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모스크바는 북한식당 성업 중…"남조선 사람엔 봉사 안합네다"

김동호 2026. 9. 22.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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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도심 트베르스카야 대로변의 한 식당 앞에서 한복 차림의 앳된 여성 2명이 쌀쌀한 밤바람을 맞으면서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는 현재 최소 네 군데의 북한 식당이 영업 중이다.

그러나 러시아 내 북한 식당들은 여전히 한국인들을 문전박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북한의 주요 외화벌이 수단 중 하나인 북한 식당의 개점을 잇따라 허가한 것은 2024년 북한군 파병 이후 양측이 더 가깝게 밀착하는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징표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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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파병 전후로 1곳→4곳 급증…북러밀착 가속화 분위기 상징
'한국 사람' 밝히면 전부 퇴짜…2023년 하반기부터 한국인 문전박대
중국어하는 손님은 받아줘…'승리' 방문자 "닭요리 너무 맵다" 경험담
한복·원피스 차림 여성들 밖에서부터 호객…실내엔 공연용 악기도
러시아의 북한 식당 (모스크바=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17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도심의 북한식당 '승리'. 2026.9.22 dk@yna.co.kr

(모스크바=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지난 17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도심 트베르스카야 대로변의 한 식당 앞에서 한복 차림의 앳된 여성 2명이 쌀쌀한 밤바람을 맞으면서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승리'라고 적힌 한국어 간판을 내건 이곳은 흔한 한국식 음식점이 아닌 북한 식당이다.

이들은 입구로 다가선 기자를 "도브리 베체르"라는 러시아어 저녁 인사로 맞았다.

기자가 '예약 없이도 식사가 가능하냐'고 한국어로 묻자 "네 그렇습네다"라며 흔쾌히 끄덕였지만, '한국 사람도 괜찮으냐'는 질문에는 "남조선 사람은 봉사 안 합네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배가 너무 고프다고 한마디 덧붙여봤지만, 이미 입술을 굳게 다문 북한 직원들은 난처한 미소만 머금을 뿐이었다.

승리 식당 내부 [얀덱스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유리창 너머로 유럽풍의 인테리어, 야마하 드럼과 흰색 피아노, 자리에 드문드문 앉아 맥주를 곁들여 식사하는 손님들 등 모습만 훔쳐보고 자리를 떴다. 열린 문틈으로 여성 가수가 부르는 선전풍의 북한 가요가 들려왔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는 현재 최소 네 군데의 북한 식당이 영업 중이다. 2009년 문을 연 '고려'가 한동안 유일했지만, 2024년 북한군이 러시아군을 위해 쿠르스크 지역에 파병돼 우크라이나군과 싸운 이후로 새 음식점이 잇달아 생겼다. 파병 이후로 가속화한 북러 밀착 기류가 북한 식당 숫자로도 체감되는 셈이다.

지난해 '평양관'과 '승리'가 차례로 문을 열었고, 올해 초에는 '릉라도'가 추가됐다고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모스크바에 체류하는 한국인들이 '고려' 식당을 가끔 방문할 수 있었지만 2023년 하반기 이후 남북 관계가 경색되는 분위기 속에서 한국인 출입이 금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해 6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북한 영사관에서 북한 식당 지배인 모자가 탈출했다가 붙잡힌 사건과도 시기적으로 비슷해 내부 이탈자 단속 차원이라는 관측도 낳았다.

러시아의 북한 식당 (모스크바=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17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도심의 북한식당 '고려'. 2026.9.22 dk@yna.co.kr

한국인의 북한 식당 방문 자체는 국가보안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원칙적으로는 남북교류협력법상 접촉 사전 신고 대상이지만, 지난해 통일부가 이와 관련한 내부 지침을 폐기하면서 행정 규제도 완화된 분위기다.

그러나 러시아 내 북한 식당들은 여전히 한국인들을 문전박대하고 있다. 연합뉴스는 이들 식당의 문을 두드려봤지만, 한국인을 들여보내준 곳은 하나도 없었다.

모스크바시 남부 돈스코이 지구에 있는 '고려'를 찾아가보니, 쇼핑몰 주차장에 연결된 입구 앞에 까무잡잡한 피부의 북한인 남성 3명이 서성이고 있었다.

그중 한 명에게 다가가 "여기서 식사할 수 있나"라고 묻자, 그는 선뜻 따라오라는 시늉을 하며 출입구로 발걸음을 뗐다.

고려 식당 내부 [얀댁스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내려가는 계단에는 한복을 입은 남녀 인형이 든 액자, 금강산 혹은 칠보산 풍경을 연상시키는 북한 인민예술 화풍의 그림, 폭포와 사슴이 담긴 그림 등이 걸렸다.

기자가 "여기 한국 식당이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라고 재차 말을 건네자, 이 남성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한국 식당?"이라고 되물었다. 기자가 "조선 식당"이라고 정정했더니 "그렇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식당에 들어서니 몸에 딱 붙는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여성 접객원 3명이 나왔다. 홀에 놓인 테이블 10여개 중 2∼3개 정도만 사람들이 앉아 식사 중이었다.

하지만 한국인이라고 신원을 밝히자 "한국 손님은 봉사 안 합네다"라는 말과 함께 퇴짜를 맞았다. 잠시 후 사무실에서 나온 중년의 여성도 같은 말을 되풀이하더니 "미안합네다"라며 기자를 밖으로 밀어냈다.

북한식당 고려 내부에 걸린 액자들 (모스크바=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17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도심의 북한식당 '고려'. 2026.9.22 dk@yna.co.kr

인근 로모노소프스키 지구에 있는 '릉라도'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조용한 주택가를 걸어 식당이 있는 상가 건물에 도착하니 북한인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스쳐 지나갔다. 고된 노동에 지쳤나 싶었다.

식당은 눈에 잘 띄는 1층에 위치했지만, 간판 글자가 키릴문자로 쓰여서 금방 알아보지 못하고 몇분을 헤매야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후끈한 공기에 섞인 음식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검은색 바지와 조끼에 흰색 와이셔츠를 받쳐입은 정통 웨이터 스타일의 여성 직원들은 "즈드라스트부이테"라고 인사를 주고받을 때만 해도 상냥한 태도였는데, 한국 사람도 식사할 수 있느냐는 물음을 듣고서는 곧바로 경직되는 것이 느껴졌다.

북한 식당 평양관 [얀덱스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거절의 표현은 모든 북한 식당이 똑같았다. "한국 사람은 봉사 안 합네다"였다. 배가 고파 밥만 조용히 먹고 가겠다는 부탁에도 "이 주변에서 다른 데 한번 찾아보십시오"라고 철벽을 친다.

이들 식당에 대한 현지인들의 평가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러시아 지도맵 얀덱스에 따르면 평점은 '승리'가 5.0으로 가장 높았고 '평양관' 4.7, '고려' 4.6, '릉라도' 4.5 순이었다.

한 외국인은 최근 '승리'를 방문해 식사한 후일담을 연합뉴스에 알려왔다.

대동강 맥주를 주문했는데 재고가 없어서 중국산 칭따오 맥주를 마셔야 했다며 "장사가 잘돼서 그러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북한 식당 (모스크바=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17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도심의 북한식당 '릉라도'. 2026.9.22 dk@yna.co.kr

중국어로 대화하려고 했지만 종업원들은 러시아어나 영어밖에 할 줄 모르는 것 같았다고도 전했다. 시도해본 메뉴 중 '매운닭날개졸임'은 가격이 1천600루블(약 2만6천원)이었는데, 향신료 냄새가 강했고 혀가 얼얼할 정도로 매웠다고 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2017년 대북 제재 결의로 북한 노동자에 대한 회원국의 고용 허가를 금지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북한인을 고용해 식당을 운영한다면 제재 위반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런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북한의 주요 외화벌이 수단 중 하나인 북한 식당의 개점을 잇따라 허가한 것은 2024년 북한군 파병 이후 양측이 더 가깝게 밀착하는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징표로 해석된다.

러시아의 북한 식당 (모스크바=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17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도심의 북한식당 '승리' 앞에 걸린 메뉴판. 2026.9.22 d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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