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메뉴판 못 읽고 젓가락은 불편…이주노동자 돕는 ‘따뜻한 포크’

신동섭 기자 2026. 9. 23.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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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소외 없도록 작은 배려 빛 발해
울산노동약자지원사업단 ‘온’
문화적 차이와 언어 장벽 해소
이주노동자 포크 나눔 캠페인
언어별 메뉴판도 전달 예정
▲ 2026 달천농공단지협의회와 달천공동식당이 함께하는 이주노동자 포크나눔 캠페인이 22일 울산 북구 달천농공단지 일원에서 열렸다. 울산노동약자지원사업단 '온' 제공

민족 대명절 추석을 앞둔 22일 울산 북구 달천농공단지.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노동자들이 삼삼오오 단지 내 공동식당과 분식집 등으로 모여들었다. 얼큰하고 자극적인 냄새가 식당을 채웠지만, 배식구 앞에 선 이주노동자들의 표정에는 설렘보다 묘한 긴장감이 엿보였다.

식탁에 앉은 이들의 식사 풍경은 이색적이었다. 미끄러운 쇠젓가락은 반찬 위에서 헛돌기 일쑤였고, 결국 젓가락은 숟가락 위로 음식물을 쓸어 담는 '보조 도구'로 전락했다.

식당에서 만난 구마르(30·네팔)씨는 "젓가락질이 어려워 숟가락으로 대부분 식사한다"고 말했다.

특히 메뉴가 한글로만 적혀 있는 경우가 많아 새로운 메뉴가 나오더라도 이들이 선택하는 반찬과 음식 메뉴는 치킨까스나 라면 등 일부 음식으로 한정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식탁 위에 놓인 언어 장벽이 '한 끼' 선택권까지 축소하는 모습이었다.

해리(32·인도네시아)씨는 "메뉴판을 보더라도 전부 한글이라 자주 먹는 라면이 아니라면 '찍기'를 할 수밖에 없다"며 "일단 먹어보고 입에 안 맞으면 다음부터 안 먹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글 메뉴판은 단순한 반찬 투정의 문제가 아니다. 종교적 신념(이슬람교·힌두교 등)이나 알레르기 같은 건강상의 이유로 특정 식재료를 엄격히 가려야 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식재료를 파악할 수 없는 '까막눈' 식사는 매끼 조심스럽고 난감한 탐색전이다. 한 번 먹어보고 입맛에 맞은 음식만을 계속해서 선택하는 것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이 같은 모습을 지켜보던 지역 사회단체가 낯선 타국, 50인 미만의 영세 사업장에서 땀 흘리는 '동료'들의 밥상 소외를 달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이날 식당 앞에서는 울산노동약자지원사업단 '온(溫ON)' 주관으로 '모두의 명절, 이주노동자 포크나눔 캠페인'이 열렸다.

공공상생연대기금, 금융산업공익재단, 사무금융우분투재단, 전태일재단 등 노동권익재단이 뜻을 모은 이번 행사는 거창한 구호 대신 가장 실용적인 작은 배려를 택했다. 식당 측에 이주노동자를 위한 포크를 전달한 것이다.

작은 도구 하나의 차이일 뿐인데 이주노동자들은 이를 반겼다. 변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캠페인단은 내달 초 공동식당 등에 다국어로 제작된 '언어별 식당 메뉴판'을 전달할 계획이다. 번역된 메뉴판 도입 소식이 전해지자, 현장의 이주노동자들은 "이제 새로운 메뉴가 나오더라도 찍기를 안 해도 될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며 웃었다.

울산 노동약자지원사업단 온(ON) 관계자는 "이주노동자를 위한 지원은 특별한 누군가를 위한 일이 아니라, 우리 지역에서 함께 일하고 살아가는 동료의 일상을 살피는 일"이라고 조언했다.

신동섭기자 shingiza@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