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놀며 살아가는 곳, 남해라는 든든한 울타리 [박수진의 나를 살린 사람들]

박수진 남해 아마도책방 책방지기·귀촌 전문가 2026. 9. 2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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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가 궁금한 청년들을 위해 갖가지 일을 기획하고 꾸려가는 친구들. 일할 때는 진지하지만 놀 때는 모두 장난꾸러기가 되는 친구들.

-두 사람 모두 남해에 온 지 오래되었네요.

손님도, 일하는 사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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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이터를 만드는 사람들, 유지황 & 오린지

상주면 두모마을 사는 두 30대
팜프라 창업해 이주 청년 지원
직접 지은 집들 숙소로 운영
자연 만끽하는 러닝대회 준비

존재 자체로 어르신들 품 넉넉
도시·국외로 나가도 돌아올 곳

어릴 적 갔던 할머니 댁처럼
늘 여기 지키는 존재 되고파
인터뷰하는 유지황(왼쪽) 씨와 오린지 씨. /박수진

시골살이가 궁금한 청년들을 위해 갖가지 일을 기획하고 꾸려가는 친구들. 일할 때는 진지하지만 놀 때는 모두 장난꾸러기가 되는 친구들. 자연을 사랑하고, 남해를 누구보다 아끼는 친구들. <나를 살린 사람들> 여섯 번째 인터뷰로, 팜프라의 유지황(39) 씨와 오린지(35) 씨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상주면 두모마을에 살고 남해에 온 지 8년 차가 된 오린지입니다. 두모마을은 50가구 정도 되는 작은 마을인데, 2019년에 팜프라에서 하는 집 짓기 워크숍 참여자로 왔다가, 팜프라촌 멤버로 제안받아서 지금까지 왔네요." (오린지, 이하 오)

"저도 두모마을에 살고 있고, 유지황이라고 합니다. 2019년 팜프라를 창업했고요. 사업을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지역이 사라지는 이슈에 대해서 내가 대안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왔어요." (유지황, 이하 유)

-두 사람 모두 남해에 온 지 오래되었네요. 둘이 처음 만났던 날, 혹시 기억나?

"원래 작은 집 짓는 것에 막연히 관심이 있었는데, 친구가 남해에서 집 짓기 워크숍을 한다고 알려줘서 오게 됐어요. 처음 지냈던 곳이 상주중학교 오래된 건물이었는데, 바퀴벌레가 나오고 정말 사람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었어요. 그래도 남해가 좋아서 한 달을 다 채웠고, 그때 끝까지 남은 사람이 저밖에 없었어요. (웃음)" (오)

"린지를 처음 봤을 때, 도시에서 온 하얗고 밀가루 같은 친구가 이걸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린지는 늘 햇빛 아래서 힘들어했던 기억이 나요. 모자를 눌러쓰고 비실대고 있었죠. 그래도 그 안간힘이 신기했어요." (유)
오린지 씨. /박수진
유지황 씨. /박수진

-둘의 상반되는 이미지가 재미있네. 그럼 이제 팜프라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줄래?

"팜프라는 팜(Farm)과 인프라(Infra)를 합친 이름이에요. 도시에서 촌으로 이주를 꿈꾸는 청년들을 위한 인프라를 만들어 가겠다는 포부를 담았어요. 지금은 팜프라촌이라는 마을 형태의 공간이 있고, 그 안에 저희가 직접 지은 집들을 숙소로 운영하고 있어요. 지역에 필요한 이벤트나 프로그램도 기획하고요." (오)

"처음에 아무것도 없이 호기롭게 남해에 왔기 때문에 기반을 만들어야 했어요. 공유지를 활용해서 청년들이 지역에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사례를 만드는 게 시작이었고, 지금은 인간이 어떻게 하면 자연과 더 가까이 살 수 있을지를 제안하고 있어요. 최근에 시작한 달리기 대회도 그 연장선이고." (유)

-팜프라에 많은 사람이 다녀갔잖아. 손님도, 일하는 사람도. 사람들이 계속 오가는데, 늘 이곳을 지키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어떤 마음이야?

"초반에는 사람들이 떠나기만 한다는 게 힘들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떠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힘들까 싶더라고요. 저도 언젠가 떠날 텐데 영원한 관계는 없겠구나 싶었죠. 요즘은 그냥 계속 여기 있는 존재가 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어릴 때 시골 외할머니 댁에 무조건 가던 것처럼, 제가 그런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나쁘지 않더라고요." (오)

"지금 세보니 현재까지 스물다섯 명 정도가 팜프라를 거쳐 간 것 같은데, 그중 팜프라와 여전히 연결되어 있는 관계는 많지 않네요. 놀이터를 만들어서 누구를 놀게 하는 건 좋은데, 놀이터를 만드는 사람들을 관리하는 일은 나에게 적합한가, 하는 생각도 가끔 해요." (유)

-요즘에는 트레일 러닝에 푹 빠져 있는 것 같은데, 10월에 준비하고 있는 대회도 소개해 준다면?

"'요즘에는'이 붙은 게 굉장히 마음에 드네요. 유지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거여서. (웃음) 통영에서 나고 자라면서 가장 강한 나의 정체성은 자연에서 노는 거였어요. 개구리 잡고 바다 수영하고 갯벌에서 조개 캐서 할머니들한테 팔던 기억. 그게 지금 하고 있는 일로도 이어진 것 같아요. 트레일 러닝도 같은 맥락이에요. 걷는 건 너무 오래 걸려서 지겹고, 차를 타면 자연 안에 온전히 들어가지 못하는데, 뛰면 자연을 온전히 느낄 수 있더라고요. 저는 누가 안 해본 걸 해야 직성이 풀리는 병이 있어서, 남해에서 아무도 안 한 250㎞라는 거리를 설정했어요. 지금까지 뛴 걸 다 합치면 600㎞ 정도 되는 것 같아요. 10월 31일에 'Run to Village'라는 대회를 열고, 11월 중순쯤 소규모로 250㎞를 해볼까 생각 중이에요." (유)
유지황(왼쪽) 씨와 오린지 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수진
유지황(오른쪽) 씨와 오린지 씨. /박수진

-사장님으로서 지황은 어떤 사람이야? 성향이 다른 두 사람이 이렇게 오래 함께 일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뭐라고 생각해?

"지황은 늘 새로운 걸 도전하는, 모험심 강한 사람이에요. 저는 제 삶을 그렇게 살지는 않지만, 콘텐츠 측면에서는 저도 남들이 하지 않는 걸 하고 싶어 해서 그 지점이 일치하는 듯해요. 저는 귀촌을 해야겠다거나 뭔가를 꼭 이뤄야겠다는 마음이 별로 없어서, 기대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오래 함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오)

-지황님이 본 린지님은 어때?

"라이프스타일이라고 해야 하나, 살아가는 방식이 끝과 끝에 있는 느낌이랄까. 나는 늘 전력 질주만 하는 사람이라면 린지님은 힘들면 그냥 터벅터벅 걸어오는 사람인 거죠. 그래서 처음에 좀 충격 받았어. 갈궈도 갈궈지지도 않고. (웃음) (린지: 왜냐하면 나는 할 만큼 최선을 다했거든.) 자신을 소중하게 대하고 쉬어야 할 때 쉬게 해주는 방법을 린지한테 많이 배웠지. 지금도 배우고 있고." (유)

-남해에서 지낸 지도 시간이 꽤 됐잖아. 나 역시 책방지기에서 직장인으로, 직장도 생활환경도 조금씩 변하고 있는데, 둘은 어때?

"초반에는 팜프라 멤버로서의 오린지가 전부였는데, 이제는 그 외의 오린지도 존재하는 것 같아요. 내년에는 팜프라가 없는 오린지, 팜프라 밖의 오린지는 어떨지 궁금해서 조금씩 시도해 보려고요." (오)

"저는 이 규모에서 해볼 건 충분히 해봤고, 배울 것도 거의 다 배운 듯해요. 기획자로서도, 사업자를 운영하는 대표로서도요. 여전히 못 해본 건 제가 지은 집에서 사는 거예요. 그건 내년쯤엔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유)

-남해에서 지내면서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어? '이 사람 덕분에 내가 여기서 잘 살고 있구나' 싶었던 순간이 있다면?

"두모마을 어르신들이요. 이 더위에도 당산나무 아래서 겨울에 쓸 통발을 수리하시는 어른들이 계시는데, 그럴 때 시원한 커피 한 잔 갖다드리면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눠요. 존재 자체로 저를 안아주는 느낌. 어른들 품에서 보호받고 있으니, 밤에 깜깜한 마을을 돌아다닐 때도 하나도 안 무서워요." (오)

"저는 이장님, 사무장님, 마을 분들, 그리고 팜프라를 거쳐 간 사람들 모두요.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이장님, 사무장님이나 같이 일하는 공무원분들, 종종 찾아와 주는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여기서 오래 못 살았을 것 같아요." (유)
이야기를 나누는 유지황(왼쪽) 씨와 오린지 씨. /박수진

-존재 자체로 안아준다니, 너무 좋다.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구나' 느꼈던 순간이 있다면?

"지황에게 제일 잘 했죠. (웃음) 멤버들이랑 지황이 갈등이 생겼을 때 얘기 들어주고, 중재하고. 아까 지황이 말했던 대로 우리가 여기 계속 있어서 와주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외할머니 댁에 놀러 오듯이, 변하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있어 주는 사람으로서 있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오)

"저는 우리 동료들. 연락도 자주 하고, 그 사람들이 요즘 뭐가 힘들까 자주 생각해요. 반대로 지금은 사이가 멀어진 사람들에 대한 아쉬움도 커서 종종 생각해요." (유)

-삶 전체를 통틀어 '지금의 나'를 살게 해준 사람을 한 명 떠올린다면 누구야?

"지황이요. 저는 지황과 팜프라가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을 사람인데, 이렇게까지 하는 게 스스로도 신기해요. 스트레스 받으면 안 하겠다고 하는 성격인데 계속하고 있는 걸 보면, 저의 어떤 한계를 넘게 만드는 사람인 것 같아요." (오)

"저는 저 자신이요. 고통과 짜릿함을 항상 같이 짊어지고 가는 친구 같다고 할까요. 일본을 한 바퀴 돌고 싶다거나, 한국의 100대 명산을 자전거로 돌고 싶다, 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 보면요." (유)

-마지막으로, 둘에게 남해는 어떤 곳이야? 앞으로 남해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어?

"첫인상과 지금의 인상이 똑같아요. 2019년 5월, 처음 집 짓기 워크숍을 하러 왔을 때 상주 해변을 보고 여기 정말 좋다, 나에게 잘 맞는다고 느꼈는데 지금도 그 느낌 그대로예요. 앞으로는 팜프라 소속 오린지가 아니라, 그냥 남해에 사는 오린지로서의 시간을 보내보고 싶어요." (오)

"다른 지역을 오갈 때마다 여전히 남해는 기가 막히게 예쁘다는 생각을 해요. 다른 시골에 산다고 해도 남해가 아니면 안 살 것 같고, 언젠가 도시나 외국에서 잠깐 살다가도 결국 다시 돌아올 것 같아요. 앞으로는 제 집을 짓고 싶고, 아직 못 가본 길이 있으니 그것도 마저 가보고 싶어요. 팜프라도 딱 10년을 채웠으니, 그동안 해왔던 것들과 배운 것들을 책으로 한번 정리해 보고 싶습니다." (유)
유지황(왼쪽) 씨와 오린지 씨. /박수진
유지황(오른쪽) 씨와 오린지 씨. /박수진
인터뷰 내내 서로의 말끝에 계속 딴지를 걸고, 농담을 던지며 티키타카를 이어가는 두 사람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만큼 서로를 잘 알기에 가능한 일이겠지. 팜프라는 회사이자 놀이터이고, 두모마을은 그들을 넉넉히 품어주는 안전한 울타리가 아닐까. 먼저 동료가 되자고 손 내밀어준 그들에게 감사하며, 팜프라의 모든 앞날을 열렬히 응원한다.

/박수진 남해 아마도책방 책방지기·귀촌 전문가

☞ 필자는 아름다운 섬 남해를 닮고 싶은 작은 서점, 아마도책방을 운영한다. 반려묘 바람, 노을, 별, 달과 함께 남해에서 어느덧 열 번째 해를 맞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