의존하는 중증 환자까지 상태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전체 기술은 또 다른 과제도 낳았다. 현재 증상이 없더라도 미래 발병 가능성을 알 수 있고 한 사람의 검사 결과가 부모·형제자매 등 가족의 유전정보와 연결될 수 있다. 환자의 '알 권리'뿐 아니라 '모를 권리'와 미성년자의 미래 유전정보를 어디까지 확인할 것인지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목록·병명·장애등록 넘어 '환자의 필요'로
이 같은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 기존 희귀질환관리법을 전면 개정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권 교수와 환자단체 등이 논의 중인 초안은 법률 명칭을 <희귀질환 지원 및 관리에 관한 법률>로 바꾸고 이른바 '희귀질환복지법' 성격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아직 국회에 제출되지 않은 '발의 전 초안' 단계다.
핵심은 '관리 중심에서 환자 중심으로'의 전환이다. 국가 목록에 포함된 질환인지부터 따지는 방식에서 환자를 먼저 인정하는 방식으로, 장애등록 여부에서는 실제 의료적 필요로, 병명에서는 환자의 중증도로 지원 기준을 넓히자는 구상이다. 환자가 여러 기관을 직접 찾아다니는 신청 방식 대신 코디네이터와 통합신청 체계를 두는 방안도 포함됐다.
기존 장애인복지제도와 건강보험을 대체하겠다는 취지는 아니다. 국회와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기존 법체계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나왔고 이에 기존 제도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만 별도로 보완하는 '보충성'을 원칙으로 삼았다는 설명이다.
권 교수는 "장애로 커버되지 않는 것, 건강보험으로 커버되지 않는 것을 이 법에 넣겠다는 것"이라며 "안 되는 것을 해달라는 것이지 우리만 특별대우를 해달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발의 전 초안에는 아직 국가 목록에 없는 질환과 미진단 환자를 인정할 별도 경로·중증도에 따른 지원·국가 단위 희귀질환 거점·소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이행기 지원·긴급돌봄·의료적 처치가 필요한 희귀질환자를 위한 활동지원 인력 등의 구상이 담겼다.
다만 실제 발의 시점과 최종 조문은 정해지지 않았다. 환자단체 등과 약 2년간 논의를 이어왔다는 권 교수는 "올해 안에 뭐라도 발의해보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최종적으로 어느 내용이 법안에 포함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개정 논의가 향하는 지점은 질환을 지정하고 환자 수를 파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진단 이후 돌봄과 교육·성인기까지 이어지는 삶을 제도가 따라가도록 하는 것이다. 희귀질환 정책의 기준을 '질환명'에서 '환자의 실제 필요'로 옮길 수 있느냐가 향후 입법 논의의 핵심이다.
☞산정특례= 진료비 부담이 큰 암·희귀질환·중증난치질환 등 중증질환자의 의료비 부담을 덜기 위해 건강보험 본인부담률을 낮춰주는 제도다. 희귀·중증난치질환은 현재 10%이며 올해 12월 7%, 2028년 상반기 5%로 단계적으로 낮아진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또는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