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도심에 출몰한 ‘세로·늑구·상구’

어수웅 논설위원 2026. 9. 22.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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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일이라 다들 잊었는지 모르겠다. 다세대 주택 빽빽한 서울 구의동 골목길에서 택배 오토바이와 마주보고 있던 얼룩말. 어린이대공원 울타리를 부수고 탈출했던 ‘세로’였다. 3시간 30분 동안 도심을 유유히 거닐었던 세로는 마취총 7발을 맞고서야 생포됐다. 부모 여의고 반항기 겪다가 탈출했다는 사연이 알려지며 세로는 대중의 연민을 샀다.

▶지난 봄의 주인공은 ‘늑구’였다. 대전 동물원을 탈출한 녀석은 관리번호에 따라 늑구로 불리며 9일 동안 도심 야산을 누볐다. AI 합성사진 탓에 소방관들은 엉뚱한 곳에서 허둥지둥했다. 가히 신드롬 수준이었다. 온라인에는 AI로 만든 ‘늑구 대전마라톤’ ‘늑구 시티투어’ ‘늑구 탈출로 트래킹’ 이미지가 확산됐다. 대전의 한 빵집은 ‘늑구빵’을 내놓았고, 무사 생포 뒤 전광판에는 “돌아와 고맙다”라는 문구가 걸렸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를 ‘한화 울브스(늑대들)’로 바꾸자는 농담도 있었다.

▶이번에는 부산의 길 잃은 상어다. 늑구처럼 친숙하게 ‘상구’로 부르자는 사람도 있고, 북항 친수 공원 수로에 들어왔다고 ‘부캉’으로도 부른다. 지난 18일 처음 발견된 상어를 보겠다고 3만명 넘는 인파가 몰렸다. 생닭을 주려다 쫓겨난 시민도 있다고 한다. 인공 수로에 넘쳐나는 숭어와 정어리를 잡아먹는 모습에 시민들은 열광했다. 바로 앞 카페 주인은 손님이 두 배 늘었다며 “상어야 고마워”라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한 네티즌은 “생닭 협찬 받고 카페 뒷광고에 정어리 바이럴까지… 팔다리 있었으면 롯데자이언츠 시구도 했겠다”고 썼다.

▶원래 문학과 역사에서 도심에 출현한 야생동물은 불길한 징조나 격퇴해야 할 위험으로 인식되곤 했다.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의 풍경은 조금 다른 것 같다. 무서운 포식자가 아니라 동글동글한 일러스트와 유쾌한 짤(meme)이 무한 복제되며 귀여운 캐릭터로 소비된다. 현장을 찾은 아이들은 인기 동요 ‘상어가족’을 함께 부르며 이 생소한 불청객을 환영한다.

▶현대인이 이 도심의 탈주자들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단지 희귀한 구경거리여서만은 아닐 것이다. 사춘기에 울타리를 부순 세로, 좁은 사육장 벗어나 도심을 질주한 늑구, 그리고 부산의 ‘숭어·정어리 뷔페’를 찾아온 상구까지.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빡빡한 일상과 정해진 궤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스스로를 떠올린 것일까. 우리 마음엔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고자 하는 자신만의 세로와 늑구와 상구가 숨어있는 지도 모르겠다.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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