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에서 깨달은 '병원 보안'의 중요성 [화제인물 최현섭 히포크랏랩스 대표]

정병선 조선일보 기자 2026. 9. 23.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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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오지로 향하는 길은 아직도 흙과 돌길의 연속이다. 작년 9월 병원 정보보안 업체인 히포크랏랩스의 최현섭 대표는 그 길을 직접 걸어 들어갔다.

히포 메디세이프가 지향하는 것은 사고가 나더라도 병원 운영이 멈추지 않도록 진료 연속성을 보장하는 일이다.

"랜섬웨어 대응을 위한 정책 가이드라인과, 투자 여력이 부족한 중소형 병원을 위한 지원책이 필요합니다. 블록체인 같은 기술에는 규제 샌드박스를, 보안 솔루션 도입에는 수가나 지원사업 같은 인센티브를 고민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희 제품이 초기 비용 없이 제공되긴 하지만, 정부 지원이 있으면 원장님들께서 더욱 관심을 가지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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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오지로 향하는 길은 아직도 흙과 돌길의 연속이다.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구간은 걸어야 하고, 마을에 닿아도 전기와 상수도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작년 9월 병원 정보보안 업체인 히포크랏랩스의 최현섭 대표는 그 길을 직접 걸어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두 가지를 얻어 왔다. 하나는 인프라라는 단어의 무게였다. 건물 하나, 지붕 하나가 생기는 것만으로 마을의 일상이 통째로 달라졌다. 비가 와도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게 됐고, 사소해 보이는 변화가 한 세대의 삶을 바꿔놓고 있었다. 최 대표가 네팔의 카트만두 근처 학교 체육관 건립에 참여하며 느낀 점이다.

"결국 사람을 지키는 건 인프라더군요. 눈에 보이는 건물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시스템이든 말입니다."

다른 하나는 산이 가르쳐 준 원칙이었다. 등반은 정상에 서는 순간이 아니라 무사히 내려왔을 때 완성된다. 아무리 준비해도 사고는 일어나기 마련이고, 그래서 산악인은 떨어질 것을 전제로 몸에 밧줄을 묶고 오른다. 진짜 실력은 사고가 났을 때 드러난다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온 최 대표는 이 두 가지를 그대로 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정확히 같은 결핍을 발견한다. 가장 민감하고 값비싼 데이터를 다루는 조직인데, 정작 그것을 지킬 사람도, 사고가 났을 때 되돌아올 길도 없었다. 엄홍길 대장, 지인들과 마르디히말 트레킹을 하는 동안 인생 대화를 한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삶과 죽음이 한순간 교차하는 히말라야 원정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일상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엄 대장께선 히말라야 원정대장으로서 대원들의 생사를 책임지지만 자신 역시 사업가로 일상에서 그만한 중요한 일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최 대표가 의료기관 특화 보안 솔루션 '히포 메디세이프'를 만들게 된 출발점이다.

2026년 초, 강원대병원과 전남대병원이 잇따라 랜섬웨어 공격을 받았다. 진료 기록이 인질로 잡히고 시스템이 마비되는 사건이 반복되는 동안, 최 대표는 이 문제를 자신이 풀어야 할 숙제로 받아들였다. 의료기관 특화 보안 솔루션 '히포 메디세이프'를 서비스하는 히포크랏랩스라는 스타트업을 창업한 최현섭 대표의 사명감과 비전을 인터뷰를 통해 짚어보았다.

병원 현장에서 발견한 '보안 사각지대'

최 대표가 창업을 결심한 계기는 히말라야 산행이었다. 거창한 시장 분석이 아니었다. 병원 현장을 직접 들여다보며 마주한 사실이었다.

"의료기관은 가장 민감하고 가치 있는 데이터를 다루고 있는데, 정작 조직 대부분이 의료진으로 구성되어 있어 정보 보안 담당 인력이 없었습니다. 보통 전산실에서 겸직하는 경우가 많았죠."

가장 지켜야 할 데이터를 가장 지킬 수 없는 구조로 보관하고 있는 현실. 여기에 AI의 발전이라는 변수가 겹쳤다.

"해커는 더 강력해지고 공격 시도가 늘어나고 있는데, 의료기관의 보안 인식과 수준은 과거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 격차를 메울 솔루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가 뛰어든 시장은 참고할 선례가 거의 없는 영역이었다. 일반 기업용 보안 솔루션은 넘쳐났지만, 24시간 멈출 수 없는 시스템과 극도로 민감한 데이터, 그러나 턱없이 부족한 인력과 예산이라는 병원 특유의 조건에 맞춰 설계된 해법은 찾기 어려웠다. 벤치마킹할 모델이 없다는 것은 모든 시행착오를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고, 그 사명감이 창업의 원동력이 됐다"고 말한다.

개인 신용정보의 25배에 거래되는 의료 정보

최 대표가 이 문제를 시급하게 본 이유는 의료 데이터의 특수성에 있다.다크웹에서 의료 정보는 신용카드 정보(20달러)의 25배인 500달러에 거래된다. 가장 비싼 표적이 가장 약하게 지켜지고 있는 셈이다.

"신용카드 정보는 유출되면 폐기하면 되고,계정 정보는 비밀번호를 바꾸면 됩니다. 하지만 내 신체와 삶에 귀속되는 의료 데이터는 유출되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보험사기, 불법 약처방 등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고요."

통계도 그의 문제의식을 뒷받침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전국 의료기관 263곳(상급종합병원 41곳, 종합병원 222곳)을 조사한 결과 79.1%가 정보보안 담당 인력 부족을 호소했다. 병원 한 곳당 평균 보안 인력은 0.9명. 44곳(16.7%)은 지난해 정보보호 예산을 아예 편성하지 않았다. 상급종합병원의 평균 보안 예산(8억2,260만 원)은 종합병원(5,870만 원)의 14배로, 규모에 따른 격차도 뚜렷했다. 전체 해킹·랜섬웨어 사고의 80%가 보안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1·2차 의료기관에서 발생한다. 해커는 유명한 병원이 아니라 뚫리기 쉬운 곳을 노린다는 방증이다. 이는 방어가 아니라 '진료 연속성'에 답이 있다는 의미였다.

여기서 최 대표는 통념과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완벽한 방어를 목표로 삼지 않기로 한 것이다.

"해킹을 100% 완벽하게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계속 최신 기법이 나오고 프로그램이 발전하니까요. 방어 노력과 함께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재해·복구 개념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그가 즐겨 쓰는 비유는 안전벨트다.

"운전으로 비유하면, 교통사고를 100% 방지할 수는 없지만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는 안전벨트 같은 솔루션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히포 메디세이프가 지향하는 것은 사고가 나더라도 병원 운영이 멈추지 않도록 진료 연속성을 보장하는 일이다.

기술적으로는 두 축이다. 병원 서버에 설치되는 탐지 솔루션이 해커의 침투·랜섬웨어·서버 이상징후를 가장 먼저 잡아내고, 동시에 병원 데이터를 조각 단위로 암호화해 병원과 물리적으로 떨어진 국내 원격지에 분산 저장한다.

히포 메디세이프의 또 다른 축은 블록체인 기반 무결성 검증이다. 다만 최 대표는 흔한 오해부터 바로잡는다.

이 역량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도 쓰인다. 랜섬웨어 공격자들이 흔히 요구하는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결제에 대해, 블록체인 분석 역량으로 자금 추적이나 신고·리포트 작업까지 지원한다는 것이다.

회사는 최근 ISO27001(정보보호), ISO27799(의료정보보호), ISO27017(클라우드보안), ISO27018(개인정보보호) 모두 4종의 국제 인증을 동시에 취득했다.

최 대표가 특히 신경 쓰는 대상은 중소형 병원이다. 사고 발생 시 책임은 병원에 돌아오지만, 정작 대비할 여력이 가장 부족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를 풀기 위해 택한 방식이 서버 설치형 + 월 구독 모델이다. 기존 솔루션을 바꾸지 않고 즉시 도입할 수 있고, 초기 구축 비용도 없다. 여기에 주기적인 보안 점검과 리포트 서비스를 함께 제공한다.

"장비 관리에 리소스를 쓰지 않으면서도, 마치 보안 담당자 한 명을 둔 것처럼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규모별 병원 레퍼런스를 확보하고 실증까지 마친 상태다. 하반기에는 대형 제약회사와의 영업망 파트너십을 통해 본격적인 확산에 나설 예정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의료기관 박람회인 KHF 2026에 연사로 참여해 병원 보안과 개선점을 주제로 다룬다.

최 대표는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랜섬웨어 대응을 위한 정책 가이드라인과, 투자 여력이 부족한 중소형 병원을 위한 지원책이 필요합니다. 블록체인 같은 기술에는 규제 샌드박스를, 보안 솔루션 도입에는 수가나 지원사업 같은 인센티브를 고민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희 제품이 초기 비용 없이 제공되긴 하지만, 정부 지원이 있으면 원장님들께서 더욱 관심을 가지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보 보안은 병원 생존과 직결

그가 자주 언급하는 사례가 있다. 최근 미국에서 100년이 넘은 병원이 랜섬웨어 공격으로 결국 문을 닫았다. 보안이 곧 병원의 생존 문제라는 사실을 보여 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아무도 만들지 않은 시장에서 홀로 길을 내는 일은 여전히 고되다. 하지만 최 대표가 그리는 그림은 명확하다.

"저희가 만들고 싶은 미래는, 의료진과 병원 관계자들이 보안 사고로 인한 병원 운영을 걱정하지 않고 진료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언젠가 다시 밟고 싶은 땅이 있다. 흙길을 걸어 들어갔던 히말라야의 마을들이다.

"네팔처럼 의료 인프라가 닿지 않는 곳들이 있습니다. 지금 국내 병원 현장에서 쌓고 있는 기술과 경험이 단단해지면, 언젠가 그런 곳의 의료 데이터와 의료 인프라를 지키는 일에도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결국 제가 산에서 배운 것을 돌려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병원 서버 한 대의 이상징후를 감지하는 일에서 시작된 그의 도전은, 이제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 전체의 안전망을 설계하는 일로, 그리고 그 너머 더 먼 곳으로 향하고 있다.

월간산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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