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약 사려면 차로 20분”… 전국 읍면동 29% 약국 없는 ‘무약촌’

이채완 기자 2026. 9. 23. 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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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저녁에 갑자기 배가 아파도 동네는 물론 면사무소 소재지에도 약국이 없어 어려움이 많습니다."

동향면처럼 약국이나 상비약 판매 편의점이 없는 일명 '무약촌'이 전국에 1453곳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북과 전남광주는 읍면동 10곳 중 4곳 이상이 무약촌인 것으로 파악됐다.

전북은 읍면동 410곳 중 180곳이 약국과 의약품을 파는 편의점이 없어 무약촌 비율이 43.9%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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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전남광주-경북 10곳중 4곳꼴
고령층 많은 농어촌 환경 더 나빠
정부, 편의점 상비약 확대 추진
약사단체 “의약품 오남용 우려”
경기도의 한 병원에서 시민들이 진료를 대기하고 있다. 뉴스1
“주말 저녁에 갑자기 배가 아파도 동네는 물론 면사무소 소재지에도 약국이 없어 어려움이 많습니다.”

22일 전북 진안군 동향면 자산리 용암마을 조용환 이장(70)은 응급 상황이 생기면 약을 구하기 어렵다며 이렇게 토로했다. 공중보건의가 근무하는 평일 나흘 동안은 보건지소에서 진료를 받고 약을 받을 수 있지만, 나머지 사흘은 근처에 약을 구할 곳이 없다는 것. 조 이장은 “긴급히 약이 필요할 경우 승용차로 약 20분 거리인 진안읍까지 나가거나 상태가 위중하면 차로 약 50분 거리인 전주까지 이동해야 한다”고 했다.

동향면처럼 약국이나 상비약 판매 편의점이 없는 일명 ‘무약촌’이 전국에 1453곳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읍면동(법정동 기준) 10곳 중 3곳 정도가 무약촌인 것. 특히 전북과 전남광주는 읍면동 10곳 중 4곳 이상이 무약촌인 것으로 파악됐다.

● 전국 동네 10곳 중 3곳은 ‘무약촌’

2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태호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약국이나 상비약을 판매하는 편의점이 없는 지역은 전체 읍면동 5067곳 중 1453곳(28.7%)이었다.

지역 간 편차도 심각했다. 전북은 읍면동 410곳 중 180곳이 약국과 의약품을 파는 편의점이 없어 무약촌 비율이 43.9%에 달했다. 이어 전남광주(42.1%), 경북(39.4%), 대전(37.9%), 경남(35.2%) 등의 순이었다. 반면 서울은 467개 동 가운데 36곳(7.7%)만 약국이나 의약품 판매 편의점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부산은 7.8%, 경기도는 13.8% 수준이었다.

문제는 무약촌이 고령 인구가 많은 곳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동향면은 주민 1340여 명의 평균 연령이 60.3세다. 조 이장은 “어릴 때는 동네에 약국도 한의원도 있었는데 인구가 줄면서 약국이 없어진 지 수십 년은 더 된 것 같다”고 했다.

섬 지역은 상황이 더 열악하다. 군산에서 뱃길로 70여 km 떨어진 어청도엔 주민 300여 명이 살지만 약국이 없다. 평일엔 보건지소 공중보건의에게 약 처방을 받을 수 있지만 주말엔 불가능하다. 김성래 전 이장(72)은 “21일만 해도 응급 헬기가 두 대나 떴다”며 “주말에도 보건지소를 운영하는 방안을 자치단체에 건의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올 6월 기준 전국에 운영 중인 2만5890개다. 서울은 지난해 5866곳에서 올해 5926곳으로, 부산은 1725곳에서 1735곳으로, 경기는 6029곳에서 6096곳으로 증가했다. 반면 전남광주는 857곳에서 852곳으로, 경북도 1144곳에서 1142곳으로 줄어드는 등 지역 간 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태호 의원은 “의료 강국을 자부하는 대한민국에서 무약촌이 30%에 달한다는 것은 복지부가 지역의료의 기본조차 챙기지 못했다는 방증”이라며 “가능한 모든 방안을 검토해 의료 취약지역의 의약품 접근성을 높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편의점 약 확대 정책은 약사회가 반대

정부는 무약촌 주민들이 약을 쉽게 구할 수 있도록 편의점에서 파는 안전상비의약품(상비약) 종류를 늘리고, 약 배송 대상을 모든 비대면 진료 환자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약사단체가 두 사안을 모두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복지부는 올 7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상비약 품목을 해열진통제, 감기약, 소화제, 파스 등 11개 품목에서 올 하반기(7∼12월) 중 최대 20개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약국과 24시간 편의점이 모두 없는 지역에서는 일반 소매점에서도 상비약을 판매할 수 있도록 기준을 완화할 방침이다.

올 12월 시행되는 개정 의료법이 비대면 진료 후 약 배송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을 섬·벽지 주민, 장기 요양급여 수급자, 등록 장애인, 감염병·희귀질환 환자 등으로 제한하고 있는 만큼 정부는 전체 비대면 진료 환자로 넓히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약사단체는 의약품 오남용 우려 등을 이유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광민 대한약사회 부회장은 “필수의료나 취약계층을 위한 게 아닌 비급여 약을 손쉽게 사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며 “이미 의료계·약계 등 각계에서 합의된 것을 흔드는 정책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약사회는 복약 지도가 가능한 공공심야약국을 확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진안=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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