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대경 부안군문화재단 대표 "부안만의 특별한 자원, 사람·공간으로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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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해 겨울, 하얀 눈이 하루 종일 내려 종아리까지 쌓이던 날.
그로부터 10여년이 흘러 부안군문화재단의 대표이사로 부안과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된 정대경은 어쩌면 그날 시장에서의 물메기탕 한 그릇이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고 회고했다.
정대경 부안군문화재단 대표이사(이하 정대경 대표): 부안에 와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문화자원이 부족한 지역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문화자원이 곳곳에 풍부한 지역이라는 점이다.
동시에 부안의 문화자원을 발굴하고 새롭게 해석해 관광과 지역경제로 연결하는 것도 재단의 중요한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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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해 겨울, 하얀 눈이 하루 종일 내려 종아리까지 쌓이던 날. 뮤지컬 '결혼'의 연출가였던 정대경은 공연을 앞두고 출연진들과 함께 전북 부안의 신시장 골목을 찾았다.
일행의 허기와 추위를 달래준 음식은 물메기탕. 바닷가에 자리잡은 지역에서는 겨울철 흔히 맛 볼 수 있는 물메기탕이었지만 이날 정대경이 마주한 부안의 물메기탕은 특별했다.
눈 내리던 날 소박한 한 그릇의 물메기탕은 그렇게 정대경의 마음 깊숙한 곳에 '부안'이라는 지역을 아로 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흘러 부안군문화재단의 대표이사로 부안과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된 정대경은 어쩌면 그날 시장에서의 물메기탕 한 그릇이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고 회고했다.
<프레시안>은 곧 취임 6개월을 맞는 정대경 부안군문화재단 대표이사를 만나 취임 이후의 변화와 앞으로의 과제, 부안과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을 향한 무한한 애정을 들어봤다.

정대경 부안군문화재단 대표이사(이하 정대경 대표): 부안에 와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문화자원이 부족한 지역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문화자원이 곳곳에 풍부한 지역이라는 점이다. 변산반도와 바다, 섬과 갯벌이라는 천혜의 자연환경이 있고, 매창과 신석정으로 이어지는 문학적 자산도 있다. 내소사와 개암사 같은 문화유산, 동학을 비롯한 역사적 자원, 마을마다 이어져 온 생활문화와 전통문화, 음식과 농어업 문화까지 살아 있다.
다만 이런 자원들이 각자의 영역에 머물러 서로 충분히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아쉽다. 저는 취임하면서부터 ‘점을 선으로, 선을 면으로’라는 말을 자주 했다. 새로운 것을 무조건 만들어내기보다 이미 부안에 존재하는 문화자원과 사람, 공간을 찾아내고 연결하는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과제는 문화창작 기반이다. 풍부한 문화자산에 비해 예술가와 청년들이 만나고, 머물고, 창작하고, 발표할 수 있는 거점이 충분하지 않다. 특히 부안읍에도 이런 창작 거점이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프레시안: 그렇다면 부안군문화재단은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보나.
정대경 대표: 문화재단이 단순히 행정의 문화사업을 대신 집행하는 기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행정과 문화예술 현장은 일하는 방식도,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다. 예술인과 군민 사이에도 때로는 거리가 있다. 문화재단은 그 사이에서 행정과 현장, 예술가와 군민, 공간과 사람을 연결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지역 예술인에게는 지속적으로 창작하고 발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군민에게는 일상 가까이에서 문화를 경험하고 참여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동시에 부안의 문화자원을 발굴하고 새롭게 해석해 관광과 지역경제로 연결하는 것도 재단의 중요한 역할이다. 결국 문화재단의 존재 이유는 행사를 많이 만드는 데 있지 않다. 문화가 군민의 삶에 가까이 들어가고, 문화예술 활동이 지역의 새로운 활력으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것이 재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취임 이후 실제로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군민이 체감할 만한 변화가 있었나.
정대경 대표: 지난 160여일은 성과를 완성했다고 말하기에는 짧지만, 재단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을 세우고 변화를 시작하기에는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우선 기존 사업들을 개별적으로 바라보기보다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공연은 공연으로, 축제는 축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공간과 사람, 관광과 생활문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역 예술인과 주민, 문화활동가들을 만나면서 재단에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현재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고 있다. 그 과정에서 부안에 필요한 문화창작 기반에 대한 구상도 구체화하고 있다. 취임 뒤 가장 큰 변화라면 특정 행사 하나의 성과보다는 재단의 시선을 개별 사업에서 부안 전체의 문화생태계로 넓혀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현장 예술인들을 만나면서 확인한 요구는 무엇이었나. 재단은 어디까지 역할을 할 수 있나.
정대경 대표: 지역 예술인들과 만나보면 지원금도 중요하지만 창작할 수 있는 공간과 발표할 기회, 자신의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요구가 크다는 것을 느낀다. 한 번의 공연이나 전시를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활동이 다음 창작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재단이 모든 예술가의 창작을 직접 지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창작하고, 만나고, 발표하고, 다시 새로운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판을 만드는 것은 재단이 해야 할 일이다.
세대 간 연결도 중요한 과제다. 오랫동안 부안의 문화를 지켜온 예술인들의 경험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청년 예술인과 새로운 창작자들이 들어올 수 있는 문도 열어야 한다. 기존 예술인과 새로운 세대가 경쟁하는 구조가 아니라 경험과 새로운 감각이 만나 서로에게 힘이 되는 문화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재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정대경 대표: 부안은 풍부한 문화자산에 비해 예술가와 청년들이 만나고 머물며 창작하고 발표할 수 있는 기반이 부족하다. 부안읍에는 지역 예술인과 청년, 문화활동가들이 만나 창작하고 교류할 수 있는 중심적인 문화창작 거점이 필요하다. 단순히 공간 하나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창작과 교류, 발표가 새로운 활동으로 이어지는 플랫폼이 돼야 한다.
위도 역시 주목하고 있다. 위도는 아름다운 자연환경뿐 아니라 띠뱃놀이와 조기파시의 기억 등 역사와 생활문화가 풍부해 창작의 소재가 될 수 있다. 많은 문화예술인과 젊은 창작자들이 부안을 찾아와 창작하고 머물며 다시 찾아오게 하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처음에는 며칠간의 방문이나 몇 달간의 창작활동일 수 있지만, 그런 경험과 관계가 쌓이면 장기적인 체류와 정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창작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거주공간을 비롯해 창작의 여가를 활용한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정착 기반에 필요한 제도적 지원책도 제공하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국가적으로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이 가능한 정책들을 꼼꼼하게 챙겨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재단이 나서고 싶다.
프레시안: 위도를 별도의 문화창작 거점으로 구상하는 이유와 구체적인 계획은 무엇인가.
정대경 대표: 위도는 무엇인가를 새로 만들어 넣어야 하는 빈 섬이 아니다. 이미 자연과 역사, 생활문화라는 훌륭한 창작자원을 품고 있다. 이곳에 예술가의 시선과 창작활동이 더해진다면 예술가들이 머물며 작업하고 주민과 교류하는 특색 있는 문화창작 거점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년에는 예술인들이 직접 위도에 머물며 섬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팸투어를 비롯한 시범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당장 무엇을 크게 만들어놓기보다 예술가들이 직접 와서 보고, 머물고, 주민을 만나고, 그곳에서 무엇을 창작할 수 있을지를 함께 찾아가는 과정부터 시작하고 싶다.
이런 시도는 위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변산과 새만금 등 부안의 자연환경 자체를 문화예술의 무대로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 어린이와 어르신을 위한 사업에 비해 청년문화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어떻게 풀어갈 생각인가.
정대경 대표: 취임 후 부안을 바라보면서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느낀 부분이 청년층의 문화다. 제가 요즘 자주 하는 고민이 하나 있다.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나고 거리가 하나둘 어두워지는 부안읍에서 우리 청년들은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즐길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청년에게 문화는 거창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친구를 만나고, 음악을 듣고, 작은 공연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보는 것도 문화다.
청년문화는 재단이 프로그램을 만들어 일방적으로 제공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먼저 청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듣고, 음악·미술·공연·영상 등 그들이 직접 만들고 즐기며 만날 수 있는 판과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청년들이 문화를 즐기기 위해 부안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부안에서도 저녁이 기다려지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고, 가보고 싶은 공간이 있는 문화환경을 만들어보고 싶다.
프레시안: 청년뿐 아니라 어린이·청소년·중장년·노년층까지 아우르는 ‘군민이 체감하는 문화재단’은 어떻게 만들 것인가.
정대경 대표: 문화재단은 특정 세대나 문화예술인만을 위한 기관이어서는 안 된다. 어린이와 청소년부터 청년, 중장년과 노년에 이르기까지 생애 전반에 걸쳐 문화를 경험하고 직접 참여할 기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재단은 기존의 꿈의 무용단과 꿈의 극단은 물론 올해 처음 시작한 미술 기반의 ‘꿈의 스튜디오’까지 어린이와 청소년의 예술적 경험과 창작 기회를 넓히는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시니어 극단과 합창단, 다듬이 난타 등 중장년과 노년층이 직접 문화예술 활동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사업도 이어가고 있으며, 문화시설과 거리가 있는 지역을 찾아가는 공연도 지속하고 있다. 이제는 상대적으로 비어 있는 청년문화의 영역도 채워야 한다. 아이에게는 예술을 처음 만나는 경험을, 청년에게는 즐기고 창작할 수 있는 문화를, 중장년과 어르신에게는 직접 참여하며 삶의 활력을 얻는 문화를 제공하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군민이 체감하는 문화재단’이다.
프레시안: 문화자원을 관광과 지역경제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정대경 대표: 부안의 문화적 경쟁력을 자연경관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포 김구선생에서 매창과 신석정으로 이어지는 문학, 내소사와 개암사 같은 문화유산, 동학의 역사, 위도의 띠뱃놀이와 조기파시, 곰소와 줄포의 생활문화, 음식과 농어업 문화 등 다양한 자원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것들을 각각의 관광자원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문학이 음악과 공연을 만나고, 문화유산과 역사가 오늘의 이야기와 만나며, 바다와 섬의 삶이 예술과 만나고, 음식과 농수산물이 관광과 연결돼야 한다.
음식도 중요한 문화자산이다. 백합이나 곰소젓갈처럼 잘 알려진 먹거리뿐 아니라 부안 사람들이 오랫동안 먹어온 음식과 식재료, 그것을 만들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발굴한다면 훌륭한 문화콘텐츠가 될 수 있다. 관광객에게 단순히 “무엇을 보러 오십시오”라고 해서는 오래 머물게 할 수 없다. 보고, 듣고, 먹고, 체험하고,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체류시간이 늘어나고 숙박과 음식, 지역 상권과 농수산물 소비로 이어질 수 있다.
제가 생각하는 ‘부안다운 문화콘텐츠’는 부안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콘텐츠다. 자연과 문학, 역사와 문화유산, 예술과 음식, 사람의 이야기를 연결해 문화가 관광이 되고 관광이 다시 지역의 활력과 경제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대경 대표: 제 이름이 붙은 사업 하나를 남기는 것이 목표는 아니다. 임기가 끝났을 때 “그 시기를 지나면서 부안의 문화가 서로 연결되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제가 이야기해 온 ‘점(點)을 선(線)으로, 선을 면(面)으로’라는 생각도 결국 그것이다. 문학은 음악과 공연을 만나고, 공연은 축제와 만나며, 축제는 관광과 만나고, 관광은 음식과 숙박, 지역산업으로 이어져야 한다. 자연과 역사, 문화유산도 오늘의 문화와 만나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연결의 중심에는 부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또 하나 기반을 만들어놓고 싶은 것이 문화창작 거점이다. 부안읍에는 중심적인 문화창작 거점의 기반을 마련하고, 위도에서는 섬이 가진 가능성을 살려 예술가들이 머물고 창작하며 지역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고 싶다. 특히 청년들이 부안에서 문화를 즐기고 직접 만들어갈 수 있는 환경을 넓히고 싶다. 청년이 지역을 떠나는 문제를 문화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젊은 사람이 살아가고 싶은 지역이 되려면 일자리와 주거뿐 아니라 일상의 즐거움, 만날 사람, 머물 공간, 자신을 표현할 기회도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저녁이 되면 조용해지는 부안이 아니라, 저녁이 되면 또 다른 문화가 시작되는 부안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
궁극적으로 제가 그리고 있는 부안은 문화 때문에 찾아오고, 문화 때문에 하루 더 머물며, 부안에 사는 사람은 문화 때문에 자신의 고장을 조금 더 자랑스럽게 느끼는 지역이다. 문화는 한 번의 큰 행사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흩어진 자원이 연결되고,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지역의 삶 속에 축적될 때 비로소 한 지역의 문화가 된다고 믿는다.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하겠다.
[김대홍 기자(=부안)(95mink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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